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일부터 4월 3일까지, 그중 4월 1일의 이야기.
갑작스럽지만 4월 초의 친구와 함께 한 3일간의 타이베이 여행 포스팅을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의 일정은 친구의 희망 사항을 최대한으로 접수한 후 계속 상의를 하며 제가 최대한으로 '구겨 넣었'습니다. 예전에 친구와 동경 여행을 갔을 때, 오랜 친구가 멜버른에 왔을 때에도 그랬지만, 전 늘 이 방식으로 여행 일정을 짭니다.
그러나 제가 짜는 스케줄을 추천해드리진 않습니다. 완전히 특정 개인의 희망에 맞춘 스케줄인 데다가 일본 동경 4박 5일 일정에서 3일째 오후에 '발바닥을 잘라버리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하드'합니다. 이번 타이베이 여행 역시 3일째엔 무척 피곤해 두 사람 모두 파김치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실 전 대중교통 이동이 지루하고 서서 가는 게 싫어서 힘들었지 지구력은 좋은 편이라 지쳤을 뿐 몸 상태는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여행으로 온 친구는 힘들어하더라고요.
관광과 식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4/1(토) 동먼(딘타이펑, 스무시)-단수이-스린야시장(큐브 스테이크, 핫스타 지파이, 왕자 감자, 또우화)
4/2(일) <예진지 대중교통 투어> 메인 역 팀호완-예류-진과스(광부 도시락)-지우펀
4/3(월) <핑시선 대중교통 투어> 무자 역 집합-징통-핑시-스펀(땅콩아이스크림, 밀크티)-반차오 키키 레스토랑
우리의 일정은 순도 99% 한국인들이 타이베이에서 '필수 코스'라고 부르는 곳들입니다.(내가 데려간 또우화 집 하나만 한국인들이 먹지 않는 메뉴.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겐 그다지..ㅠㅜ 너무 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음식 후기'를 중심으로 쓸 예정입니다. 재밌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여행기가 되었으면 하네요.
*커버 사진은 4/1에 찍은 사진 중 마땅한 사진이 없어 4/2에 다녀온 지우펀의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혹시나 해서 쓰는데, 개인적인 여행의 스케줄 관련 질문, 조언 요청은 안 받습니다.
***가게명은 '한글-중문-영문-대표 홈페이지(대만)' 순으로 표시하였습니다.
해외에 나와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늘 초반에, 거의 처음 만나는 날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비자로 왔는지-즉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왜 이곳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가 바로 그것이다. 대만의 경우 나의 대답은 테이프를 반복 재생하는 것처럼 늘 같다. '4년 전에 학교에서 대만으로 일주일 동안 연수 올 기회가 있었고, 그때 '대만에서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호주, 독일에서 살면서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지막 워킹홀리데이로 대만으로 오게 되었다.' (물론 그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은 '대만 와서 살아보니까 어떻냐'인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 기회에 써보기로 하겠다)
이번에 함께 한 친구는 무려 4년 전 대만 연수에 함께 참가했던 같은 과 학우로, 그 당시에 대만에 큰 매력을 느껴 서로 여기서 살자!!라고 외친 동무이기도 하다. 그 친구는 오래전부터 이미 회사 동료들에게 '2017년 초에 대만에 여행 갈 것이니 방해하지 말아라'라고 주입을 시켰고, 일이 바빠지기 직전에 겨우 시간을 내 대만을 방문했다. 먹방을 찍겠다고 식비로만 한화로 40만 원을 환전(나의 한 달 월세+공과금보다도 많은 금액)해 온 이 친구는 과연 40만 원을 어떻게 사용하였을까!
동먼 본점 信義店 No. 194, Section 2, Xinyi Road, Da’an District, Taipei City, 106
우리는 '먹방'이라는 목적에 맞게, 해외에서의 첫 재회를 동먼에 위치한 딘타이펑 본점(신의점)에서 맞이하기로 했다. 아침 비행기로 출발해 점심시간에 도착할 예정이라 도착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들어가 대기를 하기로 했다. 친구의 비행기의 출발이 1시간이나 늦어졌고, 다행히 딘타이펑에서는 일행이 모두 모여야 입장 가능하고, 번호가 불린 후에 모두 모일 시 우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라 친구와 만나 직원에게 모두 모였음을 알렸고, 조금 더 기다린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합석 가능하냐고 물었고 우리는 상관없다고 하여 무려 한국인 세 팀이 한 테이블에 앉는 자리로 안내받았다.
