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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08. 2022

이응의 우주

15. 이응과 부(1)


1년 하고도 반년 전, 이응에게는 꽤나 별것이었던 것들이 이응의 부의 말에 의해 별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멈추지 않던 이응의 두 어깨가 떨림을 멈추었다. 포기의 마음은 그렇게 이응의 양 어깨에 힘을 탁 풀어버렸다.

“아빠, 이제 그만… 해요.”

이응의 싸늘하게 내리 깔아진 한 마디에 이응의 부는 소리 높여 화살처럼 쏘아대던 말을 멈추었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말, 반성을 했지만 실망도 하고 화도 났다는 말, 네가 선택한 거지 자기는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말, 왜 자기 눈으로 볼 때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앤데 굳이 유별나게 굴려고 하냐는 말, 그냥 좀 힘든 거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지 남들 다 그렇게 하는 거 왜 너만 굳이 유난을 떠냐는 말, 굳이 돈을 쳐 들여가며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고 모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화가 났다는 말, 그때그때 이야기하지 왜 꼭 매번 갑자기 한 번에 그래서 사람 당황스럽게 만드냐는 말, 자기는 충분히 그랬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끼리 그런 이야기할 분위기가 안 되었냐는 말,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기 힘든 모든 이야기를 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말, 고생이란 걸 한 번도 안 해보고 커서 그거 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한다는 말, 그럼 지난날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울면서 하냐는 말, 다 그렇게 산다는 말, 너만 내 눈치 보는 거 아니고 솔직히 자신도 네 눈치 많이 본다는 말, 자신이 어릴 땐 진짜로 어려웠었다는 말, 너희 둘 살기 좀 편하라고 이 고생을 하는 자신은 왜 못 봐 주고 못 알아봐 주냐는 말.    

이응은 부의 차 조수석에서 내려 장본 것을 챙겨 안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응의 부가 들어오기 전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날 밤 이응은 화장실과 안방 바닥을 오가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다가,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다가를 반복했다.  


다음날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와 9개월 하고 며칠 후 다시 본가에 내려가 이응이 부의 눈을 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 이응은 부의 차에 탈 수도, 부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동안 이응은 부에게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고 짧은 카톡은 남기면서도 본가에 내려가 부를 만나지는 않았다. 매달 생활비를 받을 때가 되면 불안해졌던 마음이 이응의 남동생의 생일이 되고, 이응의 부의 생일이 다가오자 새로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죽이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이응은 다시 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깨만이 아니라 온몸이 떨렸다. 다시 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 부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화살을 떨리는 온몸으로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세달을 끙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 이응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약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12월이 오기 이틀 전날, 이응은 생각보다 신나게 정신건강의학과를 나서며 찬 바람을 얼굴로 훅 맞았을 때, 어렴풋이 ‘그래, 내려갈 때가 온 것 같아.’ 싶었다. 그래서 그 주 주말 김장을 하러 본가에 간다는 비읍에게 이응 역시 본가에 갈까 한다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비읍에게 말을 꺼내고도 익숙하게 등을 덮는 불안에 이응은 본가에 내려가는 버스를 예매하길 꽤 오래 주저했다. 그리곤 주저리주저리 핑계를 늘어놓았다. ‘토요일에 마음이 바뀌면 안 갈 수도 있어.’, ‘아니, 미리 예매하면 굉장히 집에 가고 싶은 사람 같잖아.’, ‘하…. 스콘 집을 들를까? 어쩌지….’ 서산행 버스를 예매, 결제까지 성공시킨 건 다름이 아닌 치과였다. ‘다니던 치과가 아닌 곳은 불신의 영역이야. 다른 병원도 그런데 특히 치과는 더 그래.’하며 비읍과 한바탕 웃은 후 이응은 고속버스 예매 어플을 켰다. 그리곤 불안과 걱정과 의심의 마음에 약간의 결연한 마음을 더해 오전에 본가에 내려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치과만 아니었다면 필히 오후 느지막이 도착하게 예매했을 터였다.


