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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10. 2022

이응의 우주

18. 이응과 모(2)


“살려고 간 거잖아. 그러려고 병원에 다시 간 거잖아.”

 

두세 시간을 혼자 이야기하고 이응과 모와 부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을 때 이응의 모가 입을 열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 이응에게 이응의 모는 고맙다고 말을 했다. 용기 내어 와서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어 아니라고 했다.


“너가 엄마랑 아빠랑 말을 해도 모른다고 했는데, 안 듣는다고 했는데 아니야. 너 이야기 다 듣고 있어. 다 들었어. 너가 상담을 받고 와서 이야기를 할 때부터 다. 엄마도 그때 정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엄마는 너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엄마든 너든. 엄마는 학교에선 동료 교사로,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의 선생님으로, 집에서는 남편의 아내로, 너희 둘의 엄마로 너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엄마도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너가 힘들다고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너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해 줘야 할까. 너가 2층 너 방에서 그림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엄마, 이게 뭔 줄 아세요? 이건 불안이에요.” 했던 날도 기억해. 그때도 너무 놀랐어. 그래서 뭐라든 같이 하자고 하고, 상담도 받으라고 한 거야.”

이응은 처음으로 모의 말이 들렸다. 이응이 기억하는 우울과 불안의 시간 안에서 처음으로 모의 말이 들렸다. 이응의 마음의 귀가 그 말을 들었고, 이응의 마음의 마음이 처음으로 모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말 뜻 그대로 온전하게 마음 안으로 들였다.

‘엄마가 핑계로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나를 걱정했구나. 걱정해서 하는 말이구나.’

‘그 그림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난해하네.’ 한 마디 했던 게 당황해서, 놀라서 그랬던 거였구나.’

‘저게 엄마의 이야기구나.’


모의 이야기가 빠짐없이 온전하게 이응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넉넉해진 마음으로 며칠 전의 오해도 풀 수 있었다. ‘시간을 끈 것이라니,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못 듣는구나.’ 했던 이응의 마음의 마음이 모의 아홉 달이면 시간을 끌만큼 끌지 않았느냐는 말을 다시 들었다. ‘아홉 달이면 열 달, 열한 달이 되기 쉬운데, 그럼 너가 아빠에게 더 이야기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냐.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내려오면 좋을 것 같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는 모의 말을 들어 마음에 온전히 들였다. 얼마 전 모 프로를 보며 자신도 모의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의 마음에 들일 수 있을 때 들었더라면 자신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며 느꼈던 씁쓸함과 설움도 조금은 가신 기분이었다.


다음날 모와 농로를 도는데 모가 이응에게 또 한 번 고맙다고 말을 했다.

“아빠한테도 이야기하니까 기분이 어때?”

“그냥…. 막 후련하지는 않은데 중요한 말은 다 한 것 같아.”

어느 날은 차를 타고 들어오는데 라디오에서 사연이 나오더라고.

“아픈데, 죽을 것 같이 아픈데. 몸이 아프면 남들이 다 알아주는데, 몸 아픈 것도 아니라 말하기도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더라. 듣는데 그랬어. ‘에휴…. 우리 딸내미 이야기네.’ 그래서 어제 너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렇지…. 힘들지.’ 했어.”

이응의 양볼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전날 이응이 한 말을 모가 기억해 준 것이었다. 이응이 부에게 지난 아홉 달을 이야기하다가 꺼낸 말을 모가 기억해 주었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병에 걸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잖아요. 되려 자기들이 알아보고,  병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생존율이 얼마고, 치료는   있고, 없고, 뭐가 좋고, 나쁘고 그러잖아요. 막말로 그래. 암에 걸렸어. 죽을 수도 있대. 그럼 사람들이 조심하고 안타까워하잖아. 얼마나 살지 모른다고. 언제까지   있을지 모른다고. 근데 우울증도 똑같거든요. 언제 죽을지 몰라. 내일이  수도 있고,   수도 있어. 근데 우울증, 불안증인 사람은 내가 이야기를 해야 . ‘내가 이래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요.’ 내가  입으로 일일이. 내가 직접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결과를 듣고 그다음 와서 직접 ‘이렇대요. 저렇고요, 이랬어요.’ 내가 일일이 . 그걸 이야기해. 그럼 그걸 들어?  들어요. 니가 유난이다. 니가 유별나게 구는 거다. 니가 나약한 거다. 니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 너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다. 세상 사람 그렇게 산다. 너만 그러는 거다. …. 그래서 지난 아홉 달이, 지난 2년이 아니 5년이 10년이 너무 힘들었어요. 말을  해서 모르는 ? 알아요. 저도 알아요. 그래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 근데 그걸, 내가 힘들고 죽겠는   정도 하면 알아서 알아주면 좋겠는데 나는 가서 내가  직접  입으로 지난하고 지겨운 이야기를 해야 . 들을 때까지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야 . 그냥 이야기하면   들으니까,  알아들을  있게 표현도 고르고 걸러서  이야기를 해야 . 그럼요, 그러다 보면요, 억울하고 화가 나요. ‘?  내가 해야 ?  내가 이야기를 해야 ?  일일이, 뭐든지 일일이 내가  해야 ?’”

이응의 모는 다 들어주고 있었다. 이응의 모도 이응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알아. 너가 힘들다고 하면, ‘응, 딸내미 정말 힘들구나.’ 알아, 엄마는.”

찬 바람에 눈물이 차가워질 만한데도 이응의 두 눈에선 계속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다시 한번 어려웠을 텐데 내려와서 말해 줘서 고마워.”

자신만큼 힘들었을 모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이응은 모의 그 말이, 그 순간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모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

“응. 진짜 고마워.”

이응은 자신의 모를 껴안고 소리 없이 얼마간 울었다. 전날 밤 부에게 말을 하며 ‘이게 잘하는 짓일까.’ 싶던 마음이 ‘다행이다. 와서 이야기를 하길 정말 잘했다.’ 싶어 졌다.


이응과 이응의 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입원해 계신 조부와 영상통화를 했다. 소리를 잘 못 들으시는 조부가 잘 알아들으실 수 있게 입모양을 크게 크게 하며 이응은 퇴원을 하시면 또다시 내려와 찾아뵙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응은 자신의 조부가 얼른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퇴원을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응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올라타기 전 자신의 모와 안으며 인사를 할 때도, 출발하는 버스에서 모를 향해 손을 흔들 때도 더 이상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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