딘타이펑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름만 들었지 솔직히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혼자 와서 이 긴 시간을 기다려 이 비싼 음식을 먹기엔 돈도 시간도 아까워 누군가가 한국에서 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인들도 딘타이펑은 비싼 곳이라 잘 가지 않는 곳으로, 주로 여행객들이 가는 음식점이라고.
주문은 친구에게 맡겼다. 소롱포, 샤오마이, 새우 볶음밥 이렇게 주문했다.
드디어 먹어본 딘타이펑의 소롱포. 많은 사람들이 '인생 소롱포'로 꼽는 곳이다.
나와 친구의 평은 같았다. '평범하다'. 솔직히 속으로 '이걸 인생 소롱포로 꼽는다면 그동안 어떤 걸 먹었길래...'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맛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맛있다'라는 생각은 들 줄 알았다. 내가 대만에서 먹은 소롱포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이 집만의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맛있다'란 느낌도 받지 못했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소롱포. 그 평범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기엔 가격이 비싸다.
복불복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딘타이펑은 범아시아적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다. 이 규모와 그 역사에 복불복이 있다면 그건 창피해야 할 일이다. 가게마다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것은 늘 같은 맛을 내기 위함이다. 조리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점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경영자 혹은 주방 총괄자는 조리자에 따라 큰 차이가 없도록 훈련시키고 결과물을 체크한다.
새우 샤오마이. 보통 소롱포보다 좀 더 가격이 있는 메뉴다. 소롱포로 유명한 국부기념관 쪽의 항주 소롱포에서도 내가 선택했던 것은 새우 샤오마이. 이 메뉴 자체가 나와 안 맞는 것 같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 새우를 좋아하는 나도 잘 모르겠다. 속이 부실하고 그저 위에 새우가 올려져 있는 모습이 예쁜 것이 전부인 메뉴란 생각이 든다.
새우 볶음밥. 괜찮게 먹었던 것 같다. 인원수도 두 명이고 내가 많이 먹지 못하다 보니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진 못했다.
서비스는 좋다. 모든 점원들은 가슴에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국기 배지를 달고 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2~3개씩 달고 있었다. 다만 놀란 것은 계단에 붙어있던 구인광고의 급여. 대만의 금년도 법정 최저임금은 대만돈으로 NTD 133이다.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금액이었지만 마침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구인 공고들을 보고 있던 차라 생각보다 높지 않은 금액에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바쁘고 스태프들이 언어를 여러 가지를 구사하는데 이 정도 대우밖에 안 해줘?라고 곧 경력 만 6년이 되는 홀 서버는 기분이 상했다.
二館 No. 16, Lishui Street, Da’an District, Taipei City, 106
모든 일정은 친구의 희망사항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인들에게 망고빙수로 유명한 스무시로 가기로 했다. 1호점은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리는 것조차도 힘들었고 근처에 2호점이 있어 우리는 2호점으로 향했다. 좌석의 반 정도는 예약으로 잡혀있었고, 그 자리에 투어가이드와 관광객 무리가 앉는 걸 보니 여행사 혹은 투어가이드와 계약하여 운영하는 것 같았다.
망고빙수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다. 망고 자체가 나의 선호 과일이 아닐뿐더러, 왜 한국 관광객들이 특별히 대만의 망고 빙수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고. 수많은 과일들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면, 망고는 내게 딸기, 거봉, 키위, 포도 다음쯤 되는 존재라 아마 딸기 빙수, 키위 빙수에 밀려 내가 망고 빙수를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4년 전에 여행 와서 학우들과 스린 야사징에서 빙수를 먹었을 때에도 우린 딸기 빙수를 먹었다.
일단 한국에 눈꽃 빙수라는 것이 유행하기 전에 대만의 망고 빙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부드러운 빙수. 이는 많이 시리지만 의외로 망고 빙수도 먹을 만 하구나 싶었다. 안 그래도 요즘 망고가 철이라더니 슈퍼마켓의 망고 가격이 점점 떨어진다고 하더라. 한 번 먹어봐야겠다. 또 모르지, 대만에서의 생활 덕분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망고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될 지도.
