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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Jan 05. 2016

ULURU, AUSTRALIA

3-1. Kata-Tjuta

[ULURU, AUSTRALIA] 29.01.2015~02.02.2015

3. THE ROCK TOUR 둘째날-Kata-Tjuta and Uluru(1)


A Dingo Took My Camera Away

    2시 경, 맞춰놓은 알람의 진동에 눈을 떴다. 잠들기 전에는 해가 진 늦은 시각이었지만, 지평선 즈음이 태양빛의 영향을 받아 밤하늘이 완전히 깜깜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저게 은하수구나. 사진에서나 보던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 평생 도시에서만 사는 것은 문명의 혜택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손해 보는 부분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자란 곳은 서울 근교의 베드타운으로, 별은커녕 서울 시내의 도시광에 의해 밤하늘이 늘 밝은 곳이었다. 언제나, 늘 별이 많이 보이는 곳을 동경해왔다. 이번 투어 역시 ‘20대의 마지막 날 세상의 중심, 울룰루의 일몰을 보고, 20대의 마지막 밤은 밤하늘을 이불 삼아 자고, 30대의 첫날 울룰루의 일출을 보겠다’는 목적으로, 기온 40도를 넘나드는 한 여름에 이 사막으로 왔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색이 밝은 아이보리 색이라 아무리 주변이 어둡다 하더라도 눈에 띌 법도 하다. ‘아- 이곳도 모래가 쌓이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손을 뻗으니, 모자가 있던 자리에 모자가 없다. 함께 넣어두었던 물통과 벌레 스프레이는 떨어져있었고, 옆에 세워두었던 맥주병은 쓰러져있었다. 여분의 필름도 사라졌다.


    순간 무척 당황했다. 이 상황은 뭐지? 이 상황을 종합해 추측해보면, 밤새 딩고가 모자를 물고 가져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무게가 있는 물통과 벌레 스프레이는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가벼운 필름은 모자 안에 그대로 있고. 딩고가 가져갔다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며 사진을 찍었다. 별사진은 처음이다. 준비한 삼각대가 한 뼘 길이 정도의 미니 사이즈의 삼각대였던지라, 바닥에 세워두고 뷰파인더로 어떻게 찍힐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 대충 어림잡아 방향을 맞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돈을 들여 긴 다리의 삼각대를 구입할 걸 그랬다. 초점거리는 무한대, 조리개는 최대개방, 시간은 13~15초. 오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얻은 정보대로 실천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라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아닌지는, 여행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니, 여러 장을 찍어야 했다. 만약 제대로 안 나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며, 운에 맡겼다. 몇 장 찍고 ‘이제는 이 광경을 눈에 담자’며 다시 침낭 속에 누웠다. 이 환상적인 광경을 보면서도 나는 불안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의 불안함은 꽤 잘 맞는 편이라 더 불안해졌다.

