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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Apr 19. 2016

Berlin/Deutschland

2016년 2월 24일부터 3월 6일까지, 베를린에서 12일.

2016년 2월 20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동경으로 이동, 3박 4일 동안 동경에 머문 후 2월 23일 영국 런던을 거쳐 2월 24일 독일 베를린 테겔 공항으로 입국했다.

참으로 작은 공항에서의 입국 수속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돌아갈 때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겠다며 비행기를 편도만 끊었기 때문에 입국 심사가 다소 걱정이 되었다.

지인은 이 숙소 밖 풍경을 보고 '러시아'냐고 물었다

도착한 다음 날은 아침부터 눈보라와 맑은 날씨를 수 차례 번갈아가며 하늘은 변덕을 부렸다ㅈ. 베를린과 나는 이렇게 첫 만남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차피 베를린에서 살 거니까ㅡ라며 대충 둘러본 홀로코스트 기념 공원은 다시 가지 못했다.


홀로코스트 기념 공원에 간 날은 4일째 되던 날로, 대표적인 재독 한인 사이트인 '베를린ㄹㅍㅌ'사이트에서 본 구인 광고에 연락을 해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시내 안에 한 백화점에 입점한 스시바였는데, 면접 후 두 시간 정도 시범으로 일을 하고 다행히 합격하여 일을 하기로 했다. 온 지 4일만에 일을 구하다니. 역시 나라며, 해외 생활과 음식점 아르바이트의 짬밥(?)이 이런 때에 유용하구나-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비록 매니저라는 분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심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벌써 일을 구한 게 어디냐-며 순조로운 출발에 기분이 좋았다. 당시 머물고 있었던 숙소도 8박만 예약했기 때문에 머물 곳도 옮겨야했고, 때 마침 한국인 유학생의 한 달 간 비게 되는 방을 빌리게 되었다. 생각도 못했던 운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내 삶이 그럴 리가 없다. 갑자기 못 나오게 된 직원 대신에 급하게 다음 날 하루 종일 일하게 되었고, 아직 시차 적응도 여독이 풀리지 않아 몸의 한계를 느껴 하루 쉬겠다고 말한 것을(게다가 이것도 '혹시 출근 가능하면 출근해라'였다) 변덕스럽고 감정 기복이 심한 매니저는 제 맘대로 '그만 두겠다'로 오해해, 쉬는 날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해왔다. 일단 일자리를 잃은 것은 확실하다.(사람을 새로 구했다면서 얼마 후에 다시 구인 광고를 올리는 것을 보니 그 사람도 일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날 전화 통화와 그 다음 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면서 느낀 것은 전날 통화했을 때와 다음 날 얼굴 보고 이야기 했을 때의 이야기가 또 달라진 졌다는 것. 나는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심한 사람과 하루 종일 장시간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멘탈은 소중하니까.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나는 전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는데, 가게의 오너를 맡고 있던 독일인 남편이 계속 부인과 다시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유했고, 나의 짧은 영어로 '지금 바빠 보이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다시 이야기하기를 피했건만, 그가 굳이 나를 '곧 한가해 질 거다'라며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니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사람은 지금 사람을 뽑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았고, 이로써 이 매니저에 대한 신뢰도를 잃었고, 아침 근무는 힘들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다시 늘어놓으며(...) 나는 그곳을 나왔다.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바로 집을 빌리기로 했던 유학생에게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고 연락했다. 일을 어디서 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한 달이나 긴 시간을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잡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러나 저러나 당장 숙소를 옮겨야 하고, 이 가게에 뺏긴 며칠의 시간이 아까웠다.


처음에 8박 동안 머물렀던 호스텔. 구 동베를린 지역 다운 건물이었다.

독일 워홀은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2011년 여름, 4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워킹 홀리데이'가 생겼고, 독일에 가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생활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의 의지보다는 전문학교 졸업 후 취업은 실패했고, 나는 지쳐있었고, 비자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둔 대학교에 복학(재입학)하고 남은 2년을 다니고 졸업 후 독일로 가겠다던 나의 당초의 계획은, 졸업이 한 학기 미뤄지고, 중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도 끼어들면서 2년 후가 아닌 4년 반 후가 되었다.