친구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날은 단수이에서 일몰을 보고,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에 들를 수 있다면 들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스린 야시장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몰을 겨우 보고 촬영지는 가지도 못했던 것이 비행기의 연착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여유롭게 걸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빨간 선을 타고 단수이까지 가는 길은 의외로 길어 지칠 수가 있다. 이 시간은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단수이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날을 잘 골라야 한다. 주말이나 공휴일 등 가족 단위 현지인들+해외 관광객들이 몰리면 한 시간 동안 서서 가야 한다. 서서 가는 것에도 자신이 있고 이후에도 걷는 것에도 자신이 있다면 뭐 내가 할 말은 없지만. 아침 비행기인 데다가 인천 공항에선 상당히 먼 곳에 살기 때문에 거의 자지도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 출발한 친구는 전철 안에서 잠을 청했고 나는 기억이 안 난다.
단수이는 4년 전의 연수를 포함해 총 세 번째였는데 처음으로 비가 오지 않는 단수이였다. 일몰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고 영화 촬영지를 방문하는 것은 애초에 힘들 것 같아, 영화 촬영지 방문은 포기하고 단수이 강가를 따라 러버스 브릿지(Lover's Bridge, 淡水情人橋)까지 걸어 가보기로 했다. 구글 검색 기준으로 거리는 4.3km, 예상 소요시간 52분. 단수이 역 앞에서 R26(紅26) 번 버스를 타면 러버스 브릿지가 있는 항구 워런마터우(Tamsui Fisherman's Wharf, 淡水漁人碼頭)까지 갈 수 있다.
타이베이 여행 시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은 것은 '걷지 말고 대중교통 타라, 대중교통 타지 말고 택시 타라'. 글자색도 바꿨고 글씨도 굵게 했고 밑줄도 쳤다. 왜 궁서체가 없는 거니. 어지간히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있고, 어지간히 돈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저 말을 명심하는 것이 좀 더 편하고 훨씬 즐거운 타이베이 여행이 될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 말은 이 타이베이 여행기에 여러 번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서로의 여행 취향, 성향은 물론 체력의 밸런스 역시 맞아야 서로에게 즐거운 여행이 된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비행기를 타지도 않았고, 평소에도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여행자와 같은 조건일 친구는 새벽에 일어났고 몇 시간 동안 비행을 했고 평소에 많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도 아직 첫날이라 나의 친구는 체력이 아직은 있을 때였다.
단수이의 일몰은 아직 단수이 강변을 걷고 있을 때 만났다.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포인트가 따로 있는지, 고가 촬영 장비들이 여기저기 삼각대에 설치되어 있었다. 마침 그 지점을 지나가던 차였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잠시 일몰을 각자의 카메라로 감상했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러버스 브릿지에 도착했을 즈음은 이미 해가 완전히 져 깜깜해져 있었다. 관광객인 친구는 러버스 브릿지의 반대편까지 걸어갔다 왔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특히 계단, 육교, 다리 위에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나는 그 아래에서 기다렸다. 나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영화 촬영지는 제외한 줄 알았는데 친구는 아니었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단수이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 길을 두 번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R26번 버스는 항구와 단수이 역 구간만 운행하는 버스이기 때문에, 항구에서 시발하는 버스를 타 우리는 편하게 앉아 갈 수 있었다. 단수이 역에서 러버스 브릿지로 갈 때 라오지에를 가로질러갔고, 가는 길에 '대왕 카스텔라'를 보았다. 사실 둘 다 구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둘 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바뀌었다. 중간에 내려 대왕 카스텔라를 구입했다.
대왕 카스텔라는 두 개의 가게가 마주 보고 위치해 있는데 서로가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늬 없는' 빵이 원조집이고 '물결무늬'집은 원조가 아니다. 원래 무늬가 없는 집은 현재 물결무늬 집의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유명해지자- 이다음은 예측 가능하리라, 한국인인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건물주가 원조집을 내쫓고 그 자리에 대왕 카스텔라 집을 시작한 것이다. 쫓겨난 원조집은 맞은편에서 작게 가게를 열어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래서 서로가 원조라고 우기는 꼴이 된 것이다.
대왕 카스텔라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 막 대왕 카스텔라 사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조류 파동으로 달걀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이것도 정작 생산지에서의 가격은 변동이 없는데 유통자들이 가격을 올렸고, 급기야 달걀을 수입해오는 지경이 되었다. 내참.) 타격을 입었고, 조금은 진정이 되나 싶더니 이번엔 한 프로그램에서 '대왕 카스텔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고발을 빙자한 거짓 사실을 유포하여 대왕 카스텔라의 인기에 찬 물은 사업 자체가 아예 죽어버렸다. 현재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때는 줄 서서 먹던 대왕 카스텔라를 한국에서 만나는 것은 힘들어진 듯하다.
