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일기

오늘, 결혼식과 가족들의 시간

언젠가는 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by 류인환

오늘,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열렸다. 나와 동생은 느긋이 차편을 잡다가 부산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늦을 각오를 하고 버스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KTX 입석 자리를 발견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뛰어가 겨우 열차를 탔다. 그리고 한참을 열차 구석에서 서 있었다.


해운대가 훤히 보이는 결혼식장에서 사촌동생과 작은 아버지를 만났다. 작은 아버지는 무척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튀어나온 작은아버지의 배를 재킷 단추를 잠가 가려주었다. 언젠가부터 친적들을 찾아가지 않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기분 내서 건넨 내 행동은 꽤 어색했고 작은 아버지도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잠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동안 내가 언젠가 결혼식을 할 때, 어머니 혼자 등장해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아버지가 그 결혼식을 못 보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늘 친척을 만날 때면 잊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마주하게 되고, 짐이 주어진다. 그럴 때면 복잡해진 마음에 친척들에게 심술을 부릴 때도, 매섭게 굴 때도 있다.




작은아버지는 내게 축의금 걷는 걸 부탁했다. 사회도 본 적이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예상외로 하객이 많았고 수백 통의 봉투가 쏟아졌다. 나는 결혼식이 열리고 끝나는 긴 시간 동안 바깥 책상에 앉아 오로지 장부에 이름만 써 내려갔다. 사촌 동생들의 외가를 처음 보았다. 그들은 꽤 서로 살가워 보였다. 문득 사촌 여동생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태어날 때부터 여동생과 알고 지냈지만,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얼마 전 추석에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냈었다. 여동생은 작은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이나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그 말에 몰랐던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여동생은 정이 많고 살가운 성격이었고 작은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단 걸. 생각해보니 애초에 그런 걸 알고자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된지도 한참 지났고, 앞으로 볼 일도 거의 없어지는 중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첫 결혼 기념으로 스타일러를 사줬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여동생에게 작은 아버지와 다름없을 거란 걸.




며칠 뒤 연말이 되어서 창원으로 내려갔다.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 셋이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셋째 아들이 아파서 서울에 병간호를 지내는 중이다. (나는 거의 찾아가지 않는다.) 할머니와 삼촌이 부재중인 집은 꽤 평온했다. 소파도 없는 방바닥에 모여 앉아 멍하게 TV를 볼 일도 없었고(쥐가 난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라는 얘기(나만큼 열심히 다니긴 드물다), 자녀 이야기(결혼도 안 했다) 그리고 앞으로 제사를 도맡아 지내란 말을 안들을 수 있었다.(기회를 봐서 없앨 생각이다.) 나 역시 어떤 말을 꺼내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요새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어서 건네는 술잔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낡은 차를 몰아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며 길을 걸었다. 꽤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내가 푼수처럼 자랑을 하거나 동생을 놀리는 형식이다. 어머니도 앞으로 셋이서 같이 다니는 게 좋겠다 말했다. 언젠가는 가족이 모였을 때 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언젠가는 글에 아버지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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