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난 이리저리 휩쓸려 새해 첫날 등산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셈이다.
1월 1일, 2020년의 첫 일출을 친구들과 맞이하기로 했다. 새벽에 다 같이 모여서 일출을 본 뒤 헤어지는 것이라고 친구들이 설명해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한 번도 새해 일출을 본 적이 없다. 새해 첫날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언제 모일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1월 1일 새벽에 만나서 바로 일출을 보러 갈 것인지, 아니면 12월 31일 밤에 모여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2019년 마지막 날 밤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뜻깊은 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기보다,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분명 늦잠을 잘 것 같다. 새해 첫날 새벽부터 잠든 현관문을 두드리다 일출도 놓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다.
친구들은 응봉산에 갈 거라고 했다.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삼대 야경명소라는 말이 그럴듯했다. (나중에 회사 사람들에게 응봉산이 야경명소라 말했더니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동네 뒷산 다녀온 것 아니냐며 또 놀림을 당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뒷동산 입구부터 알록달록한 패딩 행렬이 보였다. 친구 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편하게 갈 거란 짐작과는 달리, 수많은 인파들과 함께 산을 걸어 올라섰다. 친구들은 숨이 차다고 했다.
어디선가 북소리와 함께 트로트가 울리고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핫팩을 건네주었다. 악수를 건네는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산등성이 난간마다 들어찬 사람들 때문에 한강 수평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등덜미에 핫팩을 붙이고 오랜 시간 바라본 하늘은 점차 밝아지고 새햐얗게 변했다. 흐린 하늘 뒤로, 우리가 모르는 새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해 올라서는 중이다. 나는 아직 새해 일출을 보지 못한 셈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선선한 분위기와 밝아진 한강의 풍경 그리고 차가운 바람 속 미열의 햇살이 이제 새해가 밝았다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동산을 내려온 우리는 발열하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세상이 변했다 감탄했다. 친구 집 근처 유명한 설렁탕 집을 찾아갔다. 근처에 클럽에서 나온 사람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반팔티를 입은 남자와 원피스만 걸친 여자들이 눈 날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보며 우리는 문득 클럽에서 연말을 보내는 옵션도 있단 걸 새삼 깨달았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 했다.) 어느새 나는 이리저리 휩쓸려 새해 첫날 등산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셈이다.
2020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