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력과 고생은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잣대로 존재해야 한다는 걸.
회식을 가는 길에 운전석의 팀장님이 내게 출장을 가라고 말했다. 한동안 내가 맡지 않았던 건이었다. 뒷좌석의 나는 한참 생각하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팀장님은 '제가요?'라고 말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사가 가끔 그렇게 말해줄 때는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것도 참 쉽지 않겠다고.)
지금껏 여러 종류의 수많은 출장을 다녀왔지만, 이번 출장은 꽤 의미심장했다. 4년 전에 출장을 갔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크게, 오랫동안 혼난 적이 있다. 그때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 종류의 출장을 더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히 피할 수 없는 걸 안다. 나는 매일 늦은 시간 동안 이번 출장을 준비했고, 그저 좋은 결과만 나오길 바랬다. 아무리 현지에서 애를 쓰고 밤을 새도, 결국 출장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부질없는 일이다. 반대로 결과만 좋으면 그곳에서 졸다가 돌아온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일정이 유난히 길어서 조금 더 큰 캐리어를 사고, 최적의 컨디션을 위해 기내용 목베개를 샀다. 그리고 그 베개를 새로 산 캐리어에 넣은 채 화물로 보내버렸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혹시 난 멍청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부터 이번 출장이 망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이 사라졌다. 오로지 내가 짊어질 숙제였다. 8년간 쌓아올린 것들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5년 전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가 눈 앞에 겹쳐왔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2시간 쪽잠을 잘 때도 있었고, 한 끼로 하루를 때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8일 간의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앞으로도 많은 숙제와 해결할 일이 남았다. 그럼에도 태연한 내 모습에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5년 전, 28살의 출장 때는 사람들의 내 노력과 고생을 알아주지 않고 결과를 추궁하는 것에 고통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 노력과 고생은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잣대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걸.
2020년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