여러 장을 찍었지만 스캔된 건 한 장 뿐이었다

    기상시간은 4시 반. 잠이나 좀 자두자- 싶어 눈을 감으려던 순간, ‘아, 작은 카메라도 모자 속에 두었는데!’ 아니다. 아닐 거다. 아니라고 확신하고 싶었지만, 작은 카메라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미 꽤 긴 시간 느끼고 있는 불안함에 추가로 이제는 안절부절함까지. 잠이 올 리가 없다. 잠시 일어나 차로 들어가 가방을 뒤져보았다. 필름은 확실히 한 롤이 모자랐고, 가방 속에도 보조가방 속에도 카메라는 없었다.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겁이 많고,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지라 심장은 쪼그라들고, 발은 무거워졌다. 다시 침낭으로 돌아왔다. 어두운데다 원래 물건은 찾을 때엔 안 나오고 포기했을 때 짜잔! 하고 눈앞에 등장하는 법이다. 이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못 찾고 있는 것이다-라고 수도 없이 되뇌이며 내 자신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밤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른다. 나는 앉아서 작은 카메라로 노을을 찍었고, 카메라 안에 들어있던 필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여분의 필름과 밤 사진을 카메라와 릴리이즈, 삼각대를 함께 챙겨 나왔고, 카메라를 발밑에 설치를 했다. 그리고 그 옆에 모자를 놓고 그 안에 갖고 있던 물건들-물통, 벌레 스프레이 등-을 넣었다. 작은 카메라를 버스 안으로 들고 들어간 기억은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카메라가 모자와 함께 사라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가이드 Paul이 깨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4시 경에 Paul이 일어나 아침준비를 시작했다. 4시 15분쯤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옆의 한국인 언니에게 모자와 카메라가 없어졌다고 말하니, 딩고가 그걸 왜 가져가냐, 말이 되지 않는다며 아예 믿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은 ‘누가 봐도’ 딩고가 가져간 것이라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아예 믿지 않는 언니의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누가 봐도’는 나만의 기준일 뿐, 어쩌면 나의 전공병(역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일본인 ‘타카’에게 말하니 자다가 뭔가 부스럭 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단다. 언니 옆에서 자던 일본인 ‘토모’에게 딩고가 가져간 것 같다고 말하니, 딩고가 우리 주변을 돌아다닌 것을 보았단다. Paul에게 다가가 “Paul, I think Dingo took my hat and my camera away last night.”라고 말했다. Paul은  "뭐라고? 그럴 리가 없다, 불가능하다, 이따가 주변을 찾아볼테니 걱정 말아라-" 라고 말했다. 아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모두가 어제처럼 빵과 커피로 식사를 했고, 나는 역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다만 점심 식사 때까지 배가 고플 것 같아 빵에 크림치즈와 잼을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챙겼다.


    모두가 어느 정도 식사를 끝내자, Paul은 “밤새 Jamie의 카메라와 모자가 없어졌다. 아무래도 딩고가 가져간 듯한데, 이 주변에 있을지 모르니 찾아보자.”라고 해서 다 같이 찾았다. 하지만 아직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동이 트기 전이라 주변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우리의 불빛에 딩고의 눈이 반사되어 빛날 뿐이었다. 다 같이 찾아주고 있어 나도 조금 멀리까지 가보았지만, 사람의 물건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들뿐이었다.

    슬슬 출발 시간이 되어 차에 올라탔다. 혹시 마지막 날 앨리스 스프링스로 갈 때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냐고 물으니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문 앞에 앉은 스위스 커플과 그 뒤에 앉은 미국인 잭이 “혹시 너 흰 필름 갖고 있었냐”라고 묻는다. 덴마크에서 온 두 청년이 우리의 잠자리에서 떨어진 곳에 필름을 발견했단다. 자리로 돌아가 확인해보니 내 필름이 맞았다. 필름의 발견으로 모두가 ‘정말로 딩고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 시작, 나의 가설은 힘을 얻었다. 일단 버스의 전조등을 켜고 주변을 한 바퀴 돌 테니 살펴보아라- 해서 모두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카메라, 모자처럼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Paul은 내게 미안하지만 출발해야한다고 했다. Paul에게도 모두에게도 고맙고,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내 뒤에 앉은 호주 여자애들이 내게 unlucky day라고 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20대의 마지막 날, 30살 생일의 전날이 이렇게까지 unlucky day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보험이 들어있느냐, 그럼 다행이네-라고 한다. 일반 디지털 카메라였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 카메라는 어릴 때 아빠가 우리 삼남매를 찍어주었던 카메라다. 어릴 땐 아빠가 나를 렌즈 너머로 보며 찍어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아빠가 있던 렌즈 안쪽에서 언젠가 태어날 나의 아이들을 렌즈 너머로 보며 찍어주고 싶다, 나의 아이들에게 ‘이 카메라는 엄마가 너희만했을 때 너희 할아버지가 엄마와 이모, 삼촌을 찍어주던 카메라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는 꿈을 갖고, 무려 중고 매매가보다도 높은 수리비를 지불하고 고쳐서 사용하고 있던 카메라다. 뒷자리의 호주 애들에게 ‘사실 아빠가 쓰던 카메라다’라고 말했더니 “엄청 소중한 거잖아!”그들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게 느껴졌다.  


