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송이 장미 12 동행

“제가 설명하지 않았네요. 저는 미지의 복제품이에요.”

by 류인환

숲에서 홀로 살고 있던, 20세기에 태어난 앳된 얼굴의 여자.


자신은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던 목성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어. “아… 당신. 그래 이상하다 했어. 치매구나! 내가 미쳤지. 아니 당신이 미친 거지. 내가. 이곳까지 왜 폭탄을 데리고 왔나 몰라.” 목성은 다급히 시계를 만지작 거렸어. “젠장! 시계는 왜 이래. 사회! 사회! 들려요? 여기 정신이상자가 있어요!”


“내 정신은 멀쩡해요. 그리고 사회가 무엇인가요?” 장미는 목성에게 다가오며 물었어.


“가까이 오지 마!” 목성은 황급히 뒤돌아 뛰어갔어. 그녀와 5미터 즈음 거리를 유지했지. “오지 마! 거기서 얘기해. 다가오면 신고할 거야! 내게 해를 입혔다가는 당신 절대 무사하지 못해.” 다급해졌어. 괴력을 가진 미친 사람이라면 정말 자신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지. 더는 장난 같지 않았어.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세상에서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지뢰와 같으니까.




장미는 목성의 말대로 더는 다가오지 않았어. 대신 목소리를 높였어. “그 시계로 신고를 하나 봐요! 고장 난 것 같은데? 왜 나를 신고하려 하나요? 누구에게?”


목성 역시 큰 소리로 말했어. “누구긴! 사회지. 너, 아니 미지 씨. 당신은 사회에게 벗어날 수 없어요. 어떻게 감시를 피해 태연하게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치료받으면 돼요. 리부트 같은 거죠. 금방이에요. 거기서 잠깐 기다려줄래요? 내가 저기 카운터로 가서 구조요청을 할게요. 걱정 말아요!” 지금. 뒷목에 흥건히 돋은 목성의 땀방울이 차로 저편의 조명에 반짝이고 있어.


반면 장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팔짱을 꼈어. 들어 올린 한쪽 손바닥으로는 턱을 받친 채 손가락으로 뺨을 두드리며 목성을 바라보고 있지. 어깨에 걸친 검은 코트는 붉은 잠옷 위로 느린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어. 그 태연함 때문에 목성은 더욱 그녀를 기묘하다 생각했지.


장미가 팔짱을 풀고 한쪽 손을 저으며 말했어. “오해를 했나 봐요 당신. 난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이중인격 같은 거 말하는 거죠? 겪은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우리들은 1년 정도는 늘 겪거든요.”


“우리들? 당신들 정체가 뭐야!” “정체?” 그녀는 고개를 기웃거렸어. 검은 머릿결이 그녀의 손사래에 맞춰 흔들거렸지. 장미가 다가오자 목성은 뒷걸음치며 소리를 질렀어. “오지 마! 당신 뭐냐고! 사회는 당신이 미지라고 하잖아!”


“아마도 미지는 제 어머니예요. 제가 아니에요.” “말이 되는 소릴 해! 당신 생체인식이 미지라고 나오잖아!” “아…” 장미는 걸음을 멈췄어.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지. 그리고 웃으며 말했어. “제가 말하지 않았네요. 저는 미지라는 여자의 복제품일 거예요.” “뭐?” “복제인간이라고요.”




복제인간. 금기 중의 금기지.


정말 그녀가 복제인간일까. 애초에 알아낼 방법이 없어. 말 그대로 복제본이니까. 원본이 없으면 대조도 불가능해. 게다가 사회는 인간을 복제하는 걸 금지했잖아. 목성은 차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어. 재킷은 온갖 검댕으로 제 빛깔을 잃었어. 생각하자. 그녀의 정체를 파악해야 해. 정말 복제인간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복제인간이 정체를 드러내는 건 미친 짓이야. 그것을 거짓 지칭하는 것도 미친 짓이야. 사회도 정체를 가려낼 수 없어. 그녀는 미친 미지이거나, 복제인간 장미. 둘 중에 하나야. 무엇보다 사회에게 알려야 해. 카운터에 가서 사회를 불러내면 돼. 그럼 그가 모든 걸 해결할 거야. 목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장미는 아니야. 복제인간이라면 재판을 통해 폐기될지 몰라. 치매라면 치료를 받겠지만 모든 기억을 잃겠지. 장미라는 이름도.


떠올랐어! 수년 전에 들었던 뉴스.


자신을 끝없이 복제했던 여자. 사회의 판결은 충격이었지. 사회는 모든 복제인간을 추적해 폐기하곤 했으니까. 게다가 노화를 조작하는 기술이 완성되고 복제인간은 완벽히 사라졌어. 사람들은 더는 영생을 위해 자신을 두 개로 분할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늙은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었지. 문득 다시 나타난 복제인간. 모두 복제품의 폐기를 예상했지만, 사회는 별안간 태어난 것에는 죄가 없다고 말했어! 누구도 자신이 속한 종을 해할 권리는 없다고. 우리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


사회는 가끔씩 입장을 바꾸곤 했으니까. 그에 따라 우리의 법과 질서가 바뀌어. 초기에 사회는 인간이 세워놓은 법을 바탕으로 판결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변해갔지. 그리고 개인에 따라 다른 형량을 내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판단과 해명은 늘 설득력이 있었으니까. 면죄부를 받은 마지막 복제인간. 지금 쯤이면 장미 같은 나이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것보다 목성은 할아버지가 떠오르기 시작했지. 그 복제품과 할아버지는 어떤 관계일까. 할아버지는 장미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까. 편지! 편지에 인장이 있었지. 그것이 저 여자를 인식했어. 그래. 할아버지는 미지를 알아!


“당신은 언제 복제되었나요?”목성은 턱을 당기고 부릅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어.


“저는 태어난 지 4년이 넘었어요.” 그녀를 주시하며 목성은 오랫동안 침묵했어. 장미는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아 목성의 대답을 기다렸지. 이윽고 목성이 일어섰어.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죠?” 장미는 고개를 들어 올려 미소를 지었어. “네.” 그리고 일어나 먼지 묻은 검은 코트를 털었지.


“병원을 가려면 그 검은 차로는 안돼요. 여기 백색 차를 타요.” “네.” 장미는 순순이 목성의 뒤를 따라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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