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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Jul 10. 2022

이응의 우주

22. 첨언


상대가 그럴 것이다 짐작하고 단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일은 지금까지의 이응에게 그리 특별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의 발견에 이게 짚고 넘어가야 할 새삼스러운 것이 되었다.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 없죠. 그렇지만 이응 씨는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그랬어요. 우리가 서로 확인을 했나요? 네, 아니요. 확인을 하지 않았어요. 왜요? 왜 그럴까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상담사인 제가 이응 씨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음…. 생각해 봤는데요. 대화 상황에서 상대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날아올 수도 있는 경우를 제가 가정하고 미리 막으려고 그러는 거 같아요.”

“왜 그럴까요?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이 있을까요?”

“음…. 네. 수도 없이 많죠. 근데 두 가지가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올라요. 아빠랑 친구랑 있었던 일이요.”

“아빠와의 일은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었던 그 일일까요?”

“아, 네. 그것도 있는데 다른 것도 있어요.”

이야기는 흘러 흘러 청소기 때문에 이응의 부가 이응이 이해할 수 없는 화를 냈던 날까지 돌아갔다.

“제가 서산 본가에서 부모님이랑 지내고 있을 때였어요. 동생이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해야 하는 시점이었죠. 그 애는 자취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현실적으로 그러니까 금전적으로 저와 동생을 따로 분리시켜 독립을 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 사정을 저는 잘 알고 있었어요. 무튼 저는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었어서 그냥 동생이랑 같이 살겠다고, 동생의 대학이 있는 도시로 나가 살겠다고 말했어요. 제 딴에는 많이 양보를 … 아니, 양보라기보단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그렇게 결정이 되고, 하루는 밥을 먹는데 아빠가 물었어요. 나가 사는데 필요한 게 없냐고. 저는 청소기가 필요하다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집에 있는 핸디 청소기를 가져가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말이 그냥 핸디 청소기지 이미 한 4-5년을 사용한 거라 몇 시간을 충전하면 몇 분만에 방전이 되는 그런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 청소기로 큰 거실에 방 두 개 딸린 집을 청소하기란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아빠는 계속 집에 있는 걸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거냐 굳이 그걸 사야 하는 거냐 그냥 그거 가져가라 계속 말씀을 하셨어요. 듣다 지쳐 그럼 그냥 그거 제 돈으로 살게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말이 아빠의 속을 긁었는지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그게 니 돈이야???”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며 자기 소리에 자기가 화가 났는지 아빠는 하고 싶은 말이란 말은 다 마구 쏟아냈어요. 그딴 식으로 말을 하지 마라. 그게 니 돈이냐. 너 그딴 식으로 살지 말아라…. 근데 저는 그 와중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요. 그대로 일어나버리면 사달이 날 게 뻔했거든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싸가지 없이 어디 자리를 뜨냐,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은 왜 내려놓냐, 말 안 끝났다, 앉아라…. 그래서, 그게 눈에 선해서 밥을 입에 욱여넣고 밥그릇을 비우고 그걸 설거지 통에 넣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어요. 그때까지 아빠는 씩씩거리면서 저를 찢을 듯 흘겨보며 멈출줄 모르고 말씀을 하셨어요.”

“이런….”

“히히…. 네.”

“예상하지 못한 그 반응과 말들이 어땠나요?”

“어…. 그러니까, 저는. 그때, 말 그대로 버티고 있었거든요. 삶을 버티고 있었어요.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런 저에게 아빠가 그런 말을 한 거예요. 그딴 식으로 살지 말라고. 저는 그 말이 참 아팠어요. 그 말은 저를 갈가리 찢어놨어요. 물론 아빠 말은 제가 이해한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겠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제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말로 들리더라고요.”

“네. 이응 씨가 그렇게 들었어요. 그런데 ‘물론 아빠 말은 제가 이해한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겠죠.’ 이번에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네요. 확인했나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응 씨가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인가요?”

“아니… 죠.”

“네. 그런데 왜일까요?”

“아까 말한 대로 그 상황에 예비하기 위해 자꾸 그러는 것 같아요. 대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날아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그걸 미리 막으려고. 저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늘 되게 당황스러웠고, 그런 상황 뒤에 자주 혼자 남겨졌었거든요. 그래서 상황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고, 저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올 그런 상황이 싫어요.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어요. 그래서 말을 하면서도 미리 생각을 하고, 지레짐작하고. 첨언을 해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는데, 내가 유난인 걸 수도 있는데 등등요.”

이응은 말을 하며 알았다. 그동안 이응의 말 안에 참 첨언이 많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는데, 내가 유난인 걸 수도 있는데….’

필요하지 않은 말들이었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은 스스로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타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있는 동시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다. 자명한 ,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기준과, 스스로의 세계와 스스로의 우주에선 결코 이상할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결코 틀릴  없다.


이응 안의 그 이상함의 기준, 예민함의 기준, 유난의 기준, 모든 것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부정할 수 없이 지난날의 부와 모의 말속에서 설정되고 단정 지어진 것들이었다.

“힁, 짜증 나요.”

“왜요?”

“저번엔 도덕성, 윤리에 대한 기준도 결국 엄마와 아빠가 세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사소한 말 습관 하나하나, 말을 하는 행위, 무언가를 보는 행위와 관점에도 부정할 수 없이 그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짜증 나요.”

“맞아요. 앞으로 발견하는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이 무수히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게 절망적이라는 동시에 희망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 것들은 수도 없이 많이 나올 거예요. 매번 절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발견을 하면 그건 이응 씨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해요. 점점 이응 씨의 것을 찾을 거예요.”


“오늘도 또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볼게요. 그때 아버지가 이응 씨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마구 말들을 쏟아내요. 지금의 이응 씨가 그날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우리 가정을 했죠?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역시 이응 씨가 그 상황 이후에 감당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밥을 입에 욱여넣는 그 손목을 잡고 숟가락을 빼앗아서 내려놓을 거예요. 안 먹어도 돼. 자리에서 일어나도 돼. 너무 많은 말들을 들을 필요 없어. 그렇게 오래 마음 안에 담고 들을 말이 아님에도 너는 그 말을 아주 오래오래 너의 의지가 아닌 채로 듣고 또 들을 거야. 그리곤 괴로워할 거야. 그러니 듣지 말고 일어나 자리를 떠 하고 저를 상황에서 구할 거예요. 그리고 아빠에게 말을 할 거예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당신은 알지. 감정에 앞서 마구 쏟아내고 있는 중이라는 거 당신도 잘 알지. 그거 애한테 상처가 될 말이라는 거 알지. 알면서도 하는 거지. 그거 알면 조용히 해. 그 말 아니라도 충분히 힘든 아이야. 그만해라고 말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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