The last sunrise in my 20s

    깜깜했던 도로는 점점 밝아졌고, 하늘의 은하수는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고, 주변은 슬슬 ‘새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딘가의 주차장에 도착. 이곳에서 해돋이를 보고 가겠단다. 시간을 넉넉히 주었고, 우리는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작은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갔다.(아마 Yulara안의 Uluru Lookout으로 예상) 걸어가는 내내 머릿속도 마음속도 혼란스러웠다. 기다리던 20대의 마지막 해가 떠오르는 순간인데, 이런 기분으로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 표정이 꽤나 험악했는지, ‘타카’는 내게 “Smile!"이란다. 관망대에 올라가니, 내 속의 카오스는 사라지더라.

    주변은 마치 내 마음 속을 반영한 듯, 구름이 가득 꼈다.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는 곳까지조차도 모두 구름이었다.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 힘들 거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그 구름들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무슨 말을 써야 이 광경을 묘사할 수 있을까. ‘장관’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이렇게 나는 20대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였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호주에 오기 직전에 봤던 사주가 떠오른다. 귀신같았던 사주를 봐주셨던 분이 말하기를, 나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내 금방 잊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유는 ‘귀찮아서’. 나는 워낙 포기가 빠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메라를 슬슬 포기하기 시작하다가도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마음을 잡기도 하고. 혼란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30대의 10년을 향한 특별한 다짐이나 마음가짐은 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언제나 하나뿐이다. 40세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살아있자, 기왕이면 병 없이.

    내려오는 길에는 생각했다. 오늘은 구름 덕분에 어제보다는 덜 덥겠지만, 구름 때문에 수백만의 별이 빛난다는 밤하늘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 다시 차에 올라타 잠시 이동, Yulara내의 근처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거대한 캠핑장으로, 서른 개 정도 되는 막사와 커다란 샤워장을 구비한 곳이었다. 어젯밤의 캠핑장에서는 씻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씻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출발.


Many Heads, Kata Tjuta

    오늘의 첫 일정은 카타쥬타Kata-Tjuta. 울룰루-카타쥬타 국립공원Uluru-Kata Tjuta National Park의 입구에서 입장권과 안내서를 받았고, 입구에서 입장권 확인을 받은 후 국립공원으로 입장했다. 국립공원 안은 전파가 터지는 곳이라 다들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나도 호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피처폰을 켜보니 전파가 터진다! 페이스북 어플로 페이스북에 접속하니 페이스북도 된다. 속은 타들어가는데 누구 하나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울고 싶은데 울지는 못하겠고, 끝없이 갑갑하고, 속상한 마음을 페이스북에 카메라를 잃어버렸다고 징징대며 풀었다. 여동생은 바로 "It's your destiny."라는 쿨한 댓글을 달아주었다.


    울룰루와 카타쥬타는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묶여있지만, 국립공원 입구에서 가까운 울룰루에 비해 카타쥬타는 50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국립공원 안에서의 이동 거리만 해도 수 십 킬로미터, 그리고 카타쥬타와 울룰루의 규모도 상당한 크기이니, 이 국립공원의 규모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자란 경기도 광명시는 가장 북쪽에서 가장 남쪽까지의 길이가 약 15km정도였다. 울룰루-카타쥬타 국립공원의 면적은 1,326 km²(출처:Wikipedia). 서울특별시의 면적이 605.28㎢이니(출처: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립공원은 서울시가 두 개 들어간 크기보다도 조금 더 크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일본 지브리 사의 애니메이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 측에서는 ‘호주의 그곳과 나우시카는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일축하고 있다.¹ 아무래도 카타쥬타에도 ‘바람의 계곡 valley of the winds’이라 불리는 곳이 있기 때문인듯 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우리는 다시 트래킹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카타쥬타 트래킹이 시작되는 곳을 향해 포장되지 않은 돌길을 꽤 걸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니 우울한 마음이 더욱 더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름 굳어가는 얼굴 근육을 펴보겠다며 볼에 바람을 넣어보기도 하고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주변은 온통 붉은 바위산들. ‘멋있다’ 혹은 ‘장관이다’라는 말보다는 ‘기이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Valley of the Winds, ‘바람의 계곡’이란다.