대왕 카스텔라 源味本舖現烤蛋糕 Original Cake http://www.originalcake.com.tw
맛이 궁금해서 뜯어먹어봤다. 일단 왜 대왕 카스텔라라는 별명이 붙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판매점에서도 카스텔라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고, 먹어 봤을 때에도 카스텔라가 아니었다. 듣기로는 만드는 방법도 카스텔라가 아니라고 들었다. '카스텔라가 아닌데 카스텔라라고 거짓말하고 있다!!!!'는 결국 관광객들을 통해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 문제였던 듯 싶다. 따뜻할 때도 먹어봤고 식었을 때도 먹어봤는데, 많은 후기처럼 식었을 때 먹는 것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오히려 2~3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먹는 것을 추천하는 글들을 본 적이 있다.(당시에 집주인이 아직 같이 살 때라 냉장고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당최 냉장고 쓸 칸을 줬어야지..)
빵과 쿠키류는 좋아하지만 잘 안 먹는 것이 종종 입 안에 이물감이 남는 것이 싫어서인데, 이 빵은 그런 이물감이 남지는 않았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푹신했고 많이 부드러웠다. 이래서 인기였구나 싶더라. 치즈맛도 사 볼 걸 생각했지만, 솔직히 이 크기를 혼자 다 먹기에는 잘라서 냉동 보관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겠더라. 작은 사이즈도 있었으면 했으나 그러면 이 상품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일이니, 그저 계속 장사가 잘 되시길(+악덕 건물주는 잘 안 되길) 바랄 뿐.
LINE 친구 추가를 하면 10원 할인해 준다고 해서 80원에 구입했다. 그렇게 각자 하나씩 사들고 스린 야시장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친구는 스린 야시장의 인기 먹거리를 외우고 있었다. 일단 한 바퀴 돌까 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밤 9시 반이 넘는 시간에도 주말의 스린 야시장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가득했고, 스린 야시장의 입구의 노점들은 어디든 대기 줄이 길었다.
사람과 가게는 많지만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어디든 쭈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군가가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스린 야시장에서 인기 있는 음식들은 대부분이 노점이고, 노점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서서 먹을 수밖에 없다. '걸으면서' 먹을 순 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자유 의지로 걸을 수 없는 곳이라 나란히 걸으며 먹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큐브 스테이크 火焰骰子牛
같은 메뉴여도 이곳저곳에서 파는 곳들이 많다. 특히 큐브 스테이크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얼마 전에 대만 내에서 야시장에서 파는 큐브 스테이크에서 안 좋은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보도가 된 적이 있다.
우리는 걸어 다니다가 적당히 보이는 큐브 스테이크 집에서 사 먹었다. 양념은 친구가 선택했다. 의외로 맛이 나쁘지 않아 다음에 라오허지에 야시장 가면 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걸어 나와 긴 줄이 서 있는 곳들을 발견했다. 왕자 감자와 핫스타 지파이. 핫스타 지파이의 경우엔 알려진 지점이 아닌 다른 분점 같았다. 친구와 나는 각각 지파이와 왕자 감자에서 줄을 서고 일단 사서 만나기로 했다. 길 건너에 있는 한 빌딩의 큰 계단에 나란히 앉아 먹었다. 둘 다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스무시의 망고 빙수 이후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왕자치즈감자 王子起司馬鈴薯 Prince Cheese Potatoes https://www.facebook.com/Prince.Cheese
왕자 치즈 감자는 사실 후렌치 프라이 스타일의 감자튀김인 줄 알았는데 삶은 감자 위에 채소, 옥수수, 햄 등을 뿌리고 녹인 치즈를 얹어주는 것이었다. 핫스타 지파이는 그 크기가 유명했는데, 크기는 크지만 두께가 얇아 동네에서 먹던 보통 사이즈의 지파이를 두들겨 옆으로 펼친 건가 싶었다.
왕자 감자는 꽤 맛있게 먹었다. 밤에 먹기에는 무척 죄책감이 드는 맛으로, 칼로리 폭탄을 먹는 기분이었다.
