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이영 Jun 27. 2022

이응의 우주

19.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1)


각자의 우주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개중에는 타인보다 자신이 먼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보다 타인이 먼저인 사람이 있다. 자라온 대부분의 시간 안에서 이응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았다. 여러 사람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자신의 기분을 잘 살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매번 낯설고 어색해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에 서툰 사람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응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눈물 나게도 여전히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또 여러 사람 중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차려 섬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려 날카롭게 반응을 하는 사람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응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서 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았다.


최근 다른 선생님과 다시 시작한 상담에서 이응은 전과 같은 말을 들었다.

“이응 씨는 여전히 실제로 상대가 그럴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는 것까지 알아차려 헤아려 주는 사람이에요.”

“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렇죠?”

이응은 어리둥절했다. 이응은 자신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응은 스스로를 자라온 대부분의 시간 안에서 자신보다 타인이 먼저였던 사람이었을지언정,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런 사람으로 사는 중일지언정, 이제는 더 이상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과하게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그래서 지나치게 섬세하게 마음 쓰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응은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다.

“이응 씨가 문밖을 나서자 할머님의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이응 씨가 떠나는 게 아쉬우셨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아버지의 시간이 남았으니 한 바퀴 더 돌고 가자하셨던 말도 자식들이 떠나는 게 아쉬워서 그러셨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응 씨는 할머니도 아빠도 우리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그러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아닐 수도 있거든요.”

“아….”

“그리고 어디였죠? 아, 여기. 1년 6개월 전 차 안에서도 그 후 9개월 만에 만나서도 아버지는 이응 씨에게 같은 말을 했어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울했고 죽고 싶었다고 말한 이응 씨에게 아버지는 그때와 똑같이 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어 그랬어요. 그런데 이응 씨는 그게 이해가 됐어요. 아버지가 실제로 어린 자식을 잃은 트라우마가 있는지 아닌지 몰라요. 그런데 이응 씨는 아버지를 이해해 줬어요.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패혈증으로 아이를 잃었던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응 씨는 이응 씨를 와르르 무너지게 한 말을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을 이해해 줬어요.”

“네…. 그러네요.”

이응 씨를 제일 먼저 알아줘요. 제일 먼저 바라봐줘요. 이응은 꼭 그런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앗, 이 역시도….)


“오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담 동안 이응 씨는 ‘보편적’, ‘일반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 보편적, 일반적이라는 말은, 그 말은 누구의 시선인가요? 이응 씨 자신의 시선인가요? 아니면 타인의 시선인가요? 타인이라면 누구의 시선인가요?”


이응은 나고 자라온 대부분의 시간 안에서 자신보다 타인이 먼저였던 사람이었다. 그 타인에 해당하는 사람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분명 이응의 부와 모였다.

이응은 그 이유를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찾았다.

이응이 기억하지 못하는 최초의 기억은 버려짐의 기억이었다. 이는 어느 날 불현듯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해낸 것이었다. 이응과 한때 친했던 선생님이 오랜만에 이응의 집에 들른 날이었다. 그 선생님의 말씀에 딸이 처음으로 엄마 없이 혼자 잔 날,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나고 선생님이 처음으로 외박을 하고 온 다음날 아이가 삐져 한나절을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이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눈가가 붉어지고 촉촉해진 이유를 이응은 다음의 부의 말을 듣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이응의 부는 그때를 회상하며 킬킬 웃으며 말했다.

“얘도 어릴 때 병점 어머님 댁에 떼어 놓고 오면 그렇게 문을 막고 서서 울었는데. 그래서 주의를 돌리고, 정신이 다른데 팔리면 그렇게 몰래 빠져나오곤 했는데.”

부의 말에 이응은 하마터면 고인 눈물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렇지만 이는 당시 이응 자신의 생각에도 황당한 반응이었기에 이응은 얼른 자신도 모르게 고인 눈물을 삼켰다.

이응은 세 돌이 될 때까지 병점의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부와 모의 맞벌이가 그 이유였다. 그 후 이응이 열 살이 되던 해 조부모가 서산으로 이사를 오게 된 후에도 이응은 종종 그들에게 맡겨졌다.

“그런 적 없어. 너는 자꾸 우리가 버렸다고 하는데 우린 너 한 번도 버린 적 없어.”

그렇다. 이응의 부모는 이응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응이 버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이응의 우주에서 세 돌 때까지 이응은 버려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린 날의 이응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부와 모의 품이 아닌 다른 이의 품에 맡겨졌다. 그리고 그 품에서 키워지고 자라다 때가 되면 자신을 다시 찾은 부와 모를 만났다. 이응은 때가 되면 부와 모에게 돌아갔고, 또 때가 되면 맡겨졌다. 이응은 버려지지 않은 채 버려지고 찾아지지 않은 채 찾아졌다. 그때 이응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응은 그때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고, 으레 아이는 우니까, 어렸던 이응의 울음은 애써 무시되었다.


세 돌이 지나고 이응은 부와 모에게 찾아졌다. 그땐, 길게 찾아졌다. 유일한 문제는 그때 이응이 혼자 찾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응은 갓 태어난 남동생과 함께 부와 모에게 찾아졌다. 이응이 비로소 부와 모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응의 모의 품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이응의 모는 늘 그 아이의 곁에 있었다. 이응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때를 떠올리면 매번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는 이응의 모의 말 때문이기도 했다.

“너는 키우기 쉬운 애였어. 갓난쟁이였던 동생과는 다르게 너는 꼭 다 큰 애 같았어. 해야 할 거 알아서 착착 찾아서 척척 하는 애였어.”

여전히 어렸던 자신은 도대체 어떤 아이였을까, 어떤 아이였던 걸까 생각하면 이응은 마음이 한없이 쓸쓸해졌다.


이응과 이응의 동생이 자랄 때 이응의 모는 쉽게 말을 했다.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확 어디다 버려 버린다.”

“너네 또 그러면 이 집에서 내 쫓겨나는 거야.”

“너 다시 한번만 더 그래 봐, 그럼 이 집 식구 아니야. 엄마 딸도 아니고 아빠 딸도 아니야.”

그런 말을 들으며 매를 맞을 때면 눈물만 찔끔 흘려내는 동생과는 다르게 이응은 눈물을 죽죽 흘려내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응은 그렇게 다시는 학원을 빠지지 않았고, 모의 지갑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학습지 답지를 보지도 않았고 성적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응은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해야 할 건 알아서 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알아서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응은 몇 번이고 버려졌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이응의 우주에서 이응은 언제든 그들의 부모로부터 버려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어렸던 이응이 살아낸 이응 자신의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응은 알아서 컸다. 이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보다 부와 모가 더 먼저인 사람으로 컸다. 그들에게 다시는 버려지지 않도록 그들이 먼저인 사람으로 알아서 자랐다.


이전 18화 이응의 우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