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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Sep 18. 2022

이응의 우주

24. 행복에 관한 대화들


시옷과 함께 한 두 달 여의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둘은 끝에 바라던 것들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응은 과정 안에서 이미 굉장한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고, 미쳐 열지 못 한 선물들을 챙겨 나왔다고 여겼다.

이응은 두 달 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는 귀한 경험을 했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응은 그들을 보는 것 그 자체로 두 달이 충만했다고 스스로의 가슴에 양손을 포개고 벅참을 느꼈다.


프로젝트와 교육 내내 그들은 종종 괴로워했다.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였고, 아이같이 엉엉 울기도 했고,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다. 시옷도 그랬다. 하루는 그런 고통의 눈 가운데 있던 시옷에게 이응이 말을 건넸다.  

“시옷아, 나는 너가 이걸 하는 동안 힘들어도 괴롭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에 시옷은 이응의 눈을 쳐다보며 답했다.

“이응아, 나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괴로워! 그런데 나는 이게 너무 재미있어!”

시옷의 말을 듣고 둘러본 강의실 안에는 그렇게 반짝반짝 빛을 내며 괴로워하는 시옷과 같은 이들이 있었다. 이응은 그 모습에 퍽 부러워졌다.  


*


“그게 뭐라고, 가죽 쪼가리를 가지고 카드 지갑 하나 만들어 내는 게 나는 요즘 행복해.”

얼마 후 이응이 광화문의 한 커피집에서 리을에게 한 말이었다. 요즘 이응은 가죽을 자르고, 실에 밀랍을 먹이고, 바늘 두 개에 실을 꿰어 바느질을 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그랬다. 분명 거짓 하나, 과장 하나 없는 솔직한 말이긴 했어도 그리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고 이응은 생각했는데 그 말에 리을이 두 눈에 차오른 눈물을 훔쳐냈다. 리을은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랬다. 그 말이 꼭 반짝거리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부러워했던 얼마 전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며칠 뒤 그날을 떠올려 같은 소리를 하는 리을에게 이응은 기다란 숨을 뱉어낸 뒤 머리 곳곳을 스쳐가는 별스럽지 않은 말들을 붙잡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행복은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야. 우린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아주 괴롭고 지치는 일들 속에 살면서 찰나에 일어나는 몇몇의 일들을 찾는 거야. 그렇게 주운 그 찰나들을 붙잡을 뿐이고, 그 찰나들을 행복이라 이름할 뿐이야.

그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면, 나도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괴로워하며 보내. 내가 만든 가죽 제품을 팔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하는 것이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아. 그 일들을 계속하며 행복해하기보다는 괴로워해. 허접한 스탠드 두 대 아래에서 3년이 다 된 핸드폰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려니 어떤 각도로 핸드폰을 가져다 대도 사진이 마음에 들게 찍히지 않아. 그렇다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는 없으니 나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하지.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편집을 해. 나는 신이 아니어서 내 눈으로 보는 색을 화면 안에서 그대로 잡아낼 수 없어. 그렇지만 계속 끙끙대며 가장 비슷한 색을 찾아 색감을 맞춰. 그럼에도 아로나스카이 색은 여전히 쉽지 않아. 그렇게 편집한 사진들을 가지고 상세페이지를 만들어. 팔려면 뭐 별 수 없지. 내가 무언갈 만들면 세상 사람들이 ‘우와! 얘 이거 만들었네!’ 하고 바로 알아주지 않으니까 나는 ‘저 이거 팔아요~!’ 하고 알리고 광고를 해야 해. 그래야 아니까. 그래서 뭐, 대부분의 시간들을 나는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하고, 상세 페이지를 만드는데 보내면서 괴로워해. 그러며 계속 시간을 보내다 어쩌다 내가 만든 걸 사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 뭔가를 만들며 비로소 손으로 사부작 거리는 그 아주 잠깐, 찰나에 행복을 느끼는 거야. 이렇게 아주 잠깐 행복을 느껴. 그런데 그런다? 사람들은 요즘 내 얼굴이 좋아졌대. 행복해 보인대. 그렇게 판단을 해. 나는 요즘 모든 순간을 행복해하면서 보내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아, 물론 행복해. 하지만 나도 긴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을 살면서 아주 잠깐 행복을 느낄 뿐이야. 다만 이런 삶에 만족을 느낄 뿐이고. 그저 찰나의 행복을 긁어 모아 이 정도의 행복만 있어도 나는 만족하는 삶을 사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야. 행복 그거 별거 없어.

