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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Sep 25. 2022

이응의 우주

25. 말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들


보고 들으며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한편 스스로 말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다고 이응은 생각했다. 이응은 열흘간의 울적함 내지 우울함의 정체를 알지 못하다가 그간의 일들을 밖으로 꺼내놓으며 비로소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열흘간 했던 선택 중에 저를 위한 선택이 없었더라고요.”

이응은 습관처럼 타인의 선택을 따르고, 상황에 어울리는 선택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습관, 그것은 습관이었다.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그렇게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진, 고정된 행동 방식이었다.

“아냐, 미음아. 너가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면 한동안 하지 못할 테니까 너가 선택해. 너가 먹자는 것 먹고, 가자는 곳 갈게. 나는 따를게.”

“그래, 리을. 같이 여행도 못 가 주는데, 같이 술도 못 마셔주는데 차 한 잔 정도는 더 마실 수 있지. 가자.”

“그걸 꼭 지금 정해야 하는 거야? 그냥 내려가서 정하면 안 돼? 알았어. 너 마음대로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응은 스스로 결정했던 일에도, 상황에 끌려 어쩔 수 없이 따랐던 일에도 그리고 미처 결정할 여유가 없었던 일에도 계속 스스로를 내어 주고 있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결정에 따르겠다고 나선 때에도, 자꾸만 반복된 거절에 마지못해 당장 들어줄 수 있는 요청을 들어주게 된 때에도, 몰아세워진 요구에 당장 대답을 내놓아야만 했던 때에도 이응은 자신의 안에 영문도 모르고 스스로를 빼앗기는 기분을 서서히 쌓아갔다. 그렇게 이응의 안에서 정의하기 어려운 서글픔이 점점 불어났다.


“그래서 어제는 온전히 저를 위한 선택들만 하면서 하루를 채웠어요. 당장 하고 싶지 않은, 해야 하는 일들을 미뤘어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패밀리 사이즈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서 하루 종일 먹었고요. 저녁엔 햄버거를 한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 거리며 먹었어요. 아 요즘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 건강식만 먹고 있었거든요.”

“기분이 좀 나아지던가요?”

“음…. 기대했던 것보다 기분이 썩 괜찮아지지 않더라고요. 밤에는 괜히 그렇게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분명 저를 위한 선택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기분이 썩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어요.”

“근데요, 보면요. 이응 씨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스스로의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내어 주고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고 했어요.”

“아아. 네. 아, 그러네요. 맞아요. 제가 관계 안에서 생겼던 울적함을 혼자서만 알아서 해결하려 했네요.”

이응은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렇게 행동해 풀릴 울적함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선택을 하지 않아서, 선택권을 타인에게 내어줘서 생긴, 해결 간단한 서글픔이 아니었다.


“원래 거절을 잘 못하나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말로는 ‘싫어’라고 곧잘 하는데요. 그런데 정작 행동은 그 요구를 들어주고 있어요.”

“그렇군요. 행동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싫다고 말을 하고 안 들어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냥 들어줄 수 있는 거니까,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니까 들어주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상황이 아름다워지니까요.”

“왜 그럴까요? 이응 씨는 선택을 할 때, 상황을 많이 고려하는 편인가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럼 이응 씨는 또 왜 타인의 요구나 바람을 들어주게 될까요? 단지 상황 때문일까요?”

“음…. 그러게요. 상황이 아름다워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음…. 그건 아마.”

그건 아마 자신의 욕심 때문일 거라고 이응은 답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고 싶은 욕심에 그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이응은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에요.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에요. 말을 시작하면서는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현재와 미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랬는데 과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네요. 하하. 저는 어려서 할머니 손에 키워졌어요. 엄마, 아빠가 사는 곳이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곳이 멀었는데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는 자주, 주기적으로 저를 할머니, 할아버지께 맡겼어요. 나중에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저는 그때마다 버려지는 기분을 느꼈더랬죠. 그 감정은 어렸던 저뿐만 아니라 훌쩍 큰 저까지도 꽤 오랫동안 괴롭혀왔어요. 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맡겨져 키워지지 않게 된 때에도 저는 종종 그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었어요. 그래서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부모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었고, 부모가 은근히 바라는 것, 그리고 때때로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것도 원할 거라고 생각하며 들어주며 자랐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걸 열심히 했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그렇게 유학까지 갔고요. 그런데 저는 그 삶에 대한 피드백으로 ‘부정’을 받았어요. ‘내가 언제, 우리가 언제, 우린 너에게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한 번도 그런 요구? 강요한 적 없어.’ 이렇게요.”

“그럼 어떤 대답을 들었더라면 괜찮았을까요?”

“음…. 그러게요. 아마 이런 말들이었겠죠? ‘미안하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하다. 너가 그렇게 살아내는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잘 살아내줘서 고맙다.’ 이런 종류의. 저는 여전히 그런 긍정적 피드백을 바라나 봐요. 관계와 상황 안에서의 긍정적 피드백. 그래서 입으로는 거절의 말을 하면서도 ‘나 하나만 하면 되는 건데’ 생각하면서 기꺼이 그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거죠. 그 답으로 긍정적 피드백이나 그에 상응하는 상황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바라고요. 아, 그런데 최근에 그런 말을 들었네었요. 그게 마음을 괴롭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말이었을까요?”

“친구들에게 종종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요구를 들어주는 행동을 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한 번은 ‘싫어’라고 말하고 요구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친한 친구 둘이 ‘얘는 가끔 이럴 때가 있더라? 싫다고 말하고 진짜 안 해.’라고 말하며 서로 웃으며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이상했어요. 저는 제 생각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그 친구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하물며 싫다고 말하고 안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말에 그게 저에게 한정된 이상한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굉장히 마음이 이상했어요.”

이응은 그때 그 친구들의 말을 관계 안에서의 일종의 부정적 피드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마음에 걸려 요즈음 타인의 요구를 그토록 열심히 들어주고 있었다는 것도.


“이응 씨는 주변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때로는 자신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네….”

“쿠션이 필요해요.”

사람은 자신에게 요구된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라고 그랬다. 그래서 때때로 거절의 말은 꺼내질 수밖에 없고, 거절의 행동은 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한편 거절을 하는 말에도 그리고 요구된 행동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도 일종에 쿠션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응은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물었다. 그건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는, 일종의 스스로를 달래는 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건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너무 힘들면 친구의 연락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 없어요.’라는 말이 나에게는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주더라 하던 시옷의 말이 마음을 스쳤다. 그 말이 시옷에게는 쿠션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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