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연말에 팀원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by 류인환

그저 미울 때에도. 어른이란, 말을 거는 것이야. 시린 허리에 힘을 주고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거야. 쉽게 상처 받는 뾰로통한 사람들을 위해. 그 먼저 건네는 몸짓엔 양보가 있어. 자신의 것 보다 그들의 자존심을. 자신의 것보다 그들의 억울함을 인정해주려는. 그래서 매 순간 말을 걸 때는 먼저, 작은 생선뼈를 삼켜야 해. 우리는 당신의 만성적인 그 아픔 덕분에 웃을 수 있었어.




매일. 웃을 일이 있는 건 아니야. 그래서 늘 상대방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건, 사실 그들에게 거짓말을 건네는 거야. 거짓말은 어려워. 남을 속이기 전, 자신부터 속여야 하니까. 의지가 필요해. 당신의 의지는 애정에서 출발했어. 상대방의 굳은 얼굴에 살짝 고이는 입꼬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 그 애정 덕분에 우리는 거짓말처럼 어느새 당신과 편히 지내게 되었어.




쿨함이란 책임감에서 비롯돼. 책임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짊어지기 위해선 이해해야 하니까.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못남, 그들의 말꼬리와 심각한 표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 입장을 조금 더 덜어내 그들의 사정을 보관해둘 수 없어. 그래서 책임진 사람들은 쿨해. 이미 이해하고 인정하니까. 우리들의 걱정을 가로채고 같이 웃어줄 수 있어.




숨기지 않는다는 건 깨끗하단 말이야. 그런 사람과 함께 할 때면 우리가 덮어쓴 때 묵은 먼지. 그을음은 어느새 씻겨져 버려. 벽을 두르지 않는다는 건 용기 있다는 뜻이야. 그 누가 침입해 문을 긁어놓아도, 지붕을 흔들어댄다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용기. 변함없다는 건 변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본성부터 좋은 사람이니까.




신중한 사람은 무뚝뚝한 편이야. 확신에 차진 않고서는 말을 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말을 할 때마다 확신이 담길 수밖에 없어. 남들이 건네는 그저 그런 흔한 말들은 당신에겐 흘러지나갈 속삭임일 뿐이라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날 붙잡고 술잔을 건네는 건 정말 할 말이 있기 때문이야. 술보다 오랫동안 숙성된 말.




세련된 사람은 세심하지 않아. 세상을 보는 감각이 좋을 뿐이야. 좋은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뿐이야. 사람과 사물. 모든 것에 좋은 관심을 가진 사람. 상대방의 기분이 먼저 드는 사람. 빠르게 지나치는 주변에 눈을 맞추는 사람. 무심코 튀어나온 말끝에도 전부를 생각하는 사람. 당신은 우리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야.




당신은 늘 같은 사람과 대화하는 건 질린다고 말했어. 낯선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즐거운 당신은 두렵지 않아 보였어. 익숙하지 않은 걸 어려워하지도, 모르는 걸 회피하지도 않는 그 넉살에는 자신감이 있어. 어떤 것도 자신을 긁어내거나 망가뜨릴 수 없다는 믿음. 그래서 당신은 오히려 정적이야. 돌을 던져도 바람이 불어도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처럼 깊은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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