    꽤 걸어서 도착한 트래킹 시작점. 인포메이션 센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평상과 비슷한 쉼터도 있었고, 음수대도 있었다. 그곳에서 Paul은 다시 한 번 지질학 강의를. 나뭇가지와 주변의 돌덩이들을 이용해 땅에 그림을 그리며 카타쥬타와 울룰루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알려주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충 분위기로 봐서는 융기과 침식에 의한 것으로 추측했다.


    트래킹 코스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1시간이 넘는 긴 코스, 하나는 30분짜리의 짧은 코스. Paul은 자신은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들 각자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 알아서 돌고 오란다. 사실 나는 멀리 도는 것보다는 후딱 다녀오고 싶어 짧은 코스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긴 코스를 선택. 길을 잃거나 다칠 것이 두려워 모두와 함께 긴 코스를 걷기로 했다.

    각도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언덕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도 하고, 평지가 있기도 하고, 내리막길이 있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싱그러움은 전혀 없는 건조한 녹색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수 개의 붉고 거대한 바위들과 끝없는 초원과 지평선. 세로 방향으로 땅으로 떨어지는 검은 물의 흔적들과 분명 바람이 뚫어놓았을 수 십 개의 구멍들. 이곳은 도대체 뭐지? 어떻게 저런 것들이 생기지? 나는 정말 이 곳에 있는 것인가? 신기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날씨가 구름이 많아 등산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물론 구름 한 점 없는 날보다는 수월하겠지만, 온도가 온도인 만큼, 땀이 뻘뻘 났고, 올라가면서 수도 없이 물을 마셨다. 파리는 어찌나 달라붙던지. 이곳의 파리는 저리 가라고 손짓으로 치워도 달라붙는다. 파리망을 뒤집어 쓰기를 잘했다. 사진을 찍으며 걷다보니 나와 언니가 또 가장 마지막 그룹이 되었다. 잃어버린 카메라는 일일이 셋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카메라라 트래킹 때 쓸 생각으로 갖고 온 카메라였다. 남은 카메라는 무게도 무거운데다가, 한 컷 찍을 때마다 조리개값, 셔터 스피드 등을 조절하면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사진 컷 수가 늘어날 때마다 앞 팀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함께 출발했던 ‘타카’와 ‘토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앞 팀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서둘러 돌산을 올라갔다.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른 채 눈앞의 길만 따라갔더니 누군가 “Jamie! Are you OK?"라며 부른다. Paul이었다. 긴 코스를 선택한 투어 참가자들이 1시간을 걸려 도착하는 동안 Paul과 미국인 Jack은 짧은 코스를 이용해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의 이름은 Karingana Lookout. 이곳에 꽤 오랜 시간동안 앉아 카타쥬타를 감상했다. 누군가가 가져온 과자도 나누어먹고(나는 안 먹었지만), 단체로 사진도 찍고, 각자 사진을 찍기도 하고. 모두가 “어? 카메라 찾았어?”라고 물었고 이건 다른 카메라라고 답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 억 년 동안의 지구와 공기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만들어 놓은 예술 작품을 보고 있자니, ‘인간인 나는 이 대자연 앞에서는 먼지보다도 더 작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바람과 함께 계곡 저편으로 날아갔다.