핫스타 지파이 豪大大雞排 Hot Star Chicken http://www.hotstar.com.tw/
士林店一店 No. 113, Wenlin Road, Shilin District, Taipei City, 111
핫스타 지파이는 친구는 맛있다는데 나는 너무 맛이 없었다. 고기, 튀김옷, 튀김 상태 모두 별로였다. 유명하고 인기인 이유는 분명히 크기 때문일 텐데 하지만 내겐 그것조차도 양이 많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단면이 넓은 것으로 보여 오히려 반감만 들었다. 주변에 핫스타 지파이를 먹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뜯어말리고 싶을 정도. 긴 줄에 서서 기다려서 먹기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게다가 튀김 맛을 보니 기름 상태가 영 아닌 것 같다. 어떤 식으로 기름을 관리하는지는 나는 알 길이 없고, 노점이었고 주말 하루 종일 튀겼을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먹은 지파이를 튀긴 기름의 상태가 나쁜 것은 알겠다. (일본의 세븐일레븐에서, 호주의 일본 음식점에서 일본식 닭튀김-후라이드 치킨, 카라아게 등-을 수년을 튀겼다.) 그 일대에 진동하고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썩은 기름 냄새도 안 좋은 기억에 한몫하는 것 같다. 입구 쪽에 본점으로 보이는 곳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왕자 치즈 감자 옆의 핫스타 지파이는 영 아니었다.(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스린에 있는 정식 매장은 여기 하나란다)
개인적으로는 입구의 우유 튀김을 먹어보고 싶었으나 결국 못 먹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괜찮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니까 내게는 다음이 있다.
늦은 시간에도 주말의(게다가 연휴의) 스린 야시장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기가 빨려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이미 오랫동안 걸은 상태라 몸도 피곤하고. 스린 야시장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우유 튀김은 먹어보고 싶다. 다른 야시장에서는 안 팔려나. 4월 중순부터 일하기 시작한 일본 음식점의 대만인 스탭은 "스린 야시장은 대만 사람들은 안 간다, 거긴 외국인 관광객들만 가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친구가 다음 날 아침 식사는 팀호완에서 먹을 예정이라길래 나도 같이 먹겠다고 했다. 팀호완은 아직 가보질 못했다.
타이베이 여행과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
1) 독일 워홀 시절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 때의 나의 일일 걸음 수는 보통 적어도 22,000보, 많을 땐 4만 보 정도였다. 호주 살 땐 자주 30~40분 거리의 근무지까지 걸어서 출퇴근 해 9,000보 이상 걸었고+장시간 서서, 돌아다니면서 일하기였기 때문에 종일 서 있거나 장시간 걷는 것에는 비교적 지치지 않는 편이다.
휴대폰 어플을 보니 최근 한 달 동안의 평균 도보수는 12,550보라고.(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날 포함) 이번 타이베이 여행기에 적게 될 4월 1일~3일까지의 도보수는 4월 1일 29,092보, 4월 2일 22,991보, 4월 3일 19,569보. 마지막 날은 적게 보이지만 이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한 시간이 6~7시간은 되니 두 발로 걸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현재 휴대폰에 저장된 것 중 최고 기록은 작년 로마(6일간의 일정)에서 귀국 전날인 41,024보로, 그 전날은 36,786보였다. 3.6만 보 걷고 그다음 날에 아무렇지 않게 4.1만보를 걷는 사람이었구나.
2) 많은 여행자들이 '진정한 현지인의 삶을 엿보려면 재래시장을 방문하라'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 중에서 재래시장이 등장했던 것은 경기도 고양시 원당에서 살 때의 2년 정도뿐이었다. 동경에서도 멜버른에서도 뒤셀도르프에서도 주변에 시장 자체가 없었고 어디든 근처에 대형 마트 혹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이 있었다. 멜버른은 South Melbourne Market이나 Prahran Market, Queen Victoria Market 등 규모가 상당히 큰 시장들이 여기저기 있지만 이 시장들과 떨어진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시장이 생활 속에 있다기보다는 휴일에 '놀러' 가는 개념이 더 컸다. 이번 대만은 이전 세 나라와는 다르게 동네마다 작게 장이 서고 있지만, 생활 패턴에 의해 여전히 대형 체인 슈퍼마켓을 이용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로 여행을 가든 굳이 시장에 갈 생각이 들지 않아, 여태껏 시장에 가본 적이 없다.
각자 본인에게 맞는 여행을 하면 되는 것 같다. 평소에 시장을 이용하던 사람이라면 시장에 가고, 대형 체인 슈퍼마켓을 이용하던 사람은 슈퍼마켓에 가고. 나 같은 경우는 그 도시의 가장 알려진, 평이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마신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분위기 다 필요 없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어도 좋으니 커피 맛만 좋으면 장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