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THE ROCK TOUR&Kings Canyon.
[ULURU, AUSTRALIA] 29.01.2015~02.02.2015
2-1. THE ROCK TOUR&Kings Canyon.
The Rock Tour with Paul
4시 반 쯤 누군가의 아이폰 알람이 울렸다. 하나 둘 씩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4시 50분 쯤 한국인 언니가 욕실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누워있었더니, 일본인 남자들이 나를 깨웠다. 손가락으로 OK라고 깨어있음을 알렸고, 언니가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5시 반 출발. 5시부터 백패커스에서 준비한 아침 식사가 제공되지만, 이 시간에 음식을 먹으면 십중팔구로 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나는 이른 기상에서 오는 속쓰림을 참으며 짐을 꾸렸다. 보증금으로 맡긴 20달러를 다시 받아 챙겼고, ‘생각보다 사람이 적네요-’등의 대화를 나누며 출발을 기다렸다. 5시 40분과 50분 사이 쯤 됐으려나. 우리의 투어 차량으로 보이는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아마 다른 숙박시설을 들러 팀원들을 태우고 온 듯 했다. 뒤의 컨테이너에 가방을 실으려고 하니, 운전기사는 내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small bag은 갖고 타라고 했다. 오오. 다행이다. 언니와 나는 가장 뒷자리의 한 칸 오른쪽 앞자리에 두 자리가 비어 함께 앉았다. 백패커스의 직원이 차량에 모두 탔는지 확인했고, 바로 차는 출발하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운 도로를 한참을 달렸다.
8시 반 쯤 됐으려나.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Paul. 3일 동안 우리와 함께 우리와 함께 할 가이드였다. 그리고 운전석 앞 창문에 사인펜으로 룰을 적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3일 동안의 룰을 이야기했다. 1.Drink. ‘술을 마시라’가 아니라 ‘물을 마시라’. 2.Be On Time. 빼지 말고 기왕이면 모든 일정이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3.Do Not Die. 꽤 겁이 나는 단어였지만, 사막도, 우리가 가게 될 곳에서도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일테고, 이 말로 본격적으로 오지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특히 계곡,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곳에서의 셀프 카메라를 금지했다. 셀프 카메라를 찍을 때엔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움직이다가 발이 꼬이는 등, 매우 위험한 사고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에 중요한 첨가제가 될 4. Smile. Paul은 사인펜을 돌리며 창문에 본인의 이름과 출신 등을 쓰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 휴게소에서 휴식 시간.
Paul은 30분 정도 이곳에서 쉬었다 간다며, 9시에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슬슬 배가 고파오던 참이라, Paul에게 점심을 언제 먹냐고 묻자, 2시간 정도 후에 샌드위치와 사과를 줄 것이라고 했다. 내게 “이름이 뭐였지?”라며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애써 기억해내려고 했고, ‘정은’이라고 대답해주자, 이름이 어렵다, 좀 더 쉬운 이름이 없냐-고 묻는다.
사실 영어 이름 사용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과 부모님께서 붙여주신 본명으로 불리길 바라는 마음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정말 다급한 상황에 모두가 내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잘 떠올리지 못해 혹은 본인들은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해 사고라도 난다면?'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해져서, 바로 Jamie라는 영어 이름이 있다고 말했다. Paul은 “OK, Jamie!"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렇게 투어 중에 처음 불린 Jamie라는 나의 이름은, 단언컨대 3일 동안의 투어 중 가장 많이 Paul에게 불린 이름이 되었다.
9시가 되자 다시 출발. 사막을 감상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씩 지쳐온다. 메마른 땅, 생기라고는 없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이는, 마른 녹색의 나무와 풀들의 영원한 복사하기+붙여넣기. 아무리 달려도 이 근처에 사람이라곤 우리 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의 끝없는 도로와 더 끝없는 사막. 11시 즈음에 Paul은 가장 뒤에 앉은 호주인 여자들에게 아이스박스에 빵과 사과가 있으니, 꺼내서 모두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다. 채식주의자 식단도 제공한다더니, 누군가의 빵도 VEGIE라고 적혀있었다. 크고 둥근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였는데, 빵도 꽤 맛있는 빵이었고, 안의 야채와 햄도 맛이 좋았다. 사과도 당도가 적당하여 만족.
Kings Canyon
Kings Canyon에 도착한 것은 12시~1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모자 위에 전날 구입한 Fly Net을 뒤집어썼다. 파리망을 준비한 건 나와 아일랜드에서 온 여자 둘 뿐이었다. 충분한 물, 3리터의 물을 가져가야 한단다. 나는 평소에도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1.5리터의 페트병 하나를 손에 들고 가기로 했다. 손 한 쪽을 페트병 드는 것에 쓰기 때문에 양손이 자유롭지 못했다. 무게도 있어, ‘작은 륙색을 챙겨올 걸-’라며 후회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Paul은 가방 안에 물통을 넣고 물을 바로 바로 섭취할 수 있도록 호스를 연결해두었다. 이 호스를 이용한 사람은 Paul과 아일랜드 여자, 둘 뿐이었다. 준비성이 엄청난 그녀는 같은 백패커스에서 머물렀고, 출발 전에 장기 여행 중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매고 있었다. 화장실을 들렀고, 인포메이션 센터라는 오두막에서 잠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출발.
하지만, Kings Canyon의 입구는 닫혀있었다. 울룰루도 그렇고, 국립공원에선 기온 36도를 기준으로 개장과 폐장을 결정하는데, 이날은 더운 날씨 때문인지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시간의 긴 코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결국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 쪽으로 돌아와 출구쪽으로 들어가 Kings Canyon으로 가기로 했다. 코스가 짧아졌고, 같은 길을 왕복한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관리소 측의 결정이 납득이 가는 무척 뜨거운 날이었다.