아, 그리고 이런 행복이라 이름 하여진 찰나의 행동, 그니까 쉽게 말해서 행복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용기한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행복이 나에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몰라. 나는 알거든. 지금은 행복인 것이 어느 시점에는 행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야. 왜냐하면 작년 이맘때 나는 분명 다른 것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나는 작년에 종종 내가 자주 갔던 스타벅스에 가서 블랙 글레이즈드 라테를 시켰어. 그걸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전기가오리 텍스트를 읽거나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다가 잠깐 멈춰서 그 한 모금을 넘긴 후 남은 잔향을 안으로 느끼며 행복을 느끼곤 했어. 그래서 작년에 뻑하면 사람들이 얼추 빠진 저녁 시간대 스타벅스를 찾았지. 근데 올해 다시 찾아가 마신 블랙 글레이즈드 라테는 작년보다 맛이 덜하더라고. 그걸 마시며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았어. 올해 이즈음의 행복은 작년 이맘때의 행복과는 다른 모양을 하게 된 거야. 이렇게 행복에는 기한이 있어. 아마 지금 느끼는 이런 모양의 행복이 이후에는, 내년에는 행복이라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괜찮아. 요즈음은 내가 이런 모양의 것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후 역시 내가 찾을 무언가가 나를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고 있을 테니까 말야. 맞아. 그러기 위해선 나 역시도 너와 같이 계속 찾아야 해. 그러니 어려워 말고 같이 해보자는 말이야.”

“응. 나도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

“뭐든 해 봐. 이것저것 해봐야 해. 그래야 알아.”

“응. 나도 열심히 찾아봐야지.”

“좋아. 다시 말하지만 행복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나가며 찾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니까 너무 크게 생각하고 고민할 거 없어. 그냥 해 보면 돼.”

“응. 근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근데 하나는 알겠어. 집에 있으면 안 돼.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고 축축 쳐지고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일단 나가야지.”

“맞아. 어디든 가 봐. 뭐든 해 보고.”

알겠어. 좋아. 뭐든 해볼게.”


*


“아, 맞아. 나 어제 히읗 언니 만났잖아.”

“응응, 맞아. 어땠어?”

“히읗 언니랑 선유도 공원 갔는데 거기 온실이 있더라? 거길 계절마다 몇 번을 갔는데 거기 온실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어쩌다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

“응응. 나 원래 식물원 이런데 별로 큰 감흥 없고,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언니가 온실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어. 언니가 온실에 있는 식물들 보면서 ‘어머~ 뭐도 있네? 우와? 너무 예쁘다!’ 하면서 감탄하고, 가볍게 톡톡 건드리고, 냄새도 맡고, 떨어진 열매도 주워서 만져보고, 사진도 찍고 하는데 언니가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야. 그걸 보는데 너무 좋았어. 그래서 나 식물원 가는 거 크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언니한테 같이 10월에 서울식물원 가자고 했어.”

“그래? 왜?”

“그냥, 좋아서. 행복해하는 사람을 옆에서 보는 게 좋아서?”

“아~. 야. 너무 좋다! 어? 너 그래서 추석에 광화문에 나랑 같이 커피 마셔주러 간 거구나? 내가 좋아하니까?”

“음, 그렇지?”

“뭐야. 너무 따숩다. 따숩다, 따수워.”

이응은 멀지 않은 날 리을이 분명 자신이 행복이라 이름하는 찰나를 찾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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