    다시 행군 시작. Paul과 Jack이 왔던 짧은 코스를 이용해 내려갔다. 긴 코스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무서웠다.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 커다란 바위를 조심히 내려가야만 했다. 겁이 많은 나는 한 발 한 발 떼기가 무서웠다. 바로 옆에 코끼리의 머리 모양을 닮은 암석이 있었다. 누군가가 Paul에게 이에 얽힌 전설이 있냐고 물으니, Paul도 종종 호주 선주민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는다며,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다시 돌들을 오르락 내리락. 발이 안정적이지 않은 것을 느껴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불안함은 꼭 100%에 가까운 높은 확률로 잘 맞는다. 돌을 오르다가 앞으로 거하게 자빠졌다. 무릎은 멍이 들었고 왼쪽 팔뚝은 까졌다.(상처는 세 달 가까이 사라지지 않았다) Paul을 비롯한 모두가 "Jamie, are you OK?"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이미 내 이름이 제일 많이 불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려오는 내내 또 발목에 충격이 가해졌다. 다시 생각나는 ‘발 조심해라, 역마살 때문에 많이 돌아다녀서, 그만큼 많이 다친다’던 나의 사주. 지름길이었던 만큼 도착도 빨랐고, 다시 처음에 들어올 때 지나왔던 ‘바람의 계곡’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카타쥬타가 한 눈에 보이는 곳Kata Tjuta Dune Viewing에 들렀다. 왼쪽에는 카타쥬타, 오른쪽에는 울룰루가 보인다. 카메라로 한 화면에 담고 싶었지만, 나의 스마트폰은 파노라마 기능이 없고, 나의 카메라는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도 아니며 줌 기능조차도 없다. 아쉬운 대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여전히 구름이 많았고, 파리는 더 많았고, 카타쥬타 트래킹으로 꽤 지친 상태라 감상보다는 ‘빨리 찍고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 괜히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Uluru
Kata-Tjuta. 파노라마 기능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오전에 들렀던 캠핑장. 점심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다 같이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어제 먹고 남은 요리들과 다시 여러 채소, 과일, 통조림들을 준비하였고, 준비한 재료들을 또띠아에 랩wrap처럼 싸 먹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랩으로 싸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인 4명은 매번 실패했고, 프랑스에서 온 참가자들은 손으로 잡지 않고 나이프로 하나 하나 썰어서 포크로 찍어먹었다. 그 외의 지역인 미국과 유럽 출신자들은 익숙한 듯 수월히 싸 먹고 있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우리 아시아인들은 결국 각자 편한대로 먹었다. 나는 또띠아를 조금씩 찢어 그 위에 재료들을 얹어 둥글게 말아- 결론은 '쌈 싸먹듯' 싸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 휴식시간 동안 Paul은 근처의 수영장을 수배하러 떠났다. 원래 갈 예정이었던 수영장이 문이 닫혀있어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단다. 사용 가능한 수영장을 발견해 돌아온 Paul, 수영장에 갈 사람들만 데리고 간다고 했다. 나와 언니는 남아서 샤워하고 쉬겠다고 했고, 미국인 Jack과 독일인 Hans도 남아서 쉬겠다고 하더니 결국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서로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대화가 전혀 안 통하는 아시아 여자애들과 있으려니, 서로 뻘쭘하기는 했다. 언니와 나는 시원한 맥주를 한 캔 씩 마시며 막사 안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벌레 우는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조차 소음의 정도를 측정해보면 20dB(데시벨) 전후로 나온다. 벌레도 새도 울지 않고 오직 공기가 흐르는 소리만 있다면 그보다 더 낮은 데시벨이 나올 것이라 생각될 정도(물론 그럴 일은 없다)로, 주변은 무척 ‘고요’했다. 이렇게 눈을 감고 공기의 따뜻함을 피부로 느끼며, 인간의 소음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금까지 쌓여온 마음의 묵은 때들이 씻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시끄럽고 번잡한 대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며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끄러운 차의 경적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귀가 지쳤고, 수많은 광고와 간판에 눈이 지쳤으며, 빠른 발걸음에 몸이 지쳤고,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마음이 지쳤다. 나는 조용히 천천히 살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빠지겠다고 선언했고, 모두가 가고 있는 방향과는 다른, 나만의 방향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도 마냥 속이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편견을 가진 누군가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다름을 이유로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도 맞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전우가 없이, 오랜 시간동안 혼자 나를 밀어내는 세상에 맞서 밀리지 않도록 바둥대는 것이 때로는 처참할 정도로 외롭게 느껴졌다. 나는 어쩌다 이런 별종이 된 건지. ‘보통’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20대의 10년은 그렇게 내내 외로웠다. 나는 내가 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인간 사회 안이 아닌 자연 속에 푹 안기니 괜히 울컥했다. 비록 인간이 만든 벤치의 위였지만 말이다.


