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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06. 2022

이응의 우주

13. 폭력이지


이응은 어린 날 수년간 당해온 것을 과연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늘 의심해왔다. 그래서 그때의 일들을 타인에게 말을 해야 할 기회가 생길 때면 이야기에 앞서 이런저런 수식을 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것이 훗날 이응을 십수 년 괴롭혀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이응은 그것이 폭력이 맞았다고 조금은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응이 생각하는 그 처음은 만화방 안에서 있었던 찰나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이응은 당시 유행하는 인터넷 소설책을 빌리기 위해 들어선 그곳에서 그들 무리를 만났다. 예닐곱 정도 되었던 그들은 그곳에서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책을 고르는 이응의 앞으로 다가와 이응을 에워쌌다. 그리고는 그중 하나가 이응의 앞머리를 가볍게 툭 치며 말을 했다.

“얘 앞머리 존나 이상하지 않냐? 얘 앞머리 잘라 주고 싶지 않냐?”

이응은 당황스러웠다. 그건, ‘그런 애가 모반에 존재하는구나’, 말로만 들었던 그 일진애가, 한 번도 통성명을 한 적이 없던 그 노는 애가 이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당시 앞머리를 가지고 싶었지만 이응의 모의 완고한 반대로 가지런한 앞머리는 가지지 못하고 대충 가르마를 내려 한 깻잎머리가 그 애의 눈에는 심하게 거슬렸던 것이었다.

“야야,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냐.”

이응과 같은 반이어서 이응을 알고 있었던 한 친구가 이응이 당황한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그 애를 제지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그 후 더 이상 그 애가 이응에게 어떠한 일련의 행동을 가하거나 말을 더하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과 그 말 한마디는 무방비했던 이응을 당황하게 만들고 떨게 하기 충분했다. 그 애들이 자리를 떠나고도 이응은 한참 동안 그곳에서 얼이 빠져 굳어 있었다.


그 후 간간이 그 애가 이응을 뒤에서 씹고 다닌다는 사실을 이응은 알고 있었다. 아니, 간간이 씹는다고 알았던 건 이응의 생각이고 이응은 매번 그들의 놀림거리, 웃음거리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응아, 너 괜찮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같은 중학교에 올라가고,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을 보내던 어느 날 이응이 걱정되어 역부로 찾아와 건넨 말이었다. 그 친구의 말에 그 애가 이응을 웃음거리 삼아 입에 올리더라고. 한때 이응과 친했던 친구가 그 애와 친해진 이후 이런 말들을 나누며 낄낄거리더라고.

“아, 존나 더워서 반스타킹 신고 싶은데 존나 살쪄가지고 그렇게 못 하겠어.”

“그냥 신어. 이응 걔도 뚱뚱한데 그냥 신잖아.ㅋㅋㅋ”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그 이야기가 이응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마일드한 정도라며 되려 그 친구를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확인한 사실에 마음이 괜찮을 리 없었다.

이응은 그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 그 애와 친해진 여러 친구들을 생각했다. 아니, 한때 자신과 친한 친구였지만 그 애와 친해지게 된 후 이응에게 눈길도 주지 않던 여러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 애와 그런 대화를 나눴던 그 친구는 여러 친구들 중 한때 이응과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내기도 했다.

종이 울리고 이응은 다음 수업을 들어갔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선생님과 칠판을 노려보아도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응은 익숙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며 울음을 참아내기 바빴다.


이응은 노래를 곧잘 했다. (유행하는 노래를 잘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중고등학교 가창 시험에서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렇게 초등학교 땐, 합창부 담당 선생님이셨던 5학년 담임선생님의 눈에 들어 친구와 함께 합창부에 선발되어 들어갔다. 선생님은 이응을 꽤나 예뻐하셨다. 그래서 생각에도 없던 합창부 단장 자리를 이응이 6학년이 되었을 때 이응의 어깨에 얹어 주셨다. 이응이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도, 말을 한 적도 없었던 터라 “올해 합창부 단장은 이응이다.” 하고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을 때 이응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듯 싶다. 이응이 진지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던 때는. 얼결에 합창부 단장 자리를 맡은 이응은 매일 아침과 점심 그리고 방과 후 선생님 없이 합창단원들을 연습시킬 때면 늘 긴장을 했다. 왜냐하면 일방적이었던 합창부 단장 선발에 합창부 단장을 하고 싶어 했던 한 친구가 맨 뒤에서 늘 이응을 당황시키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야, 니가 무슨 선생님이냐? 졸라 어이없어. 딱딱딱딱(박자를 맞추기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앉아서 책상을 치며 지휘했던 이응을 비꼬며 한 말이었다.)”

“야. 작작해. 존나 재수 없어.”

