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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May 19. 2022

이응의 우주

9. 강요


“너만 내 눈치 보는 거 아니야. 나도 너 눈치 엄청 봐.”

2018년에 모에게, 2021년에 부에게 이응이 들은 말이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던 그 말에 2018년에도 2021년에도 이응은 기가 막혔다.

‘엄마도 내 눈치를 본다고? 그래, 본다고 쳐. 봐도 얼마나 본다고. 부모가 애 눈치 보는 거랑 애가 부모 눈치 보는 거랑 어떻게 같아.’

‘하…. 또야.’

이응은 ‘도통 너란 애를 이해를 못 하겠다, 남들은 안 그러는데 왜 너만 유난이냐’는 눈빛과 함께 이응에게 뱉어진 부와 모의 말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이어 따라온 말에 이응은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게 어떻게 강요야. 엄마랑 아빠는 너희한테 한 번도 강요한 적 없어.”

“강요한 적 없었어. 한 번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데!”

이응은 충격적이었다. 그 말들이 사실이라면 이응이 부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부정해야 할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 이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사실일 리 없었다. 분명 이응의 지나온 시간 안에서 이응의 부와 이응의 모는 이응에게 바라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응은 온 힘을 다해 이응의 부와 모의 기대에 맞춰 삶을 살아냈다.  


너 똑 닮은 아들 낳아서 너도 한 번 살아 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던 이응의 동생과는 달리 이응은 키우기 쉬운 딸이었다. 이응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키우기 쉬운 애였어. 갓난쟁이였던 동생과는 다르게 너는 꼭 다 큰 애 같았어. 해야 할 거 알아서 찾아서 척척 하는 애였어.”

세 돌이 될 때까지 조부모에게 맡기다가 이응의 동생이 태어나고 같이 키우기 시작했다는 때를 떠올려 이응의 모가 이응에게 한 말이었다. “3살, 4살이면 너도 어린애였는데.”라는 말이 뒤이어 붙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저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예민한 애였다면서. 어떻게 키우기가 쉬웠을까.’ 이응은 궁금해할 뿐이었다.


이응은 부모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던 딸이었다. 이응은 부모가 원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까지 부모가 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들어주던 딸이었다. 그래서 이응은 자신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모르는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갓 스물이 되었을 땐 스스로 나가길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모르는 나라로 보내졌다. 이응은 당연히 부모가 그것을 바란다고 생각했고, 바랐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렇게 부모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확인도 안 하고 무조건 들어주기 바빴다. 당연히 들어주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건, 이응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며 때로는 마음의 짐으로 여기면서까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응은 다음의 말들을 심심찮게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이었다.

“너가 그 고등학교 들어가면 아빠는 베란다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춤을 출 거야.”

“당연히 가야지. 당연히 들어가야지.”

“그냥 아는 데, 가까운 데로 가. 거긴 너무 멀고, 막말로 어떤 학굔지도 모르잖아. 검증이 안 됐잖아. 여긴 어느 정도 검증도 됐고, 체계도 잡혀 있잖아.”

“고등학교 졸업하면 그냥 나가. 대학은 외국에서 다녀.”

“너가 한국이랑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 학비를 안 내줄 거야. 한국 대학을 다니면 안 내줄 거고. 미국 대학도, 미국 대학은 비싸서 내줄 수도 없어.”

“고등학교까지만 가르쳐 주면 없어. 경제적 지원? 딱 끊을 거야. 너네들이 알아서 벌어먹어가며 살아.”


이응의 부와 모의 말에 따르면 이응은 한 번도 강요를 받은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이렇게 해! 안 그럼 뭐 할 거야!’ 한 적 없었어.”

부와 모는 이응에게 말했다. 사실이었다. 이응의 부와 이응의 모는 이응에게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응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니었다. 이응은 그 간극이 의아했다. 이응은 이응이 여기기에 스스로의 삶에 선택권이 있는 삶을 살아온 적이 없었다. 삶의 중요한 기로에 설 때면 이응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건 없었다. 이응이 여기기에 이응 앞에 요구된 것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놓인 이응이 디딜 수 있는 돌은 이응의 부와 모의 입을 통해 나와 앞에 놓인 것밖에 없었다. 이응은 그 돌들만을 착실히 딛으며 생이라는 강을 건너왔다.


이응은 자신의 동생이 자신이 진학한 대안학교에 붙지 못해 일반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까지 몰랐다. 그리고  동생이  자라 한국의 지방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응이 온힘을 다해 살아온 그 길대로  않아도 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자신이 건너 마땅한 강을 계속 건널 뿐이었다. 그저 자신의 부와 모가 스스로에게 바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들을 열심히 들어줄 뿐이었다.


그러다 깨진 것이었다. 2016년의 겨울, 자신의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던 무언가가 핑글 돌다가 사선으로 쩍-! 하고 갈라져 덜컥 떨어진 것이었다. 이응은 수년을 궁금해했다. 찐득한 불안이 등을 잠시 떠나 있을 때면 그때 깨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두고두고 궁금해했다. 그때 깨졌던 것은 스스로가 아니었던 채로 스스로가 살던 삶이었다. 이응은 또다시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는 하늘 조각들을 자신의 등에 꽂으며 빨간색 볼펜으로 써 내려갔다.

[나는 여기에 있어. 나는 나를 지키고, 나의 일상을 지키고, 나의 오늘을 살 거야. 내가 아닌 나에게 나를 빼앗기지 않아. 오늘의 나에게만 최선을 다 할 거야. 오늘의 나야 걱정하지 마. 오늘의 나는 참 소중해.]

빨간색 볼펜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두려웠다. 이응은 두려워했다. 이응은 자신이 그간 살아온 모든 삶의 시간과 그때 한 -스스로 선택했는지 모르고 했던-선택들을 두려워했다. 그동안 맞았던 것이 틀린 것이 되고, 긍정되었던 것이 부정되는 모든 광경을 한눈에 받아들여야 했다. 이응이 살며 했던 모든 선택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며 이응은 절망할 수 있을 만큼 절망했다.


“너는, 너도 그 학교에 지원하고, 시험을 봤잖아. 너는 그 학교에 가고 싶었어?”

이응은 2022년의 초 어느 날 이응의 동생의 방에 들어가 게임 시작 대기 중이던 동생에게 물었다.

“음…. 뭐, 내가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입시 때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지. 누나도 거기 다니니까. 거기 엄만가 아빠가 데려다줘서 시험 보고 한 거지. 막 가고 싶다 이런 건 아니었지.”

“그치? 나도, 나도.”

이응은 자신 역시 그랬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때의 부와 모가 강요의 말을 한 것이 아니었어도 자신과 동생의 마음에 일종의 -강요까지는 아니었어도- 요구의 마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만- 이상했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고 뒤늦게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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