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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May 09. 2022

이응의 우주

7. 상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절벽 끝, 낭떠러지 밖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은 무른 땅을 딛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는 사람. 2020년 초의 이응은 이응 스스로를 그렇게 그렸다. 그 앞에 이응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턱 하나 위, 단단하고 마른땅에 이응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세 사람. 이응은 그들을 이응의 부, 이응의 모, 그리고 이응의 동생이라고 칭했다.   

“저는 절벽 끝에 서 있어요. 아주 무른 땅이에요. 발이 이미 반쯤 땅에게 잡아먹혀 있어요. 한 발짝만 움직여도 미끄러져 떨어지거나, 그게 아니라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딛고 있는 땅과 같이 무너져 내리고 말 거예요. 눈앞에 허리쯤까지 오는 턱이 있어요. 그 턱 위의 땅은 제가 딛고 서 있는 땅과는 다른, 잘 마른 단단한 땅이에요. 그 땅을 온전하게 딛고 세 사람이 서 있어요. 제 왼편에는 엄마, 오른편에는 동생 그리고 그들보다 한 발짝 앞, 저의 정면엔 아빠가 있어요. 그들은 모두 저에게 매정하게 등을 보이고 서 있어요. 저는 그들의 등밖에 볼 수가 없어서 그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마음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저는 그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아요. 그럴 수 없어요. 입이 떨어지질 않아요. 그저 멍하니 발이 빠지고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는 걸 느낄 뿐이에요.”


2년 뒤인 2022년 초, 이응은 리을과 함께 경복궁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등산 가방을 뒤에 매고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불현듯 깨달았다.

‘그래, 그래서 그랬던 거야.’

어릴 적 이응은 산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어린 마음에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 바로 주말에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하루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많은 요구와 제안에 고분고분하던 이응은 이응의 모에게 온몸으로 신경질을 내며 큰 소리를 쳤다. 산에 가기 싫다고, 같이 산에 오르지 않을 거라고 이응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말했다. 그 후에도 이응은 한참 동안 -현장학습 같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산에 오르지 않았다. 그랬던 이응은 될 수 있는 한 산에 오르길 그렇게 꺼리면서도 왜 자신이 그토록 산에 오르기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꽤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산에 오르기 싫어하는 아이에서 산에 오르기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란 이응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름 모를 이의 등산 가방과 그 뒷모습에 그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닮아 있었다. 이응이 산을 오르는 동안 봐야만 했던 그 세 사람의 뒷모습은 이응 스스로가 그린 이응의 가족상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산은, 그 길이 가파르고 완만하고를 떠나 그 자체로 이응에게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다. 이응과는 다르게 몸이 가벼운 이응의 동생은 이 나무 저 나무를 뛰어다니는 다람쥐 같이 늘 저만치 앞서 폴짝거리며 산을 올랐고, 그런 이응의 동생과 이응의 사이에서 산을 오르는 이응의 부모는 어린 날 이응을 이응의 조부모에게 맡기고 그들의 집으로 가던 날들처럼 이응에게 가도 가도 닿지 않는 등을 보이며 산을 오르고 올랐다. 혼자 뒤 떨어져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이응이 마음을 졸이며 “엄마, 아빠.” 부르면 이응의 부와 이응의 모는 그 순간만 잠시 뒤를 돌아보며 “응, 얼른 따라와.” 할 뿐이었다. 숨은 가쁘고, 뒤에 혼자 떨어져 서럽고, 그렇다고 속도를 더 내어 오르지는 못하겠고, 이응은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에 설움이 차는 길을 올랐다.

그 누구도 자신을 살피며 기다려 주지 않는 곳. 산이란 이응에게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이응은 정상을 너머 산 길을 내려갈 때면, 그간 자신을 떼어 놓고 올랐던 그의 부와 모에게 그리고 그 동생에게 복수라도 하듯 그 누구보다 빠르게 산의 내리막 길을 내려가곤 했다. 그러다 미끄러지고 어디 하나 깨지기 일수였지만, 세 사람과 거리를 띄울 수 있을 만큼 띄우며 이응은 스스로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끔찍이도 닮아있던 스스로의 가족상을 만나던 그곳에서 달아나야 했다.


“큰일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해.”

이응의 동생이 이응의 방에 들어와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앉았던 2020년의 한 가을밤, 이응은 자신의 동생의 사과에 흔쾌히 괜찮다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무른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자신을 향해 그 아이가 뒤를 돌아 뻗어주는 손을 분명히 만났다. 그래서 이응은 그 손을 잡을까 말까,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도 그 애에게 말했다.

