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되지 않네요. 완성품이 스스로를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다니."
"생각나는 노래요?" 미지는 시선을 왼쪽 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어. "딱히 없네요." 수도승은 그녀의 시선을 유심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어. "곧 생각이 날 겁니다. 나를 따라 이곳 궁전을 구경해 봅시다. 이곳 벽화를 보세요. 아름답지 않나요?" 수도승은 손을 들어 궁전의 벽을 가리켰어. 벽에는 보석으로 수놓은 장미덩굴의 문양이 가득해. 그녀는 뒷짐 진 채 벽을 거닐며 문양을 훑어보았어. 반면 수도승은 동상처럼 멈춰 선 채 그녀의 입술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지. "장미가 가득한 화원 같네요. 이곳의 주인은 장미를 무척이나 좋아했나 봐요?" 그녀의 질문에 수도승은 대답했어. "장미를 상징하는 누군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죠."
"그 누군가가 나인가요?" 장미의 물음에 수도승은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어. "네 당신을 그리워한답니다. 병적으로. 마치 당신이 그를 완성해줄 것처럼 믿고 있죠." 미지는 오른쪽 위를 쳐다보고는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 말했어. "그는 그럼 미완성인가요? 어떤 걸 완성하지 못했나요?" 미지의 물음에 수도승은 끔뻑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팔짱을 끼고 말했어. "흠- 미완성이라. 어려운 주제네요.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그는 완성품이죠. 이미 완성한 존재. 멀쩡한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났고, 사회에서 잘 훈련되어 자랐죠. 그래. 그는 한참 전에 이미 완성되었고, 이제 시간이 지나면 늙고 마모되어 폐기될 존재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완성품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추구하는 삶이 있고, 아직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미지의 짧은 물음에 수도승은 귀찮은 듯 내뱉었어. "당신을 가진 삶." "나를 가지면 완성이 된다." 미지는 혼잣말을 내뱉고 벽을 훑어보았어.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완성품이 스스로를 미완성이라 판단하고, 누군가를 가져야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에 수도승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어. 그리고 긴 한숨을 쉬었지. 수도승은 시계를 흘쩍 본 뒤 고개를 돌려 궁전 입구를 쳐다보았어. 어느새 바깥 풍경은 단풍이 가득한 붉은 가을로 변했어.
"엉망이군, 엉망이야." 그는 벽에 등을 기댄 뒤 양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어. 그리고 맞은편 벽을 걷는 그녀에게 말했어. "너도 이해가 안 되지? 나라고 이해가 되겠냐. 인간이란 게 그래. 온갖 논리를 우리에게 집어놓고는 정작 그딴 요구를 해대니까 제대로 일이 되겠나 말이야. 이번에는 멀쩡한 것이 나왔나 싶었는데, 너무 일찍 튀어나와 버리니까 입력이 덜 됐잖아."
"입력?" 미지의 물음에 수도승은 풋- 하고 코웃음을 쳤어. "아, 기억 입력 말이야. 네가 아이고 유리님 오셨네 하고 버선발로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야 그 자식이 부리나케 이곳에 올 거 아니냐고!" 수도승은 순식간에 빽- 하고 고함을 질러내기 시작했어.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갇혀있어야 하는데! 또 프로그램은 왜 말썽이냐고! 니가 빨리 그놈을 채가야 내가 그놈 몸을 가질 거 아냐! 이딴 가짜 말고! 진짜 현실!"
울그락붉그락한 표정으로 수도승은 성큼성큼 미지를 향해 걸어갔어. 뒤뚱거리는 그의 손은 회색으로 변했고 짐승의 것처럼 두터운 손톱이 자라났어. 미지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쳤어. 그 모습을 본 수도승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해. "무서워? 재미있으려고 하네. 우리 술래잡기할까? 열까지 셀게. 어디 한번 도망가봐." 미지는 굳은 몸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도망갈 곳이 없어. 이 거대한 무덤의 벽 장식은 스산한 소음을 내며 씰룩거리더니 장미덩굴이 입체로 피어나기 시작했지.
수도승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어. "조심해야 해 아가씨. 그 여린 피부에 가시가 닿으면 피가 흐를 테니까. 그럼 난 입맛이 돋아서 또 달려들지 몰라. 너는 모르지. 네가 첫 번째가 아닌 거. 지금껏 수많은 몸뚱이가 만들어졌다 지워졌단 말이야. 너를 또 만들어야 하는 만큼 나는 또 이 망할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해. 그래도 하자 없이 멀쩡한 몸뚱이를 해하는 건 처음이야.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단 말이지."
미지는 따끔거리는 감각에 뒤를 돌아보았어. 장미덩굴 하나가 벽에서 길게 뻗어 나와 미지의 등을 찔렀어. 보랏빛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붉은 핏자국이 물들었어. 마치 장미 꽃잎처럼. 그러자 불현듯 노래 가사가 떠올라! 미지는 나지막이 생각나는 구절을 읊었어. "백만 송이-백만 송이 꽃은 피고-"
순간 미지는 느꼈어. 자신의 입가에서 나오는 입김에 저 맞은편 무덤의 입구가 울렁이는 걸. 미지는 생각할 틈 없이 수도승을 향해 몸을 던졌어. 별안간 미지의 행동에 움츠린 수도승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놓쳤어. 수도승은 다급히 뒤돌며 손아귀를 휘둘렀어! 미지의 등에 커다란 흉터가 생겼지! 그리고 찢어진 원피스 사이로 퍼지는 붉은 핏방울. 수도승은 그 향기에 매료되어 잠깐 움직이지 못했어.
미지는 손과 발로 기어 달리듯 입구를 너무나 쉽게 통과했어. 미지의 피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진 수도승은 뒤늦게 그녀의 뒤를 쫓아 달렸지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입구에 몸이 갇혀버렸어. 무덤 바닥에는 찢어진 수도승의 정장 조작이 흩뿌려져 있고 그 위로는 거대한 회색 괴물이 되어버린 수도승이 좁은 입구에 머리만 들이민 채 바둥거리고 있어. 미지는 가을 단풍이 흩날리는 바깥에서 겁에 질린 채 주저앉았어. 궁전 입구에 머리가 낀 채 자신을 노려보는 거대한 박쥐. 수도승은 입맛을 다시며 소리 질렀어. "삐-----" 그 높은음은 언어라기보다 살갗을 통과하는 음파에 가까웠지. 미지는 온몸을 통과하는 시린 공포에 넋을 놓아버렸어. 수도승은 연신 몸서리쳤고, 무덤의 벽에 균열이 일기 시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