출구쪽에서부터 들어가서 그런지, 내려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나가던 일본인들이 “이쪽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네?”라고 하는 걸 보면, 그들이 입장한 후에 닫힌 듯 하다. 오르기 시작해서 5분도 안 되어, 숨이 차기 시작했다. 어제 한 방을 썼던 일본인 ‘타카’는 내게 아직 지치기엔 이르지 않냐고 말했고, 나도 의외의 저질 체력에 당황했다. 사학과 출신으로 답사도 다니곤 했고, 걷는 걸 좋아하여 많이 걸었고,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1만보 이상을 걸었지만, 오르막길은 역시 평지와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Paul은 중간 중간 멈추며 Kings Canyon안의 식물들, 독초 등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여러 가지 알려주었지만, 영어를 못하니 알아들었을 리가 만무하고,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뜻이 ‘milk-milk’라는 식물 뿐. Kings Canyon 중간 중간에 무전을 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었다. 만약에 사고가 생기면 이것을 찾아 연락하라, 그러면 바로 헬리콥터가 와서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었을 때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마 세계 최초의 항공 의료 단체인 Royal Flying Doctor Service(RFDS)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날은 더웠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졌다. 얼마 마시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물을 갈증과 탈수 예방을 위해 수도 없이 입에 댔고, 숨도 거칠어졌다.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아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길은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듯, 가파르고 거칠었다. 하지만 땅만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가도, 잠시 안전한 곳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 순간의 힘듦 따위는 잊게 해줄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백두산 천지를 향해 오르던 때가 생각난다. 둘 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공통점은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백두산에서 바라보았던 광경은 ‘시원함, 청량함’이 가득한 광경이었지만, 킹스 캐년의 광경은 ‘살이 바짝 바짝 말라버릴 정도의 건조함’이 느껴진다는 점. 그리고 단순한 ‘산’이 아니라 지구의 꿈틀거림의 흔적들이 모두 보이는 곳이다 보니, 산에 오른다는 기분보다는 지구의 품속에 안긴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 걷는 것도 잘하는 편이라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투어 가이드인 Paul은 여러 번 “Are you OK, Jamie?”라며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나란 인간은 중력에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게다가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숨조차 쉬기 힘들어지는 저질체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들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아 걷기 수월한 곳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어디로 가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층이 보이는 바위들만 끝없이 펼쳐진 곳들도 있었다. 그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바위들의 끝에는- Kings Canyon이라 불리는 대협곡이 있었다.
탁 트인 시야가 주는 안도감과 행여라도 발을 잘못 구르면 바로 떨어져 세상과 안녕을 고할 것만 같은 아찔함, 이 협곡이 간직하고 있는 긴 시간의 이야기들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끝없이 깊은 고독감. 무한히 건조하고 건조한 녹색들은 그들이 이 메마른 땅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식해왔는지 알려준다. 이 붉은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는 내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가만히, 미동조차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며 버티고 있는 식물들이다. 왜, 인간도 너무 더우면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며 가만히 있지 않는가.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잎들은 만지면 바스러질 것만 같으면서도,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는 올곧은 자세는 식물이라기보다는 마치 바위 같았다. Kings Canyon의 식물들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고독감과 그리고 존경심이 느껴졌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인간인 나는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추워도 징징대는데 말이다.
일행들과 단체 사진도 찍고, Paul에게 부탁해서 개인 사진도 찍었다. 그늘조차도 없는 태양의 바로 아래에서, 그나마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의지해 짧고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올라올 때도 힘들었던 만큼 내려갈 때 역시 힘들었다. 게다가 고소공포증 덕분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두려워 선두 그룹과는 점점 멀어졌고, 가장 마지막이라는 압박과 앞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서둘러 내려가다가 결국 오른쪽 발목 한 번 삐끗, 왼쪽 발목 한 번 삐끗. 잠시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물통에 물을 보충하고 화장실을 가능 등 재정비를 한 후,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15분 정도 걸어서 들어간 곳은 우리가 아까 다녀온 협곡의 아래였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일본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지진을 경험한 터라, 저렇게 떨어져 나간 건 순간의 큰 지진이었을까 천천히 떨어져나간 것일까 등을 물음표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 쪽으로 돌아와, 모두 차에 올라타 다음 일정으로 옮겼다. 사실 Kings Canyon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대협곡도 있지만 바로 조개 화석과 물이 흐르던 흔적들. 조개 화석은 처음에 들어가려다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한 일반적인 코스로 가야 볼 수 있는 듯 했다. 사실 물이 흐르던 흔적은 Kings Canyon 전체가 ‘이곳은 원래 육지가 아니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밟은 모든 바위들은 아무리 봐도 여태껏 살면서 봐온 일반적인 ‘육지의 바위’가 아닌 ‘바다 속’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위에 물살이 보이기도 했다.
Paul은 땀에 흠뻑 젖은 우리들을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우선 근처의 수영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시설이 있는 휴게소로 데려갔고, 조금 더 이동해 작은 수영장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나와 독일인 Hans를 제외하고는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수영복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발만 잠시 담궜다. Paul과 일본인 토모는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이정도의 기온과 건조함이라면 옷은 금방 마를 것 같았다. 'Be on Time', 그 시간을 즐기라고 했지만 수영복이 없는 걸. 그것만으로도 시원해서 만족했지만, 수영복을 준비할 걸- 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