“이건 나의 삶이야. 나는 꽤 오랫동안 그것들을 이고 지고 살아왔어. 필연적으로 그것들이 ‘나는 언제든 나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 거야.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아도 돼. 너는 나의 짐을 나눠 들지 않아도 돼. 애초에 그럴 수도 없어.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짐이 아니야. 그러니까 더더욱, 너는 그럴 필요가 없어. 내가 나의 삶을 감당하며 사는 것처럼, 너는 그저 너의 삶을 잘 살면 돼.”   


이응은 2020년 열 달 동안 치열하게 상담치료를 받았고, 더 치열하게 자신의 모와 이야기를 했다. 과거의 이응에게 모질었던 일들은 모진 말들이 되어 이응의 모의 귀를 지나 심장에 들어가 박혔다. 그 여느 때보다 이응의 모진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던 이응의 모는 종종 이응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말을 이응에게 돌려주기도 했지만 이응은 역시 분명하게 마주했다. 이응을 향해 보이던 등을 돌려, 고민 말고 얼른 잡으라고 내민 이응의 모의 손을. 얼른 그들이 있는 마르고 단단한 땅으로 올라오라고. 축축하고 질퍽해 곧 낭떠러지 아래로 미끄러지고, 떨어져 내릴 땅이 아니라 그들이 안도하며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 위에 같이 서자고.


2021년 내내 과연 자신이 그 손들을 잡고 마르고 단단한 땅으로 오를 수 있을까 괴로워했던 이응은 2022년의 구름이 가득했지만 눈이 부셨던 4월의 어느 주말, 고민도 없이 그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손에 힘껏 무게를 실어 그들이 선 땅으로 올랐다는 사실 역시.

오랜만에 온 바단데 내려서 바닷바람이나 한번 쐬고 가자는 이응의 부의 말에 모두 차에서 내렸다. 멀지 않은 거리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뭐가 있나 본데? 이응의 부는 날쌔게 언덕을 올랐다. 그 뒤를 이응의 모와 이응의 동생이 따랐다. 그들이 쉽게 오른 언덕은 이응의 생각보다 가팔랐고, 미끄러지기 쉬운 마른 모래의 오르막길이었다. 하필 안 입던 치마를 입고, 뒤축이 없는 뮬 운동화를 신고 온 것도 문제였다. 이응은 자신의 등 허리 높이까지 오는 마른 모래의 길 앞에서 멈춰 섰다.

“어? 나 못 가.”

이응은 고개를 들어 가파른 오르막길 위에 올라 선 이응의 모와 이응의 동생을 향해 말했다. 이응의 모와 이응의 동생은 주저 없이 뒤를 돌았다. 그리곤 이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발끝에서 그들이 내민 손으로 눈을 옮긴 이응은 고민 없이 이응의 가까이에 있는 손을 잡았다. 이응의 동생의 손이었다. 이응은 고민 없이 그 손에 의지해 한껏 무게를 실어 마른 모래의 땅을 올랐다. 이응의 동생은 이응이 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 쉽도록 한 손으로는 이응의 손을 잡아끌어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차례로 이응의 팔과 등과 엉덩이를 받쳐 끌어주었다.

‘…. 이렇게 쉬웠다고?’

  이응은 살짝 뒤를 돌아 순식간에 이응이 오른 그 가파른 길을 내려다보았다. 이응은 모종의 허탈감을 느꼈다. 1년 전에도 그렇게 자신 앞에 내밀어진 그 손을 잡고 오르면 되었을 일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잡을까 말까, 잡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1년여 동안 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1년여 동안 그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이응은 결국 그 손을 잡았고, 그들이 선 같은 땅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응은 자신이 언제 딛고 올랐는지 모를 단단하고 마른땅에서 저 멀리 작아져 있는 이응의 부의 뒷모습을 만났다. 이상하게도 그 뒷모습이 더 이상 매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 밟고 오면 돼. 넓은 돌은 괜찮아.”

이응은 가만히 부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응은 이응의 부가 뒤를 돌아 손을 내밀어줄 수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응의 부는 확인을 해야 했다. 자신이 갈, 그리고 자신의 뒤를 따라 올 다른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위험이 있을지 모를 길을 그 누구보다 먼저 가 한 발 한 발 밟으며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응의 부는 늘 다른 식구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고 모두에게 등을 보인 채 있어야 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응은 더 이상 그 뒷모습이 매정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뒷모습에 더 이상 서럽지 않았다.


“다들 여기 좀 봐 보셔!”

 사람이 뒤를 돌아 카메라를 든 이응을 향해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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