이응은 어떻게 버스를 타고 언제 터미널에 도착했는지 모르게 서산 집에 도착했다. 꼬박 열 달 조금 안 되는 시간만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이응은 와인상을 앞에 두고 모의 오른편에, 부의 맞은편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왔구나, 기어코 그 시간이 왔구나. 이응은 지난 열 달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기다려옴과 동시에 가장 두려웠던 일을 눈앞에 맞고 있었다. 2월, 자신의 부와 그 일이 있고 집을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할 때만 해도 ‘아, 나는 한동안 아빠와 단 둘이 차를 타지 못하겠구나, 아빠와 한 상에서 밥을 먹지 못하겠구나.’ 이응은 생각했다. 그런데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부와 한 상에서 어찌어찌 체하지 않고 다 먹고 나니, 그냥 이렇게 말까도 생각했다.   

‘그냥 이야기하지 말까? 그냥 이렇게 대충 적당히 먼 관계로, 많은 이야기는 서로 대충 삼키면서, 전처럼 ‘우린 이렇게 적당히 화목해요.’ 믿으며 살까? 여태까지 혼자 잘 가져왔는데 그냥 계속 혼자 이고 지고 살까? 그럼 애써 차린 이 와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말을 하긴 해야겠지? 하…. 그냥 대충 가볍게 이야기하고 끝낼까? 그러다 2월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혹시 몰라 아침에 마지막으로 짐가방에 구겨 넣었던, 작년 상담치료 시작 전에 받았던 종합심리검사 해석지와 올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새로 받은 우울, 불안, 스트레스 뇌파검사 결과지, 그리고 불안, 초조, 욱, 답답할 때 먹으라고 챙겨주신 필요시 약을 이야기 시작 전 옆에 가져다 놓아야 하나 이응은 고민했다. 첫마디를 쉽게 꺼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이응은 애꿎은 음식들만 입에 욱여넣었다. 이응은 자신만 그렇게 꼭 고장 난 것처럼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응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응의 부는 툭툭 끊어지는 스트링 치즈를 이로 뚝뚝 끊으며 “야, 이건 짝퉁인가 보다 실처럼 안 늘어나.” 하며 딴지를 걸었고, 이응의 모는 “이건 저거랑 깊이가 다르네.” 하고 와인잔 깊이가 다르다고 대충 던진 이응의 말을 열심히 잡아 “그러게, 내 게 더 깊네. 직접 유리를 붙여서 만들었나? 주물 틀 자국은 무늬 때문에 안 보이는데.” 하면서 열심히 와인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양가 없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말문을 연 건 이응의 모였다.

“병원이 집이랑 멀지 않은 곳에 있대요. 걸어 다닌대요. 딸내미, 다시 병원 다니기로 했대요.”

이응은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럽게 맛이 없는 와인 두 잔이 이미 이응의 목을 타고 넘어갔고, 이응은 그 와인을 세 잔 마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응은 자신의 세 번째 잔이 채워지기 전에 모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그냥 제가 이야기할게요.”

첫마디를 어렵게 떼고도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 어떤 이야기로 이어 나가야 할지 몰라 이응은 한숨을 크게 푸욱 쉬었다.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이야기부터, 뭐 중간에 끊기면 내가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엄마가 이야기할 수도 있고 채워나가면 되니까. 그냥 편하게 시작해.”

이응의 부는 가만히 이응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부에게 설명을 하기로 하고 서산 집에 내려온 것이니 이응은 그 일이 있었던 2월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왜 이런 일이 자신과 부에게 벌어졌는지, 왜 이응 자신은 올해 설 이후부터 아홉 달, 아니 열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본가에 내려올 수 없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부에게 말을 할 수 없었는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막상 말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말은 매끄럽게 잘 이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응은 계속 긴장하고 떨었다.

‘아빠의 얼굴에 화가 올라오진 않을까? 갑자기 큰 소리를 치는 건 아닐까? 강한 반발의 말로 내 말이 끊기지는 않을까? 별안간 욕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아빠 앞에서 영원히 내 입이 닫히게 되지는 않을까? …. 영원히 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이응은   문장  문장 신중하게 이었다. 때때로 어떤 이와는 이야기를  나가며 마음이 놓이거나 풀리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응이 부와 이야기를  나가는 동안, 그리고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입을 닫을 때까지, 그리고 이내 이응의 부의 입이 열릴 때까지 이응은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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