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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08. 2022

이응의 우주

16. 이응과 부(2)


2020년 열 달 동안 왜 상담을 받았는지, 동생과 같이 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내용으로 상담을 받았는지, 어떤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그동안 이응 자신 안의 가족의 표상은 어떠했고, 상담을 받으며 그리고, 자신의 모와 동생과 수일, 수십일, 수달을 이야기하며 그 표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당신, 부의 표상은 어떠했는지, 부는 자신에게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올해 초와 올 2월, 자신과 부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에게는 어떤 일이었고, 어떤 의미였는지. 지난 아홉 달을 어떻게 지냈고, 어떻게 괴로워했는지. 그리고 이내 왜 다시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이응은 무려 두세 시간 동안 혼자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이응의 모와 동생이 아는 이야기도 있었고,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이응의 부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였다.

“사실은, 아빠의 생일, 동생의 생일 전후로 잠을 잘 못 잤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네, 한 세 달을요. 매일 밤마다 형체 없는 거대한 불안에 잠식되어 뜬 눈으로 3시 4시까지 잠에 들지 못했어요. 그 불안을 온전히 맨 정신으로 받아내고 견뎌내다 지쳐 쓰러지고…. 어떤 밤은 그러다가 운이 좋게 잠에 들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날이 더 많았어요.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어떤 날은 14시간이 넘게 자게 되기도 했어요. 그 와중에 일상은 지켜보겠다고 이런저런 걸 하는데 잠을 그렇게 자니까 살기가, 살아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난주 화요일엔 새벽 6시가 넘어서도 잠들기 어려웠어요.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또 자 봐야지.’ 하고 내려와서 화장실에 갔어요. 손을 닦고 나오는데 눈앞에 상상 속의 제가 보였어요. 제가 복층 난간에 목을 매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온몸을 벌벌 떨면서, 목을 맨 저를 지나 올라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잠에 들기 전에, 짧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 만큼 했다. 혼자 할 만큼 했다. 혼자서는 더 이상 못 하겠다. 뭔가가,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갔어요.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몇 시간을 계속 차분하게 이야기했는데 마지막에 무서웠다는 말을 하면서는 숨이 가슴으로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숨 대신 이응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침묵이 흘렀다.

“살려고 간 거잖아. 그러려고 병원에 다시 간 거잖아.”

이번에도 역시 이응의 모가 입을 열었다. 이응은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 이응에게 이응의 모는 고맙다고 말을 했다. 용기 내어 와서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응의 말이 끝나고 이응의 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리곤 이응의 모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을 시작했다.

“그래, 어렵게 내려와서 말을 해 줘서 고맙고. 근데 아빠도 정리가 안 돼서, 어떤 말은 들으면서 ‘그랬구나, 그럴 수 있었겠다.’ 싶기도 한데, 어떤 말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고 생각이 좀 더 정리가 된 후에, 그때 아빠는 말을 할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응이 지난 2년간 겪은 모든 일을 단지 ‘부’라는 이유로 하루 만에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응과 이응의 모는 “당연히.” 했다.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죽겠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거야. 사람들이 다 장난으로 가볍게 ‘어우, 죽겠다.’ 하는 것도, 나는 마음이…. 죽겠다는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게 다 사람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아홉  하고도 며칠 , 이응을 와르르 무너지게   말이었다. 이응은 수년을 죽고 싶어  사람이었고 상상 속의 자신을  번이고 죽인 사람이었다. 이응은 분명 죽는 것보다 사는   무섭고 두려운 사람이었다. 잠깐 죽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영원히 이렇게 사는 것보다  절망적일 거라고 생각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이응에게 이응의 부는  말이 있고   말이 있다고 그랬던 것이었다.  말에 이응은 와르르 무너졌었다. ‘내가 나로 겪은 모든 삶과  삶을 말하는 모든 말은 아빠 앞에서 영원부정당하는구나. 아빠는  진짜 이야기를 영원히 들어주지 않겠구나.’ 이응은 절망했었다. 자신의 부의 말에 이응은 ‘나는 내가 어떻게 힘들었다는 말도, 얼마만큼 절망적이었다는 말도, 아빠의 기준, 세상의  ‘일반적이라고 하는  기준에 맞춰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하는구나. 나는 나의 언어로 나의 삶을 말하지 못하는구나.’ 이응은 허탈해했다.


이응의 부는 아홉 달 하고도 며칠 후, 이응에게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이응은 그날과 같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다. 이후 이응의 부가 이어 한 말 때문이었다.

