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관상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오늘, 회사 종무식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디자인센터 종무식은 축제가 되었다. 오전에는 벼룩시장을 포함한 각종 행사를 열고, 오후에 간단한 종무식을 하고 끝나는 형식이다. 작년부터 종무식 때 하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다. 관상을 보는 것. 전문가들을 모셔와 조그마한 사주 부스를 열곤 했다. 그동안 일이 바빠서 오전에 이벤트홀에 내려갈 엄두를 못 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내려가서 관상을 보기로 했다.
거의 한 시간을 줄 섰다. 넓은 이벤트 홀에선 각종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장난감 활을 쏴 경품을 타는 사람들, 붕어빵을 만드는 사람들, 나눠주는 샹그리아를 마시는 사람들.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엄연한 회사고 본인들이 회사원이란 사실을 잊고 있는 듯했다. 바쁜 사람들은 여전히 윗 층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 모습이 좋아 보인다. 내가 오늘 하루 유달리 일에 쫓겨 산다고 해서, 오늘 잠깐 다른 이들의 여유를 비꼴 자격은 없다. 물론 나 역시 관상을 보려고 부푼 마음으로 줄 서고 있는 중이다. 현금 삼천 원을 내야 한다고 해서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가 지갑을 들고 왔다. 그리고 관상만 봐주는 부스에 앉았다. 업무가 아닌 일로 뜀박질한 게 얼마만인지.
첫 말로 내게 어려 보인다고 했다. 32살이라고 말했더니 꽤 동안이라고 칭찬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헌신을 많이 받은 상이라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그래서 버릇이 없는 것 같다 말했다. 관상가는 내 얼굴을 더 보더니 서글서글한 인상인데, 자기 주관이 있고 고집이 센 편이라고 말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맞다고, 가끔 4차원이란 소릴 듣는다 말했다. 관상가는 흐뭇해하며 업무는 앞으로도 쭉 열심히 해나갈 상이라고 말해주었다. 대신 턱이 너무 작아서 말년에 사업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나는 사업 같은 거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너무 말대답을 해서 그럴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났다. 딱히 해줄 말이 없다고 했다. 좋은 걸까, 그냥 하는 말일까. 아무튼 즐거웠다. 놀이동산에 온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한동안 관상을 본 얘기를 한참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곤 했다.
늘 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관상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냉기를 달고 살 팔자인지, 아니면 괜히 스스로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는지 궁금했었다. 관상가는 마지막에 내게 말해주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말을 하다 보니 내 입꼬리가 꽤 올라간 상이란 걸 알아챘다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최근 솔로가 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야 하냐고. 나는 평소 주말처럼 지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어차피 너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는 게 처음이니까 특별한 일 아니겠냐고.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지 않겠냐고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나는 8년째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입사 이후로는 생일은 회사 사람 말고는 챙겨준 적이 없다. 친구들에게 솔로의 대명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해 저녁이라도 먹자고 했다. 친구는 방금 다른 약속을 잡아버렸다고 했다. 9년의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언제부터 난 이렇게 되었을까. 관상가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상이라고. 사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편인데.
다음 종무식 땐 사주도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저녁. 서둘러 이불을 덮고 긴 잠을 잤다.
2019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