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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May 31. 2022

이응의 우주

12. 이응과 리을(2)


‘나는 왜 이 친구와 계속 관계를 맺고 있는 거지? 인연이 끝났는데 내가 미련하게 억지로 그 인연을 끌고 가고 있는 걸까?’


이응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물음을 마주하기 전까지만해도 이응에게 리을은 그저 좋은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리을은 이응과 처음 눈을 맞춰 인사해 주었고, 이응은 제일 먼저 리을에게 마음을 열었다. 리을은 이응에게 품을 내주었고, 이응은 그런 리을을 귀하게 여겼다. 이응의 곁에는 분명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응이 느끼기에 가장 자신의 안녕과 우울을 사려 깊게 챙겨주고 공감해주는 친구는 분명 리을이었다. 그랬기에 이응은 스스로 깨달은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응은 리을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혼란스러움이 스스로에게만 혼란스러운 건지 누구든 그렇게 느껴 당연한 건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이응은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응이 기다리는 적당한 때란 쉬이 이응의 앞에 놓이지 않았다.


리을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5개월을 묵혔다. 그리고 어쩌다 리을이 이응의 집에서 하루 묵어가겠다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이응은, 비로소 적당한 때가 왔다고 느꼈다. 이응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묵히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겁이 났지만 이응은 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저녁 이응은 원치 않게 비장해졌다.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이응의 비장한 문장에 리을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왜왜. 나 INFP라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한다고. 이제 나랑 친구 안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흠. 그러니까 너랑 더 친구가 되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응은 리을도 여전히 기억하는 그날에 대한 이야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음…. 나는 그날 일이 있었던 이후에 우리가 같이 갔던 동아리 연수에서 너가 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이야기를 잘 들었고, 이해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리가 그런 일이 있었지만 괜찮아졌고, 화해를 했다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아.”

“어어.”

“너가 그때 그런 말을 했었잖아. 너는 너만의 바운더리가 확실해서 아무리 친한 친구, 애인이라도 그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으면 너도 모르게 날카롭게 변해서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을 쳐낸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래서 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렀구나’하고 내가 이해를 한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던 거야. 나는 그때 그걸,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괜히 너가 어떤 행동을 하면 서운해지고 그랬어. 뭐랄까. 10년이 지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 … 뭐, 너에게 사과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그랬다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하는 거야.”

이응은 그날 일에 대한 상담을 받다가 선생님이 지른 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데, 그래서 나 너한테 굉장히 미안해했잖아.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그동안 내가 너 눈치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그랬어?”

“어!!! 나 너 눈치 엄청 봤어. 근데 알아. 나는 종종 그렇게 굴 때가 있어. 원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낼 때가 있어. 너한테도 그랬고 언니들한테도 그랬어. 근데 정말 나한테는 친구가 정말 소중하거든. 나는 내 친구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 친구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때가 있어.”

이응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서 눈물이 났다.

“응. 근데 나도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힘들어했었어. 이건 우리 둘한테 모두 힘든 기억이잖아. 그래서 나야말로 이 이야기를 해서 다시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소원해지거나, 그렇게 너를 잃을까 봐 굉장히 오래 망설였었어. 근데 이렇게 나랑 말해줘서 고마워.”

“이응아, 너는 정말 소중한 친구야. 나는 정말 너가 그날에 그렇게 크게 상처받았는지 몰랐어. 나에게는 친한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게 별일이 아니었거든. 친구들한테도, 언니들한테도. 그래서 내가 너에게 그날 그렇게 한 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에게 굉장히 큰 사건으로 남은 것이,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해. 너의 이야기를 듣고, 너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니까 내 잘못이 생각보다 컸다고 느껴. 그 사건이 너에게 이렇게까지 크게 영향을 끼친 줄 몰랐어. 미안해. 그리고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것까지 너는 상처받고 있었어서 정말 놀랐어.”

“응….”

“근데 나도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너가 종종 그때 이야기를 지나가듯 할 때마다 ‘아, 그 사건이 너에겐 정말 큰 사건이었구나’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막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근데 뜬금없이 갑자기 말을 꺼낼 수가 없잖아. 하하하.”

“그렇지. 히히 잘 됐네.”

“응. 정말.”


이응과 리을은 그 이후로도 만날 때면 지겹게 말했던 것들에 대해 또 이야기를 하며 깔깔댔다. 이야기를 하고는 서로를 꼬옥 안고 서로의 등을 쓸어주었다. 이응은 리을을 무사히 집에서 잘 재울 수 있을까 걱정하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넉넉해진 마음으로 리을이 잘 이부자리를 폈다. 그 밤 다정하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 둘은 긴장감이 사라진 안온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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