“사람이 그래.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내 친구, 형제, 내 또래가 아프다고 하면 ‘그래, 그렇지. 이제 하나 둘 고장 날 때가 되었지.’ 그래. 내 부모, 어른들이 아프면 ‘그래, 그만큼 오래 사셨으니까.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래. 근데 자식이 아프다고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그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끊어 내는 이응의 부의 얼굴에 허망함과 무력함이 비쳤다. 이응의 부가 애써 삼킨 눈물이 이응의 눈에서 흘렀다.

“오늘까지만. 앞으론 그런 말.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내일부터는 안 하는 거야.”

이응은 시선을 떨구고 눈을 끔뻑였다.

“아빠도 힘들었어. 아빠도 잠이 안 오더라. 일을 갔다 와서 9시에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 오랜만에 푹 오래 잤다 하면 2시, 3시야. 그럼 그때부터 잠에 들지 못하는 거야.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때문에. 나는, 나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어도 내 위에 어른들, 내 친구들, 내 주변에 딱 하나, ‘저는 떳떳합니다. 자랑할만합니다.’ 한 게 우리 식구였어. 그런데. 응. …. 나 여기, 알아. 너 서울 집 어디 있는지 알아. 너 서울 집 주소 알아. 어떤 때는 그냥 올라갈까. 찾아갈까도 했어. 엄마랑 아들이 너네 집, 서울 집 간 날, 아빠도 갈려고 그랬어. 그런데 너가 생각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꾹 참았어. 나는 우리 가족 톡방도 나가려고 그랬어. 이젠 나를 다 소외시키나. 그럼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있나. 승질이 나서 나갈려고도 했어.”


이응은 이응만 그런 줄 알았다. 이응만 이응의 지옥에서 견디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모두가 모두의 지옥에서 가까스로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다. 모는 모의 지옥에서, 동생은 동생의 지옥에서 그리고 부는 부의 지옥에서 견디고 있었다.

“왜 모를까. 원래 그래. 원래 신경질적이고, 표현도 거칠고, 그래서 욕을 쓰다가 안 쓰면 주변에서 그래. ‘원래 하던 대로 하세요.’ 그게 어색하니까. 그게 아빠의 표현이니까. 그게 아빠인 거야. 가족은 원래 그러잖아. 알아주고. 그 눈빛만으로도 알아주고. 내가 전에 핸드폰에 너 이름 어떻게 저장해 놨는지도 보여줬을 텐데. (‘친구 같은 사랑하는 딸’ 이렇게 적혀 있었던 걸로 이응은 기억한다.) 이건 뭐 나만 그런 거였네. 외사랑이었네. 나만 사랑하고, 뭐 너는 아니었어.”

이응의 부의 넋두리에 이응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빠를 소외시킨 게 아니었어요. 다만 내가 용기가 없어서. 간단한 말이라도 꺼내고, 그걸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그랬어요.”

“아니 용기가 왜 필요하냐고. 참나. 가족이 이야기하는데 그냥 하면 되지.”

“아니, 들어 보셔. 용기가 없어서 그랬고, 절대 아빠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다만 그냥 무서워서 그랬던 거지.”

“아니, 그게 왜. 왜 무서워. 그리고 너는 자꾸 버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네, 알아요. 그치만 제가 그렇게 느꼈다는 거예요.”

“하…. 참, 그걸 다 일일이 말로 해야 아나. 말 안 해도 다 알지.”

“아니요. 몰라요. 아빠도 제가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거 말하기 전까지 몰랐잖아요.”

“그렇지!”

“네! 그런 거예요. 말 안 하면 몰라요. 어떻게 알아 그걸. 제가 요즘에 계속 하는 말이 있는데 ‘당연한 건 없어.’라는 거예요.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요. 말 안 했는데 알아주는 거? 그런 거 없어요. 말해야 알아요. 당연한 게 없다는 건 타인을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당연한 거 없어요. 말을 해야 해요. 그리고 사람은 말한 것, 말로 들은 것을 믿어요.”

“…응.”


와인상에서의 대화가 끝나고 이부자리에 눕기까지 이응은 그저 얼떨떨했다. 대화가 우려했던 일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다고, 막 후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많은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몸을 누이고 나서도 두통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전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응의 머릿속에는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 오늘까지만 해라. 내일부턴 안 하는 거다.’하는 말이 가득 찼다.

거실에서 부의 코 고는 소리, 안방 침대 위에서 모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응도 얼른 잠에 들고 싶었다. 챙겨 온 수면보조제를 먹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수면보조제를 먹고 잠에 들면 그 밤의 기억이 더 빨리, 더 많이 휘발될까 봐 눈을 더 꼭 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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