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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May 31. 2022

이응의 우주

11. 이응과 리을(1)


리을은 이응이 2020년의 열 달 동안 받은 상담 중에 종종 이응의 입을 통해 등장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리을은 이응이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 친구이자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준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리을은 이후에도 이응이 프랑스에 보내져 살게 되었을 때 시차를 이기고 많은 응원의 말을 보내주던 친구 중 하나였고, 2016년의 한 여름, 이응이 실은 그곳에서의 삶이 고단하다고 처음으로 무너지듯 울었을 때 유일하게 품을 내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던 친구였다. 둘은 오늘도 여전히 서로의 심심함을 가장 많이 알아주면서 서로의 거울이 되길 자처해 서로의 우울과 안녕을 살피며 지내고 있는 친구이기에, 리을의 이름이 이응의 상담 중에 종종 뱉어졌던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너에 대한 글을 한 편 남기고 싶은데, 그날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2021년 4월 말의 어느 날, 서로에게 솔직한 말을 털어놓던 밤을 이응은 말한 것이었다.

“그럼 굳이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거든? 원래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글을 쓰고 싶어 진다고. 그 일은 너에게 글을 쓰지 않아도 됐던 일이었던 거야. 너는 그 일을 잘 보낸 거야. 근데 물론 나는 그날에 대해 적어놓긴 했어.”

“히히, 그럼 나 그것 좀 줄래?”

“버스 왔다.”

리을은 굳이 이응의 말에 알은체 하지 않으며 가까워 온 버스에 올라탔다.


2021년 4월의 어느 밤, 리을이 이응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 이후 이응은 스스로도 스스로의 예민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밤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날이 다가오기까지 불안에 은근하게 떨었다는 사실을 이응은 비읍과 시간을 보내다 문득 알아차렸다.

“나 사실은 걱정하고 있어.”

이응은 걱정하고 있었다. 이응은 2020년의 상담 중에 10년 전 지난날의 자신이 지난날의 리을과 원만하게 화해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밖으로는 관계가 회복이 되었지만(관계가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고 해야 맞는 말이라는 걸 이응은 리을과 대화를 하며 알게 되었다.) 안의 어떤 부분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응은 깨달았다.

이응은 당황스러웠다. 이응은 리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상담을 받았던 날과 같이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운 마음은 리을에 대해 온종일 이야기했던 그날의 기억으로 이응을 데려다 놓았다.

“그때 리을 씨가 이응 씨에게 어떻게 소리를 질렀어요? 소리의 크기가 어땠어요? 들려줄 수 있어요?”

상담 선생님은 이응에게 물으셨다.

“아! 이것과 비슷했어요?”

“아니요.”

“아!! 이건요?”

“아니요….”

“아!!!”

그때였다. 상담 선생님이 소리를 높여 지른 세 번째 소리에, 이응은 그날의 충격을 온몸으로 다시 느꼈다.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


10년 전 그날은, 처음 리을이 이응에게 소리를 지른 날이었다. 처음 리을이 이응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던 날이었다.

“싫어! 너랑 이런 종류의 이야기하는 거 싫어!!! 너랑 이런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리을은 온몸으로 발버둥을 치며 이응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같이 있던 좁은 방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한 순간에 좁은 방에 홀로 남겨진 이응은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응은 자신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가버린 리을의 뒷모습이 아니라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눕혀진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리을에게 무슨 말을 했지?’

이응은 리을과 함께 방을 들어와 그때까지 자신이 리을에게 하고 있던 말을 한 순간에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리을이 이응을 향해 지른 소리에 산산이 부서져 리을과 함께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기억해낼 수 없었다.

‘내가 리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무슨 말을 잘못했나? 잘못 꺼냈나?’

이응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계속  방에 홀로 남겨져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이응은 흩뿌려진 정신을 주워 담고는 얼른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온 방에서 이응은  시간을 조용히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일은 허무하게 잊히지 않은  잊혔다. 그래서 그날이, 그날에 리을이 이응에게 지른 소리가,  소리의 크기 자체가 이응에게 충격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상담 선생님의 입을 통해 나온 소리를 다시 듣고 나서야 이응은 깨달을  있었다.


“한번 같이 해 볼까요?”

“….”

“같이 소리를 질러 볼까요?”

“…. 아니요. 선생님. 저는 리을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 없어요.”

이응은 고개를 저어 가며 상담 선생님께 싫다고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이응에게 지난날의 리을에게 소리를 질러보자고 제안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응은 그렇게 알아듣고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흔들리는 얼굴로 눈물이 곧게 흘렀다. 울며 알았다.

‘그날의 일이 나에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구나. 소화가 된 게 아니었구나. 나는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납득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왔구나. 리을의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그러자 여러 기억들이 앞다투어 이응의 옆을 지나갔다. 그간 소화되지 못했던 리을과 얽혀있던 기억들이 의식의 세계로 넘어왔다. 리을이 은근히 싫어하는 별명으로 리을을 부르니 이응에게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화와 짜증을 낸 리을이 바로 뒤돌아 같은 별명으로 자신을 부른 디귿에게 “어? 디귿아 왜?” 하고 반갑게 대답했던 기억, 함께 고속터미널로 향하던 길에 시옷과 카톡을 하더니 “나 오늘 안 내려갈래, 시옷이 오래. 나 시옷 네로 갈 거야.” 하고 리을이 이응을 지하철에 내버려 두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렸던 기억, “응? 나는 늘 히읗이나 비읍이나 셋이 친할 때, 너네 관계에 늘 곁다리처럼 끼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던 기억, 함께 우울에 잡아 먹혔던 밤들에 가스 라이팅인지 리을 스스로도 모르고 했던 말들, 시옷과 다른 친구에게는 한없이 사근사근하다가도, 이응이 보내면 퉁명스럽게 돌아왔던 카톡의 답장들 등등. 이응은 혼란스러웠다. 여러 기억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마음에 예리하게 꽂혔다.


‘나는 왜 이 친구와 계속 관계를 맺고 있는 거지? 인연이 끝났는데 내가 미련하게 억지로 그 인연을 끌고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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