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편지를 전해줘야 하는데.”
밀려드는 숲 바람. 목성은 양팔을 감싸 안았어. 얇은 아이보리색 면 재킷이 진동을 일으켰어. 곧 온기가 나른하게 펴져나갔지. 미소를 뱉고 시계를 보았어. 12시. 졸음을 쫓으려는 듯 목성은 기지개를 한껏 피고 현관문을 바라보았어. 그리고 걸어갔지. 서걱. 서걱. 장미들이 밟혔어. 잎을 관통하던 붉은 하이힐이 떠올랐지. 장미들은 일주일이 지나면 흔적 없이 분해될 거야. 이곳 푸석한 흙바닥을 기름지게 만들어 주면 불쾌한 잡풀과 가시들만 무성해지겠지. 상관없어. 다시 이 집에 올 일은 없어 보이니까. 다만 여자가 눈에 밟혔어. 혹시. 다음날 한번 더 만나자고 말하면 받아줄까. 무슨 용건을 꺼내야 할까. 그녀 나이는 어떻게 될까. 목성은 물었어. “지금 내 나이가 어떻게 되니.” 시계는 스물여섯이라 대답했어. 너무 어렸지. 낡은 집에 사는 여자. 어쩌면 백 살을 넘었을지 몰라. 같은 앳된 얼굴을 하고도 으레 그쯤 되는 사람들은 목성에게 거리를 두곤 했지.
탕-
초인종을 눌렀어. 하지만 응답이 없었지. 벽을 돌아 유리창을 들여다보았어. 경계 없는 민낯 그대로의 창. 실내엔 아무도 없어. 반쯤 열린 침실 안쪽도 비어있었지. 집안은 황량했어. 실내 벽은 마치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댕이 묻었고 벌어진 벽 틈으로 이끼가 스며들었지. 가전제품도 없었어. 어떤 이유로 이곳에서 사는 것일까. 사회가 격리한 범죄자일까. 아니면 일부러 세상과 벽을 둔 자연인 일까. 편지가 생각났어! 여자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을지도 몰라. 목성은 안감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어. 백색 봉투에는 붉은 실리콘 인장이 찍혀 있었지. 마치 장미 꽃잎 같아. 목성은 매끈한 인장을 매만지며 창문이 달린 벽 모퉁이에 주저앉았어. 그리고 시계 불빛으로 편지를 투과시켜 보았지. 어떤 글씨도 드러나지 않아.
또각. 또각. 발자국 소리가 들려!
황급히 몸을 숙였어. 아니, 편지를 전해줘야 해. 벌떡 일어났어. 벽 건너 구두 굽 소리가 멈췄어. 그는 허겁지겁 걸었어. 모퉁이를 지나는 순간, 시야에 주먹이 날아들어!
퍽-
그는 고꾸라졌어. 쓰러진 그의 앞에 그녀가 서 있어! “누구신가요?” 그 여자 목소리야. 무척이나 마른 말투였지. 목성은 감았던 눈을 질끈 떴어. 코를 부여잡았던 손은 축축해. 피가 흐르는 모양이야. 그는 엉겁결에 말을 뱉었어.“편지, 편지를, 할아버지가.” “편지?” 여자는 목성의 손에 들린 봉투를 발견했어. 그녀는 허리 숙여 그의 손목을 집었지. “악!” 손아귀 힘이 상당해서 재킷 코트 소매가 일그러졌어. 섬유 회로가 손상될 정도야. 외투를 입지 않았더라면 손목이 부러질 뻔했지. 방금 그녀에게 얼굴을 맞았던 게 생각이 났어. 아직도 광대뼈가 욱신거려. 몸 어디에서 저런 악력이 나올까. 소름이 돋아.
그녀는 사뿐히 지면을 걸으며 다가왔어. 그는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 쳤지.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편지를 집어 들었어. “이것이 편지인가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여자는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어. 손가락이 실리콘 인장에 닿자 붉은 인장은 미열을 내며 녹아내렸어. 그녀는 잠시 동안 액체를 매만지다 봉투를 뜯어냈어. 투명한 필름이 담겨 있었지. 어떤 글귀도 없어. 하지만 그녀 손이 닿는 순간. 필름은 한여름 매미처럼 제 몸을 전율하며 노래했어!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불 꺼진 무대처럼 어두운 정원. 노래는 밤하늘의 냉기처럼 불어오듯 울렸어. 그녀와 목성은 숨죽여 노래를 들었어. 그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지. 노래가 끝나자 투명했던 필름은 색 바랜 종이처럼 탁하게 변해버렸어. 흔들어 보아도 소용없어. 편지를 움켜쥐자 바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었어.
“할아버지가 편지를 전해주라고 했나요?” “네” 목성은 서둘러 대답했어.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 “이 노래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목소리잖아요! 혹시 저희 할아버지를 알아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아. 한동안 침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 다가왔어. 목성은 얼른 바지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어. “괜찮아요, 제가 일어설 수 있어요.”
여자는 별안간 목성의 옷깃을 움켜잡았어. 그리고 목성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지. “아, 무슨!” 목성이 허공에 뜬 발을 버둥거리자 여자의 몸이 흔들거렸고, 그녀 하이힐 굽이 부드러운 흙바닥에 파묻혔어. 여자는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어. 그 위로 목성도 함께 고꾸라졌지. 그 와중에 목성은 힘껏 여자의 머리를 감싸 안았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 대신, 그의 팔꿈치가 지면에 부딪혔지.
목성의 목에 그녀의 얼굴이 파묻혔어. 쇄골에 그녀 입술이 닿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