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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28. 2022

이응의 우주

20.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2)


이응의 우주에는 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자신의 기분을 잘 살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이응 자신은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에 의문이 들어 그 감정을 낯설어하거나 자신의 기분에 확신을 갖지 못해 그 기분을 어색해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늘 이응은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닥칠 때면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기분이 주변의 그 일반적이라고 하는 반응과 부합하는지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느껴 하는 것에 부합하는지- 보편적이라고 하는 반응 안에 수용 가능한지를 -보편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을 하면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는지- 매번 살폈다. 그런 면에서 이응은 스스로에게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 사람에 속했다.


어려서부터 무시되고 경시되던 이응의 울음은 커서도 크게 다른 취급을 받게 되지 않았다. 이응이 무언가를 바라고 우는 게 아닌 울음에도 이응의 부와 모는 그저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이응의 울음이 유일하게 받아들여지던 때는, 그러니까 이응이 유일하게 모의 품에 안겨 울 수 있었던 때는 매를 맞고 시뻘겋고 시퍼레진 종아리에 약을 바른 후뿐이었다. 엄마가 너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야. 알지?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라는 말을 들을 때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응의 울음은 그저 부와 모의 눈에 화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뚝 그쳐.”

“울지 마.”

“좀 질질 짜지 마.”

“또 울어?”

“넌 툭하면 우니.”

한 마디에 그쳤던 무정한 말은 이응이 자라며 점점 길어졌다. 이응이 알아듣고 -이해도 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말로 변했다. 이응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보내진 프랑스에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흐르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을 때 노트북 너머의 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울지 마. 울면서 말하면 그 말의 설득력을 잃어.”

“일주일에 한 번이야.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고 전화하는데 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잡쳐.”


“하. 진짜 짜증 나게 넌 그 나이 먹고도 울고 싶니?”

“운다고 해결이 되니.”

이응이 원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눈물 앞에서도 이응의 부와 모는 자신의 논리와 기분이 중요할 뿐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말이 더 중요할 뿐이었다. 부모의 화와 짜증 그리고 잔인한 말들 앞에 처음엔 차갑기만 했던 이응의 눈물은 점점 뜨겁게 변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이응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내면서는 반대로 더 차가워진 말로 변명을 했다.

“그냥 원래 잘 울었대요. 원래 잘 우는 애였대요.”

“원래 그랬대요. 유치원 다닐 때도, 초등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그랬대요. 애는 착한데 잘 운다고.”

“저 원래 잘 울어요.”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야.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그냥 눈물이 나와.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돌아보면 울음만, 슬픔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렸던 이응은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마음껏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 날 그랬던 일을 십수 년이 지나서야 상담 선생님께 꺼내 놓으며 마음껏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떨었다.

“어릴 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동생이 제 오른쪽 귀에 비비탄 총을 쏜 적이 있어요. 초등학생 때? 한창 비비탄 총이 놀잇감으로 유행하던 때가 있었어요. 동생은 성인 손에도 살짝 큰 검은색 권총 모양의 비비탄 총을 가지고 있었어요. 동생이 그 비비탄 총을 가지고 놀 때면 엄마는 그런 동생에게 ‘저얼대 사람에게 쏘면 안 된다?’ 말을 했지만 동생은 그 말을 적당히 흘려들었어요. 제 귀에 비비탄 총을 쏜 날도 그랬어요. 동생이 아마 그 총을 저에게 겨눠 쏘는 척을 하거나 깐족댔을 거예요. 잘은 기억이 안 나요. 근데 제가 아마 그랬겠죠? ‘쏴 봐. 쏘지도 못할 거면서.’ 뭐 그런 말을. 그때 저는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누워 있었어요. 그 말에 동생은 바로 저에게로 와서 하늘을 향해 있는 저의 오른쪽 귀에 총구를 가져다 대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어요. 다행히 총알은 그 안에 들어있지 않았어요. 뭐 총알이 안 들어 있었으니까 동생이 방아쇠를 당긴 거겠죠. 근데 그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하얀색의 비비탄 총알 없이도, ‘쾅!’ 하는 그 소리는, 그 소리의 크기 자체만으로 저를 겁먹게 만들기 충분했어요. 단숨에 온몸이 굳었어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저는 본능적으로 알았어요. 울면 안 된다. 무서워하면 안 된다. 내가 지금 무서워하고 있는 이 사실을 저 애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저는 그 소리에, 그 애가 저에게 한 행위에 제가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그 애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어요. 그 사실을 들키는 순간 그 애는 저에게 더한 짓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나서서 그 상황을 정리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행동은 잘못되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정리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그 상황에서 두려웠지만 두려워하지 못했고, 동생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 자리를 떠났어요. 저는 그제야 안 들리는 귀를 부여잡고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귀를 살살 두드렸다, 잡아 늘렸다 놓았다, 귀를 막았다 떼었다를 반복했어요.”

그 말을 하는 내내 이응의 몸은 오른쪽 귀가 ‘쾅!’ 하고 울린 그날로 돌아가 있었다. 오른쪽 귀가 그때 몇 분간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먹먹했고, 두 어깨와 양 팔이 덜덜덜 떨렸으며 머리 안에서는 연두색과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의 무언가가 모래시계 모양으로, 화산 모양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응은 그제야 그때 자신이 굉장히 놀랐었고, 두려웠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충분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동생이 두 손가락에 힘껏 힘을 실어 이응의 두 눈을 찔렸던 밤 역시 그랬었다는 사실도 이응은 곧장 깨달았다. 그래서 동생과 단 둘이 같은 집에 살 때, 동생이 몰래 자신의 방에 들어와 야구 방망이로 자신의 뒤통수를 갈기는 상상이 반복적으로 든 것이었다는 사실 역시 덩달아.


이응은 생의 몇몇 중요한 순간, 자신이 느끼는 -느껴 마땅했던- 감정이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역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이응의 슬픔, 울음이 그랬고 공포가, 두려움과 무서움이, 당혹스러움이 그랬다. 그런 반복된 경험은 이응 스스로 느끼는 감정과 기분에 의문이 들게 만들었고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응은 그렇게 누구의 시선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과 기분보다) 그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 하는, ‘보통의’ 사람과 그들이 느낀다는 그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응은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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