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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Apr 11. 2016

무제

2016년 3월 14일, 에쎈에서.

14.03.2016

어제부터 머물고 있는 방에는 커튼이 없지만 자연채광을 많이 좋아하는 나는 이틀 연속 이곳의 노을이 창문 맞은 편의 하얀 벽에 비치는 것이 마음에 든다. 갑자기 머리 속에는 이문세 씨의 '붉은 노을'이 무한 반복.
내일은 베를린에서부터 잡아 놓은 일 인터뷰가 있다. 기다린 시간이 길어진 만큼 서로 꽤나 느슨해진 상태라 좋은 예감은 다소 사라져 그 자리를 불안감이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든 붙겠지ㅡ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없진 않다.
지친 몸과 온 몸의 근육통으로 이틀 내내 나갈 생각도 안 들더니 하루 종일 사색만 즐기고 있다. 지난 날을 다시 되짚어보고 지금의 나를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뭐 그런 생각들. 지금은 다소 현재보다 과거에 묶여있는 건 아닌가ㅡ란 생각이 들더라. 나도 모르게 조금씩 뒤돌아 보던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고개가 뒤로 돌아가있는 느낌이다. 이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이 진한 노을을 보니 이를 안주 삼아 맥주나 한 잔 하고 싶다. 유학 시절 밤하늘을 보며 베란다에서 캔 음료를 마시며 타지 생활의 고달픔을 위로 받았던 20대의 낭만을ㅡ 이제는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의 나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지금은 내 왼팔 뼈에 박힌 12개의 볼트 중 2개가 알콜에 반응할 때가 있어 낭만 즐기기는 좀 더 나중에나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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