    얼마 안 있어 모두가 돌아와 잠을 자지는 못했고, 잠시 재정비 하고 다시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울룰루로 향한다.



1.「いつものジブリ日誌」(http://www.ghibli.jp/15diary/000102.html), 2002년 12월 10일.

“さて、本日はある噂話について。いつ頃からか知りませんが、ジブリ作品のモデルとなった場所がオーストラリアの至る所にある、という話が一部で広まっているようです。そういうことは特に無いのですが、単なる噂ではなく事実として受け止めている人もいるらしく、ごくたまに問い合わせがあったりします。

 なぜこういう話が広まったかは不明ですが、これまで私が聞いた話から想像するに、発端は「風の谷」だったようです。

 オーストラリアの某所には、本当に「風の谷」という名前(もちろん英語でしょう)の場所があるらしい。で、現地を訪ねた「ナウシカ」を知る人が「ここはもしかしたらナウシカに出てくる風の谷のモデルかもねー」というような話を誰かにしたところ、いつの間にか「モデルかもねー」が「モデルらしい」、しまいには「モデルだ」という風に変化してしまった。で、「ナウシカ」があるなら他の作品もあるのではということで、モデルとされる場所が次々に“推定”され、“推定”が“断定”化されていった、と。

 ジブリ作品でも、ものによっては実在の場所をモデルにしたり参考にしたりしているケースが勿論ありますが、少なくとも、オーストラリアについてはそういう場所は存在しません。にもかかわらず、こういう話がある程度広まるというのは、ほんと、噂とは妙なものですね。“.

번역문(Google Translate+일부 수정)

1. "평소 지브리 일지」(http://www.ghibli.jp/15diary/000102.html) 2002 년 12 월 10 일.

"자, 오늘은 한 소문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지브리 작품의 모델이 된 장소가 호주의 모처에 있다는 얘기가 일부에서 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특히 없지만,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고있는 사람도있을 것 같고, 아주 가끔 연락이 있기도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퍼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들은 이야기로 추측해보면, 발단은 '바람의 계곡'이었던 것입니다.

호주의 모처에는 정말 '바람의 골짜기 "라는 (물론 영어겠지요) 장소가 있는 것 같다. 에서 현지를 방문한 "나우시카"를 아는 사람이 "여기 혹시 나우시카에 나오는 바람 계곡의 모델일지도~"라는 이야기를 누군가 했더니 어느 새 '모델일지도"가" 모델 같다 " 결국 '모델이다"라는 식으로 변화했다. 그래서「나우시카」가 있다면, 다른 작품도 (모델이)있는 건 아닐까-라며, '모델'이 되는 장소가 계속해서 "추정"되고, "추정"이 "단정"화되어 간 것이라고.

지브리 작품에서도 작품에 따라 실제 장소를 모델로 하거나 참고하는 경우가 물론 있지만, 적어도 호주에는 그런 장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어느 정도 퍼졌다는 건 정말 소문이란 묘한 것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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