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의 사투

뜬금없이 태어나, 눈앞에 달려드는 감정이란 꼬마와 벌이는 사투

by 류인환

초봄. 오후. 카페. 테라스에 앉았어. 마주 보는 차로에 자동차 바퀴가 지면을 쓸어내고 있어. 울림은 내 발끝까지 전해져. 부르르- 떠는 입술은 바퀴의 것이야.


바퀴는 차의 무게와 그리고 그만큼 동일한 지면의 짓눌림 중간에서 살아가야 해. 영원히. 바퀴가 질주하든 주저앉든 그의 몸짓과는 상관이 없어. 두통 같은 짓눌림은 바퀴가 폐기되어 숨 멎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아. 그래서 바퀴는 늘 입가를 찌푸린 듯 바닥이 눌려있어.


부르르- 떠는 건 바퀴만이 아니었어. 앉은자리. 파라솔이 나부끼고 있었지.


카페 야외 테라스에 세워진 고동색 목재 원탁 중앙에는 80mm 직경의 구멍이 있어. 그 홈을 알루미늄 링으로 감싸 두었지. 그 사이를 관통한 60mm 직경의 파라솔 파이프. 바람이 세차게 나부낄 때마다, 파이프는 무거운 몸을 흔들거렸어. 알루미늄 링과 파이프가 부딪히며 탕탕- 소리를 내고 있어. 파라솔은 거리를 바라보며 종을 울리는 중이야. 그저 바람이 시키는 대로. 머리에 짊어진 품이 큰 모자가 이끄는 대로. 지금의 파라솔의 모습은 마치 종을 울리기 위해 그 자리에 놓인 것 같았지.


파라솔은 지금 주어진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그의 움직임은 의지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지. 바람이 부는 방향을 피해 신경질 부리듯 몸을 비트는 거야. 시리고 가려워서.




눈 앞의 도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 그들은 늦은 햇빛을 안면으로 받아낸 채 표정을 찡그리고 있어. 알고 있어. 기분이 나빠서 찡그린 게 아니란 걸. 단지 햇살이 동공에 들어차는 양이 무거워 눈꺼풀을 약간 닫았을 뿐이란 걸. 근육의 움직임이 표정을 찡그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야. 건너편의 사람들은 등덜미에 늦은 햇빛을 받아낸 채 똑같이 얼굴을 일그렸어. 그들도 기분 나빠서 찡그린 건 아니야. 마주 보는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기 때문일 뿐이야.


나도 얼굴을 찡그렸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야.

왜. 왜 때문에 우리는 얼굴을 찡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카푸치노를 주문했어. 현무암처럼 구멍 뚫린 백색 크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 쟁반 위로 귀를 갖다 대었어. 카푸치노는 몸속에 베인 공기방울을 튕겨내는 중이야. 탄산을 내뿜듯 시원해 보이는 카푸치노는 내게 말했어. "부글-부글." 알아듣진 못했어. 사람의 말이 아니라서. 하지만 시큼한 울음소리는 분명히 할 말이 있어. 밤 중 고양이가 짖어대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중이야. 카푸치노는 몸속 들어찬 한숨들을 밀어냈어. 에어캡 포장지를 터뜨리듯이.


뿌연 기포들은 튀어나와 드높은 백색 잔을 뛰어넘었어. 그리고 바람결에 날려 어디론가 가버렸지.


내 몸은 카푸치노가 보낸 신호를 알아듣곤 외쳤어. 그들처럼 감정의 알갱이를 하나씩 터뜨리고 싶다고. 지금 나는 타이어처럼 두통으로 고통받는 와중에, 옷자락은 파라솔처럼 거친 초봄 바람에 흩날리는 중이야. 감정이 내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고 있어. 그것은 미운 네 살 꼬마로 변해 내게 같이 놀아달라 떼를 써.


나는 얼굴을 쓸어 담고 꼬마와의 대 전투를 준비해.




고양이는 스스로 원해서 밤마다 그런 흉측한 소리-어쩌면 그들에겐 노랫소리보다 살가울 수 있는-를 내는 게 아니야. 유전자가 주문한 내용대로 그저 따를 뿐이야. 어쩌면 고양이는 더 이상 새끼를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몸을 배배 꼬며 울었을 거야. 돌볼 새끼들이 늘어가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버려지는 고양이 새끼들이 많은 이유는 고양이의 영원을 목적으로 진화한 고양이의 선조 때문이야. 선조들은 새끼가 많을수록 좋다고만 생각했지, 미처 힘에 부쳐 새끼를 버리는 어미 고양이까지는 생각 못했어.


우리도 원해서 감정을 가진 게 아니야.


진절머리 나는 것들

소개팅 : 하고 싶지만 하면 후회.

운동 : 한다면 몸의, 하지 않으면 마음의 고통.

기다림 : 짐작하는 시간만큼 산으로 가는 상상.

군대식 요구 : 화가 나지만 대꾸하기엔 겁남.

답장 없음 : 안도감과 자괴감.

과식 : 쏟아지는 졸음과 후회.

고독 :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움.


이런 것들은 인류의 영원을 목적으로 진화한 선조 때문이야. 그들은 감정이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고만 생각했지, 감정에 버려지는 우리 인격까진 생각 못했어. 그래서 우리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뜬금없이 삶 아래로 떨어지곤, 이리처럼 달려드는 감정을 맞닥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