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일기

오늘, 인화원의 밤 그리고 정원의 테라스

시도하지 않았다면 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by 류인환

최근에 회사 진급 교육으로 인화원을 다녀왔다. 2박 3일이란 짧아진 교육 일정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늘 부족했으니까. 늘 밤늦게 일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한 달에 160시간, 하루 8시간이란 규정이 생겨났다. 처음엔 다들 난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그동안 회사에서 지냈던 밤과 새벽이 늘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부질없는 일들을 말끔히 덜어냈다. 막내 사원이 눈치를 보며 할 일 없이 대기할 필요도 없었고 굳이 새벽같이 일어나 꽉 막힌 차로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었었다. 부모들은 당당하게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바래다주고 출근할 수 있었다. 새벽까지 회식이란 명분으로 술을 진탕 마시고는 다음 날 아침 제시간에 출근하는 모습을 이젠 누구도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맛있는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간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는 내 모습을 보며 성실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다들 집에 갔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건 사실 우리들이었다. 그런 생각도 시도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 수 없었을 일이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강당에 진행자는 한 명뿐이었다. (물론 뒤편에 많은 스탭이 있다.) 나는 교육을 가면 늘 받던 두터운 책자와 서류철에 대비해 에코백을 챙겨 왔다. 그런데 이제 교재를 나눠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사이트에 접속해 교육을 진행했다. 보통은 교육을 시작하면 스마트폰을 수거해갔었기에 꽤 놀라웠다. 과제는 의견 중심으로 짧아졌고 교육 중에 즉각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사이트에 업로드를 해야 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온 의견들을 보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비교할 수 있었다. 교육은 주로 외부 세미나로 이루어졌다. 꽤 유익했고 최신 트렌드 내용이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질문시간에는 손들고 일어나라 권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보내고 그중 가장 많은 공감이 달린 내용을 진행자가 뽑아 질문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조별 과제를 하러 각 반에 모였다. 그런데 교실에 교육담당자가 없다. 자율에 맡긴다면서. 신기하게도 나조차도 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저녁을 먹은 뒤 사람들은 각자 헤어졌다. 2박 3일 동안 출퇴근을 신청한 사람은 집으로 갔고 저녁 세미나를 듣고 싶은 사람은 강의장을 갔다. 주제가 관심 없는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어둑해진 밤. 공기는 선선하고 정원은 넓었다. 사람들은 들새처럼 곳곳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는 자기 시간을 가졌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세미나에서 들었던 내용을 정리했고 누군가는 회사 일을 했다.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 사이를 지나치는 산책하는 사람 그리고 어느새 운동복을 입고 정원 외곽에서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율이란 단어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문득 이곳이 사무실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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