그 준비 기간 동안 인터넷에서 본 글이 있었다. 독일은 언제 가느냐에 따라 첫인상이 결정되고 그것이 계속 간다고. 계절이 따뜻할 떄 가면 모두 좋은 기억을 갖게 되고, 추울 때 가면 안 좋은 기억만 갖게 된다고. 때문에 나의 독일 워홀은 늘 9월 혹은 4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정작 들어온 것은 아직 겨울이었던 2월 말. 그래서 그런걸까. 내게 독일은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차갑디 차가운 곳이다. 특히 베를린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가게의 점원도 길거리의 사람들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내게 일어난 일들로 나는 다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삭막한 건물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사람들조차도 웃지 않고 있으니, 이곳에 있으면 나도 같이 웃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역 이동을 하기로.


애초에 꿈꾸었던 정착지인 하이델베르크로 갈 것인가, 일본인이 많아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뒤셀도르프로 갈 것인가. 베를린의 한국 식당과 일본인이 운영하는 카페에도 이력서를 넣어보았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고, 일단 일본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뒤셀도르프에서 구인 광고를 올린 일본 식당들에 연락을 해보았고, 마침 연락이 온 곳이 있어 일단 뒤셀도르프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3월 6일 비 내리는 오전, 버스를 타고 베를린을 빠져나와 드레스덴으로 향했다.


내가 베를린을 떠난 것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숙소를 옮기는 날 들렀던 한국인 지인이 사는 동네(이곳은 내가 한 달 동안 빌렸던 유학생의 동네이기도 했다)는 내가 지난 열흘 동안 지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동네여서 베를린에도 이렇게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가 있었다니-라며 나도 처음부터 이런 곳에 있었다면 이런 결정까진 안 왔을텐데-라는 약간의 후회가 뒤늦게 찾아오고, 비록 떠나기로 결정하고 뒤셀도르프로 가는 도중엔 여행을 하겠다며 숙소를 모두 예약해놓은 상태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던 일본 카페에서 연락이 오고, 여행 첫날 한국 식당에서 연락이 왔지만 말이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하고 힙하다는 도시 베를린. 내가 느낀 베를린은 독특한 곳이었다. 동서로 나뉘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동쪽 동네와 서쪽 동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고(내가 처음에 머룰렀던 곳은 구 동베를린 지역이었다) 기존 이곳에 살던 사람들과 전 세계에서 유입되고 있는 젊은이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네마다 분위기가 각각 다르다.


나는 힙한 것 보다는 클래식한 것을 더 좋아하고, 젊은 예술가도 아니며, 클럽 음악과 클럽 문화를 즐기지도 않는다. 본인이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베를린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겠지만,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던 내게는 12일동안 지냈던 베를린이 나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의 토쿄, 호주의 멜버른 등 세계적으로 핫한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베를리너'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나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저 '베를리너'라는 타이틀을 원했던 것이 아니냐고.


에쎈에서 2주가 넘게 머물다 뒤셀도르프에 정착한 지 20일 정도 된 지금도 여전히 삐걱거리는 것을 보면, 딱히 베를린이 안 맞았던 건 아니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저 타이밍이 모두 운이 좋지 않았을 뿐. 베를린에서도 이곳 뒤셀도르프에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해외 생활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다. 만 5년을 넘겼고, 6년차이고, 심지어 모국을 제외한 3번째 나라다. 해외생활에 대한 환상도 기대도 없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리도 긴 시간 염원해왔던 나라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한 번만 더 삐걱거리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짐 싸서 다음 나라로 넘어가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들이 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내 스스로가 이곳을 즐기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되는 삐걱거림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일을 삐딱하게 보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사람 참 간사한 것이 그래도 다음에 만약 독일로 돌아와 예정되어있었던 유학을 하게 된다면- 어학연수는 베를린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더라. 싫다며 뛰쳐나왔지만 여전히 눈길이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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