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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May 24. 2022

이응의 우주

10.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


“선생님, 저는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아요. 아니, 몰랐어요.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중요한 삶의 기로에 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이응이 당한 모든 선택은 상황이 시키는 최선의 것이었다. 이응은 항상 상황이 시키는 최선의 것을 스스로가 선택한지도 모른 채 선택당했다. 그 선택들에 당연히 이응 자신, ‘나’가 잊혀졌다. ‘나’가 잊혀진 선택은 이응이 한 선택이면서 이응이 한 선택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응의 머리와 가슴속에선 그것이 이응이 한 선택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2020년의 2월, 이응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상담센터에 들어섰다. ‘너무 힘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시옷의 제안과 ‘상담을 받자, 응? 엄마가 돈 내줄게.’ 단호했던 모의 말에 2주를 끙끙거린 끝에 어렵게 발을 뗀 것이었다. 그렇게 센터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이응은 상담센터를 알아봐야 하는 것도, 자신에게 맞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야 하는 것도,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다녀야 하는 것도, 그 상담 비용을 자신의 모가 감당해야 하는 것도 모두 못마땅했다. 무엇보다 당시,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무서웠던 이응은 생과 생하려는 모든 노력을 스스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응은 그게 무엇이든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2주 동안 끙끙댔던 것이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해 말까지는 다녀 보자.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선택이든 그 다음에 해도 괜찮겠지.’

버티고 버티다 마음을 바꿔 먹고 결연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초반 몇 달 이응은 상담실에 들어서 의자에 앉고 입을 열 때부터 코를 훌쩍 들이키고 도로 나올 때까지 온몸과 마음으로 울어댔다. 말을 뱉어내는 동안 눈물이 하도 흘러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쩌다 성공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차분하게 상담을 받은 날에는 상담센터를 나와 바로 향한 화장실에서 목구멍을 틀어막고 소리를 죽여 울음을 뱉어냈다. 2020년의 반년 동안 이응은 매주 목요일(센터가 옮긴 후로부터는 화요일에) 쉬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렇게 50분에서 1시간을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뱉어내면 얼굴은 퉁퉁 붓고, 눈은 벌게지고, 코는 콧물로 가득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그래서 이응은 상담을 받고 온 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쓰러지곤 했다.


  2020년의 중반, 말로만 이루어진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나서부터는 이응은 말은 짧게 하며 몸의 느낌, 몸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에 중점을 둔 상담을 받아갔다. 어떠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떠한 일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나의 몸’은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가를 가만히 마주 느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 느낌이 몸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이응은 뚜렷하지는 않아도 막연하게 몸의 어느 부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루는 오른쪽 귀에, 또 하루는 두 눈에,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다른 날은 머리에, 심장에, 손바닥에 오는 느낌을 알아차리곤 했다.


2020년 12월의 첫째 날, 그 여느 때의 상담과 다르지 않게 그날도 이야기를 하고 몸의 느낌에 집중하는 상담을 받고 있었다. 어떠한 이야기들로 이응의 두 팔이 무거워져 축 쳐졌다. 마침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은 그대로 멈춰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두 손을 보고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곧 손을 풀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풀지 않을 거예요.”

“….”

“어때요?”

상담 선생님은 이응에게 어떠나고 물으셨다. 이응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개의치 않아하며 양팔과 양손이 그대로 멈춰버린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손은 무엇을 하고 싶어요? 계속 깍지를 끼고 싶어요? 아니면 풀고 싶어요?”

상담 선생님은 손을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이응은 그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은 분명 이응에게 곧 손을 풀 거라고 말했고, 하지만 아직은 풀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이응은 스스로 손을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모르겠어요.”

이응이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니 선생님은 그럼 깍지 낀 손을 풀 수 있겠느냐 물으셨다. 이응은 슬슬 손을 풀어 따로 떨어뜨려 놓았다. 마주 닿아 있던 손바닥 안쪽에 공기 중의 냉기가 닿으며 손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손을 주먹 쥐어 볼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쥐어 볼까요?”

이응은 손에 서서히 힘을 주어 주먹을 쥐어 보았다. 살짝 쥐는데도 쉽게 양손에 피로가 느껴졌다. 어느 순간에 도달하자 그 이상 주먹을 꽉 쥘 수가 없었다. 이응이 가만히 멈춰 있으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더 이상 쥘 수는 없지만, 이응 씨는 주먹 쥔 손을 풀지 않아요. 계속 쥐고 싶은가 봐요.”

그 말에 이응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말처럼 이응이 더 이상 손에 힘을 들여 꽈악 쥐거나 펴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이응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을 할 수 있는 만큼 주먹 쥐어 보자는 선생님의 말을 이응은 그저 착실히 따른 것뿐이었다.

? 아닌데? 나는 손을 쥐고 싶지도 않고, 펴고 싶지도 않은데? 그저 선생님께서 손을 주먹 쥐어보라고 하셔서 주먹을 쥐다가  이상 힘이  들어가서 멈춘 것뿐인데? 그렇게 멈춰있는 것뿐인데? 단지 그것뿐인데?’


‘그렇구나!’

그 순간 이응은 이해가 되었다.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강요한 적 없어. 네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지난날 자신의 모의 말이 이해되었다. 이응은 이응이 그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것도,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진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랬다고 굳게 믿었다. 부와 모의 일방적인 결정과 강요에 스스로가 선택을 할 여지도 없이 몰아붙여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매 순간들에 이응은 이응 스스로에게 선택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응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저 그들이 한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에 옮겼다.

‘나는 상황이 시키는 최선의 것에 최선을 다해 따랐을 뿐인데 왜 내 인생이 엉망진창인 느낌이 드는 거지? 나는 왜 이런 느낌을 느껴야 하는 거지? 지난날,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었는데, 왜 이게 다 내 책임이라는 거지?’


이응은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선생님, 저는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아요. 아니, 몰랐어요.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아,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이응은 지금의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때의 자신에게도 선택권이 있었음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잠깐 옆에 두고 흐르는 눈물을 따라 쥐었던 손을 자연스럽게 폈다. 아까는 시렸던 손바닥이 더 이상 시리지 않았다. 청량감. 양손바닥 가득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게 자유구나. 이게 자유라는 거구나! 이게 바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유라는 거구나!’   

어릴 적 병점 집 작은 텃밭에서 할아버지가 민트 잎을 따 주시면 이응은 그 민트 잎을 받아 손에 쥐고 있다가 할아버지를 따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면 온 입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날 손바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응은 양손바닥 가득 민트 잎을 머금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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