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잘하는 일만 했다. 그래서 무엇을 '못한다'는 건 생각 못했다.
오늘, 평일과 다름없이 오전 6시에 일어났다. 얼마 전 회사 진급 교육을 갔다가 세미나 강사님께 들은 말이 있다. 월요일이 유난히 힘든 이유는 주말에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지난 평일 간 맞춰둔 루틴이 무너져 피곤한 거다. 차라리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낮잠을 자는 게 낫지 않겠냐 말했다. 맞는 말 같아서 아침을 먹고 잠깐 졸았다 밖을 나섰다. 오늘은 3번째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치는 날이다.
예전에 했던 소개팅 중에 회사 선배님들에게 잘 안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유는 상대방이 다정한 사람을 원하는데 내 성격이 차갑기 때문이라고. 어떤 남자 선배님이 대답했다. 네가 잘못들은 거라고. 차갑다고 말한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내 성격이 차가운 건 어쩔 수 없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선배님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차가-운 사람이라서 안 되는 게 아니라 차가-없는 사람이라서 안 되는 거라고. 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것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분들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닌걸 잘 알고 있다.) 곧 다른 선배들이 덧붇였다. 차가 없는 건 괜찮은데 면허가 없는 건 안된다. 넌 대학생이 아니다. 서른둘이다. 나중에 누굴 만나서 결혼 준비를 하거나 애가 생겼을 때는 어떡하려고 등 이런저런 진심 어린 조언을 점심시간 내내 들은 뒤 결심했다. 면허를 따기로.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8월 휴가철에 딱히 할 것이 없었다. 운전면허가 생각났다. 학원에 가서 카드를 긁고 카페로 갔다. 노트북을 열고 유튜브로 필기시험문제를 들었다. 1000개 문제 중 3일에 걸쳐 700개를 정독했고 94점을 받았다. 그리고 자랑했다. 선배님들은 왜 94점을 받았냐고, 설마 공부했냐고 그냥 상식으로 풀면 되는 것 아니냐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차로를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어서 처음 문제집을 풀어보았을 때 다 틀렸다고 답해주었다.
이제 기능시험을 칠 차례. 이틀간 2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첫날 강사님은 그래도 주차를 마스터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별 걱정이 없었다. 다음날 두 번째 강사님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못 외우냐고. 나는 엉겁결에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힘껏 밝았고 강사님은 급히 조수석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에선 연기가 피어올랐고 강사님은 목소리를 떨며 내게 대단하다고 했다. 이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회사 워크숍으로 곤지암을 다녀왔다. 선배님이 모는 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비가 무척 쏟아졌다. 나는 건조한 실내에서 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비를 흠뻑 맞고 뛰어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그러자 선배님이 말했다. 그게 바로 너라고. 생각해보면 비 오는 날이면 출근길에 신발이 흠뻑 젖곤 했다. 내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비를 맞았냐 물어보면 나는 산 넘고 물 건너왔다며 웃으며 대답하곤 했다. 그리고 더 큰 우산을 사야겠다 말했었다. 사실 운전을 하면 굳이 비를 맞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9월. 추석에 창원으로 내려가 조수석에 동생, 뒷좌석에 엄마를 태우고 운동장 주차장을 돌았다. 재미있었다. 며칠 뒤 기능시험을 쳤다. 오랜만에 떨리는 기분이 설레었다. 하지만 1미터를 못가 실격했고, 나는 도망치듯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당혹스러웠다. 저번 주에 두 번째 기능시험을 쳤다. 이번엔 설렘보단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또 1미터를 못가 실격했다. 이젠 부끄럽지 않았고 당연한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추가교육과 재시험 비용을 결제했다. 운전학원계의 빅바이어가 된 듯했다. 엄마와 선배님들은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순 없지 않느냐며 위로했다.
그 말이 새로웠다.
32살의 8년 차 회사원. 어느 정도 일에 적응했고 주말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만 해왔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못한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최근에 운전 말고도 또 있다. 진급 교육 때문에 만료된 영어점수를 따야 했다. 나는 미국 출장도 몇 번 갔으니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점수는 반토막이 나 있었다. 영어공부도 다시 해야 한다.
오늘, 운전학원을 가는 와중에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미터를 넘지 못한 내게 그 이후의 항목들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재교육을 받는 동안, 강사님은 어떻게 기능시험을 두 번이나 떨어질 수 있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1미터도 넘지 못했다 말했다. 강사님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 1미터 경사로 구간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단 걸. 나는 큰 문제없이 기능시험을 통과했다. 강사님은 내게 생각보다 운전을 못하진 않는다 말했다. 돌이켜보면 집에서 연습할 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 지난주 두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인 스스로가 또 한 번 새로웠다. 아무튼 이제 주행시험이 남았다. (몇번을 또 떨어질진 장담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