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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n 29. 2022

이응의 우주

21.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3)


어려서부터 이응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기분에는 의문을 품고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감정과 기분은 예민하게 알아차려 섬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응의 곁에는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분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응은 자신의 우주를 구성하는 이들이 그들의 감정과 기분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그를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없이 표현을 할 때마다, 그것들을 예민하게 알아채고 최선을 다해 그에 맞춰 최대한 이상적으로 반응했다. 그런 이응이 받아들이기에 이들은 이응에게 은은히 바라는 것들이 많았다. 이들이 그들의 욕구를 무심하고 또 은근하게 비칠 때마다 이응은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었다. 되려 자신이 놓친 것은 없었나 이응은 초조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뒤를 돌아 살피곤 했다.


일찍부터  번이고 자신이   없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려지지 않은  버려지는 경험을 했던 이응은 적어도 앞으로의 시간에선 자신이   있는 이유로 다시 그들에게 버려져서는  됐다. 그래서 이응은 그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에게 바랄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미루어 짐작해 그것까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이응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들어가선 책가방과 준비물은 알아서 챙겼고, 학습지와 문제집은 밀리는  없이  힘으로 풀었다. 친구와 놀고 싶어 하면서도 부모가 보낸 학원엘 갔고 종종 늦는 부와 모를 위해 동생을 돌보고, 미처 못해 쌓여 있는 집안일을 했다. 퉁퉁 불은 아침 설거지를 했고, 압력밥솥으로 밥을 지어 저녁상을 차려 동생을 먹였다. 밥상을 치웠고, 저녁 설거지를 했다.  일을  끝내고 동생을 재워도 들어오지 않는 부와 모를 위해 방울토마토를 닦아 꼭지를  그릇에 담고 랩을 씌워 놓았다. 부와 모의 사회적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며 4년을 홀로 견뎠다. 자신이 가기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며 그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기를 바라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이후엔 나가기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낯선 나라로 보내져 4 반을 살며 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우울증이 심해져 생긴 난독증을 안고도 책을 꾸준히 읽었고, 스스로의 우울과 불안을 감당하기 버거워하면서도 그들이 알아들을  있는 말을 골랐다. 이응은 자신이   있는  최선을 다해 그들이 바라는 것과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들어주었다.


이응의 부와 모는 그것들을 자신들의 덕과 공이라고 여겼다. 이응의 사려와 배려가 그들이 받고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이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하지 못했다. 그를 복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응이 들이는 수고를 진작에 알았을 터였다. 이응의 모는 자신을 똑 닮아 척척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딸의 삶을 자신의 노력과 인내가 어린 삶을 닮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고, 이응의 부는 딸의 삶을 어려움의 이응 하나 모르는, 떠먹여 주면 떠먹여 주는 대로 받아먹는 편한 삶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이응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조금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릴 때마다 이응을 한심해하고 어이없어하며 무정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아아, 하기 싫어요.”

“엄마는 국민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밥하는 걸 배웠어. 엄마는 삼촌 이모들 다 건사해야 했어. 너는 동생 하나만 보면 되잖아.”

“그 애가 나랑 성관계하는 만화 그려서 돌려봤대….”

“니 나이대 남자 애들은 다 그래.”

“아빠 걔가 어떤 애냐면! 나 4년 동안 씹고 다닌 애야. 나는 걔 때문에 정말 4년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너가 처음엔 그렇게 말해서 나도 좀 그랬는데 걔 그렇게 나쁜 애 아니더라. 괜찮은 애더라. 그때도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겠지.”

“이 학교 너무 힘들어…. 자퇴하고 싶어.”

“씨발.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어. 살기 편하니까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어!!”

“생리를 6개월에 한 번씩 하던 게 지금은 하혈을 3주째 하고 있어. 빈혈이 와서 그런데 나 한국에서 진료만 받고 오면 안 될까? 여기 산부인과 예약하려고 전화 돌려봤는데 임신한 게 아니라 최소 4개월은 기다려야 한대.”

“그냥 거기에서 가. 쌍. 정신 차려. 여기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는 게 한두 푼이야?”

“나 정신과 상담을 좀… 받아 볼까?”

“…. 니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 그 정도로 심각해?”

그런 말을 들으며 이응은 자랐다. 그래서 그런 말에 단념하고 체념하는 게 이응에겐 익숙했다. 그런 이응이 부와 모의 감정과 기분을 알아채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스스로 상처를 덜 받기 위해 택한 일종의 방어 행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가장 서툰 이응은 여전히 어리석게도 바란다. 자신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과거와 현재가 한 번쯤은 부에게 긍정되길. 자신의 이야기에 배신감만 느낄 것이 아니라 함께 서러워해 주고 울어주길.    

“그때, 아빠가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아니라 어떤 말을 했으면 이응 씨가 괜찮았을 것 같아요?”

“음….”

“괜찮아요. 생각해 보고 말해 줘도 돼요.”

“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같이 울어줬으면 괜찮았을 것 같아요. 저는 알거든요. 아빠가 울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울지 않았어요. 되려 억울하다는 듯 버럭 화를 냈어요. 화를 내고 짜증을 냈고 저에게 상처를 냈어요. 저는 그 시간을 파들파들 떨며 견뎠어요.”

그때의 이응은 부의 어떤 말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이응은 그저 부의 울음으로써 자신의 울음이 긍정되기를 그토록 바랐던 것이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지는 일이 타인에게 그저 배신감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님을, 우울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짜증과 화만을 부르는 말이 아님을 이응은 확인받고 싶었다. 이응은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부에게 털어놓으며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 달라고 엉엉 울고 싶었고, 그렇게 자신의 부가 같이 목놓아 울어주기를 바랐다.


“이번엔 아빠한테 묻고 싶더라고요. 아빠는 정말 조금도 슬프지 않았냐고요. 배신감에 화만났냐고요. 그래서 그렇게 큰 소리를 냈어야 했느냐고요. 한참 동안 우울했고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딸의 말 앞으로 사람이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말을 돌려주었어야 했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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