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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07. 2022

이응의 우주

14. 이부자리


이응의 모는 오른쪽 옆구리를 길게 늘여 침대  등을 끄고 침대에 부스럭 바로 누웠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바닥에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 누운 자신의 딸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

“기분?”

“어.”

이응은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다가 짧게 숨을 들이켜고 길게 숨을 뱉어냈다.

“웬 한숨? 답답해?”

“아니. 그냥. 그냥 쉰 거지.”

두 사람이 누운 안방엔 잠시 밤의 고요함이 지나갔다.

“이번에 여유 있게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깊은 이야기를 못 해서 좀 그러네.”

“깊은 이야기?”

“응.”

“무슨 깊은 이야기?”

“아니, 이런저런.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생각을 한다 뭐 이런 이야기.”

“뭔데, 해 봐!”

“지금?”

“응.”

“그럼 일찍 못 잘 수도 있는데? 벌써 12시 반이 넘었는데.”

“….”

이응의 모는 침묵으로 이응을 기다려 주었다.


이응은 고른 숨을 몇 번 들이쉬고 내뱉고를 반복하다 입을 뗐다.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아주 우울하던 때였거든? 며칠이 내리 우울하던 때였어. 하루는 샤워를 하고 나와서 젖은 발을 발매트에 천천히 문질러 닦는데 어떤 강한 욕구가 드는 거야. 엄마한테 묻고 싶은 강한 욕구가. ‘엄마도 사실은 내가 한심하지?’라고 묻고 싶은 욕구가 막 턱끝을 치는데 그냥 말았어. 화장실 불을 끄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엄마한테 어떤 대답을 들어도 그 말을 믿을 자신이 없더라고. 엄마가 그렇다고 하면,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 어떤 말을 대답으로 들어도 나는 그 말을 믿을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말았어. 그래서 그냥 나는 내가 어느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말았어.”

“….”

“아까 아침에 엄마 사진반 수업 가는 거 배웅하고 너무 피곤해서 다시 누웠거든. 그대로 잠이 들었어. 근데 이런 꿈을 꾼 거야. 꿈에서 내가 바지고 속옷이고 아래를 하나도 안 입고 엄마랑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 난 그 손 잡는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 내가 엄마한테 물었거든? 엄마, 엄마는 왜 내가 이렇게 아래에 하나도 안 입고 나오는데 아무 신경도 안 썼어? 그러니까 엄마가 그래. 너가 이따가 입는다고 하길래. 그래서 내가 다시 말했지. 근데 안 입고 나왔잖아. 그랬더니 엄마가 ‘그럴 줄 몰랐지’ 그래. 근데 꿈을 꾸면서 나는 그게 꿈인 걸 알았어. 실제로 내가 옷을 안 입고 밖에 나갈 리가 없잖아. 그것도 아래에 하나도 안 걸치고. 그래서 나는 그게 꿈인 걸 알았는데 그때 꿈이라고 말을 하면, 꿈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세계가 무너질까 봐서 안간힘을 써가면서 엄마 손을 더 꼬옥 잡고 말했어. 엄마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말했어. ‘엄마, 이 우주에서도 내 엄마여 줘서 고마워.‘하고.”

“그게 뭐야!”

“엉?”

“개꿈이구먼.”

“개꿈이라니. 아니지. 엄마, 그런 말이 있어. 꿈은 사실은 다른 우주라는 말. 그러니까 그 꿈의 말은 이 우주에서도, 저 우주에서도 내가 엄마한테 고마워한다는 거지.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에 내가 감사한다는 거지. 그걸 어떻게 개꿈이라고 그래.”

“개꿈이지, 그게.”

이응은 자신의 모가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모가 누워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아 누웠다. 말을 따라 또르르 이응의 눈가를 타고 옆으로 흐르던 눈물이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너가 생각한 게 맞아. 어떤 대답이든 믿을 자신이 없었으면 안 물었던 게 맞지. 그런데 아니야.”

“응? 맞다며 뭐가 아니야.”

“내가 너를 한심하게 생각하냐고? 한심하다고 생각하냐고? 야, 그럴 리가 있냐. 안쓰럽지.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자기 인생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괴로워하니까 안타깝지. 어떻게 한심하다고 생각하냐.”

아까 이응의 얼굴에 났던 눈물길 위로 이번엔 뜨거운 눈물이 여러 번 흘렀다. 어떤 눈물은 이응의 귓가에 가 고였다. 그래도 이응의 모의 음성이 젖지 않고 이응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이내 이응의 위로 이응의 모의 숨소리가 쌔액쌔액 들려왔다. 이응은 어둠에 익숙해졌는데도 사방이 온통 까매 벽인지 천장인지 구분이 사라진 안방에서 천장이겠지 싶은 곳을 바라보며 바로 누웠다. 이응은 눈을 천천히 끔뻑거리다가 자기로 마음을 먹고 두 눈을 가볍게 감았다.


  이응의 검붉은 눈앞으로 그날의 기억이 스쳤다.

“죽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

“응?”

“….”

“죽지 않겠다고 엄마랑 약속해. 엄마 말 듣고 있어?”

“….응.”

“그런 게 있대.”

“뭐가?”

“죽지 않겠다는, 스스로 죽지 않겠다고 쓰는 서약서가 있대.”

“….”

“그거 써 줘. 엄마를 위해서 그거 써 줘.”

그날 그 모의 당당하고 단호한 요구에 이응은 화가 났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살아진 적 없었던 세상에서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응은 몹시도 통탄스러웠다. 그래서 이응은 결연하게 자신의 모를 보고 말을 했다. 못 써주겠다고. 그 서약서는 못 써주겠다고. 이응의 대답에 이응의 모는 이응의 손을 더욱 꼬옥 잡았었다. 이응의 손이 부서져라 꼬옥 잡았었다.

이응은 잠에 빠져들며 생각했다. 비로소 그때를 고마워할 수 있는 마음이 드는 오늘 그런 꿈을 꾼 것이 아닐까. 오늘에서야 그날에 자신을 그렇게 꼬옥 잡아주었던 일이, 그 손이 고마워서 그런 꿈에, 그런 우주에 가 닿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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