제일 고학년이라 맨 뒷자리에 자리한 같은 학년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고 때론 연습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응을 조롱하거나 진행을 방해할 때면,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4학년 친구들이 이응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봐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응은 당황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꾹 참고 다시 연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응은 늘 익숙하게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해 연습해 나간 대회 곡에는 솔리스트 부분이 있었다. 이응은 마지막까지 한 친구와 솔리스트 부분을 두고 경쟁을 했고, 결국 마지막에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응은 차라리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맨 뒷자리에 선 이응을 탐탁지 않아하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 노래를 하려면 차라리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간절하게 생각했다.(빌었다.) 그때의 수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끝이 날 거라고, 졸업을 하고 단장 자리를 물러나면, 합창부 단장을 하고 싶어 했던 그 친구와도 관계가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고, 중학교에 올라가면 더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거라고.


우스운 바람이었다. 꽤 영리하고 목소리가 컸던, 합창부 단장이 되고 싶었던 친구는 일진 친구들이랑 친한 아이였다. 그렇게 조용하게 살았던 이응은 한순간에 일진 친구들이 다 아는, 놀리고 씹기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주목받기 싫어하던 이응은 너무 쉽게 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중학교에 올라가자 그들의 행동은 공공연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응이 다닌 중학교에는 이응의 모가 있었다. 이응의 모는 이응이 다닌 학교의 도덕 선생님이었다. 초등학생 때도 모와 등교하는 방향이 같았어서 모와 함께 등교하는 일이 많았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 이응은 과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 일부러 모와 시간차를 두고 등교를 하곤 했다. 그래도 알 사람들은 다 알았다.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일진 선배가 이응이 복도를 지나가거나 도서관 계단을 내려갈 때면 “야, ㅇㅇㅇ(이응의 모 이름) 겨털 존나 웃겨.”, “너, ㅇㅇㅇ 딸이지? ㅋㅋ” 하고 아는 체를 했다. 같은 학교에 언니를 둔 합창부 단장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든, 같은 학년 일진 애들이든 역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이응이 숨기고 싶다고 숨겨지는 사실이 아니었다. 물건이 훔쳐지고, 놀림을 당하고, 우스움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들은 이응이 당하지 않고 싶다고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응은 그러한 일들을 당할 때마다 죽어버리고만 싶은 마음에 양어깨가 떨리는 줄도 모른 채 홀로의 시간을 감당해야 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아주 사소한 일들로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 진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응은 마음부터 떨려온 것이 온몸을 떨게 할 때도 그건 스스로가 예민해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하루는 친했던 선생님에게 가 이응은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횡설수설 말했다. 계단을 올라오는데 내가 쓰는 산소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죽고 싶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귀여워 하하하 웃다가 눈물을 흘리는 이응을 보고 “왜 울어!” 하고 당황해하실 뿐이었다. 그 시절 다행히 이응의 주변엔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응은 그것과는 별개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스스로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할 수 없었다. 이응은 그저 되도록 빨리 별 노력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너가 처음엔 그렇게 이야기해서 아빠도 처음엔 좀 그랬는데 걔 괜찮은 애더라.”

“응? 무슨 소리예요 그게.”

“그때도 걔가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겠지.”

“….”

수년 전 이응의 앞머리를 툭 치며 이야기를 했던 그 일진애가, 이응도 뚱뚱한데 반스타킹 신고 다니지 않냐며 웃어대던 그 노는 애가 고등학교에 올라가 이응의 부가 맡은 반이 되고, 그 반의 부반장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응은 온몸을 떨어가며 이응의 부에게 말을 했다. 그 애 때문에 자신은 4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몇 주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응의 부가 가길 바랐던 그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부의 차 안에서 부는 그런 말을 이응에게 했던 것이다. 그 애는 사실 알고 보니 괜찮은 애고 너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거라고. 이응은 억울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니 가슴을 터치고 나올 것 같은 이 답답함을 무엇이라고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그저 끙끙거리고 어려워할 뿐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응은 그때를 떠올려 이야기를 할 때면, 여러 수식을 본격적인 말에 앞서 붙이곤 했다.

“우리 때 애들이 일진 치고는 마일드하긴 했잖아. 학폭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그런 것만 좀 했지. 애들 꼽주고, 그냥 그런, 그래서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한 걸 수도 있긴 해. 근데 나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건 십수 년이 흐른 후였다. 유명한 유튜버의 지인으로 한 일진이었던 애가 나오더라고. 그리고 그 애가 채널을 팠는데 그 채널에 무슨 걸스로 그 무리들이 나오더라고. 말을 꺼낸 친구에게 이응은 그때의 일들을, 십수 년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그 일들을 덤덤하게 꺼내 놓았다. 그 무슨 걸스 안에 있는 한 애가 초등학교 때 이응 자신과 친했던 애라고. 근데 그 일진애랑 친해져서 자신을 씹으며 놀았다고.

“폭력이지, 그건 폭력이야.”

“그 말 들으니 또 보기 그러네. 얘가 그랬다잖아. 씨. 싫어요 누를까? ㅋㅋㅋㅋㅋ”

십수  이응의 곁에 있어준 친구들의 말에 이응 스스로도 민망하리만큼 길었던 수식이 더욱 민망해졌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그때를 함께 살았던 친구가 해준 단호한 말이 이응의 마음에게  이상 떨지 말라고  잡아주는  같았다. 그래  이상 온몸도  않고 차분해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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