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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May 08. 2016

Zons, Dormagen/NRW

2016년 5월 7일, 촌스에서.

07.05.2016, Zons


4월이 시작함과 동시에 나의 독일 워킹홀리데이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월 말에 에쎈의 임시 거처에서 뒤셀도르프로 옮겼고, 4월 1일부터 아르바이트 하게 된 가게로 출근했다. 여기가 일본인지 독일인지 알 수 없는 뒤셀도르프에서, 일본인들함께 살고 함께 일하며, 나는 적잖게 후회했다. 수 년 전, 일본 생활을 접을 때 수 많은 복잡한 감정이 나를 괴롭혔을 당시 그래도 결과적으로 일본을 나온 것은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호주 생활을 하며 일본인들에게 시달리(?)며 다시는 일본인들과 함께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내 코가 석자가 되니 이럴 때 또 비겁하게 일본어와 일본인들에게 기대는 걸 보고 이 자신의 간사함에 질렸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지만 적응이 될 때 즈음에는, 내 생활이 오직 일만 하고 휴일에는 밀린 장보기로 하루를 다 보내고 있어 당초의 목표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그저 '도대체 여기 왜 온 걸까'라는 워홀러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갖게 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워킹 홀리데이가 세 번째인 만큼, 그 고민으로부터 해결 방법을 찾기 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간단하다, 휴일을 늘려달라고 하자.


주말 휴일을 받게 되었고, 5월은 V2000이라는 주말에 인근 도시까지 추가 요금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정기권으로 구입했다. 오늘은 본에서 불꽃축제도 있어서 본을 갈까 하다가 불과 얼마 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추가 요금 없는 구간 내에서 다녀오기로 결정했고, 찾아가기로 한 곳은 촌스Zons라는 성벽 마을.


Dormagend역에서 1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버스가 있는데 괜히 걸었나-도 싶었지만,

가는 길에 우연히 유채꽃밭을 만났기 때문에 걷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5살 때부터 일본에 가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나의 가족들은 20년 이상 산 동네의 근처는 유채꽃이 예쁘게 피던 곳이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서도 유채꽃 밭이 예쁘다며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평생을 보고 살아서 그런지 어느 꽃보다도 유채꽃을 만나면 괜히 반가워진다.


촌스는 무척 작은 동네였다. 버스도 주말 오후에는 1시간에 한 대, 2시간에 한 대 꼴로 오기도 하고.


뒤셀도르프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물론 일이 중심이 되어버린 생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상과의 괴리'였다. 독일 생활은 10년도 더 넘은 나의 오래되어 색이 바랜 낡은 꿈이었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에서 햇볕을 받으며 콘크리트가 아닌 울퉁불퉁한 돌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고. 쉬는 날에는 강에 갔다가 근처의 성에 갔다가 그렇게 보내는 생활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희망해왔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배경은 늘 하이델베르크였다.

하지만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은 눈보라가 변덕스럽게 내려치고, 낭만은 개뿔 나 마저도 웃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삭막함, 옮긴 도시 역시 대도시. 나의 낭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역시 지금이라도 집이고 일이고 뭐고 다 던지고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게 정답인 걸까- 라고 4월 마지막 날까지 나는 고민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엔 6월까지만 뒤셀도르프에 있고 7월엔 방 빼서 하이델베르크로 가자!는 결심까지 해버렸다.


하지만 격정의 4월과는 다르게 5월은 꽤나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다. 일이 익숙해진 것도 있을 테고, 이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촌스의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 온 그런 배경의 동네에서 살려면 어지간히 구석의 시골이어야 가능하겠구나...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이 타협하는 순간이었다. 독일어라도 잘 해서 일을 구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면 나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독일어는 전혀 못 하는 상황. 일하는 곳도 일본 음식점이기 때문에 손님들도 '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독일어를 못한다'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어 오히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배려를 받고 있다.


그건 아시안 음식의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거지, 아시안 음식점은 찾아볼 수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만약에 독일어를 배우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고, 어학교를 다니며 공부중이라면 주변이 완전히 독일어인 환경이 낫겠지만, 나는 독일어에 대한 의지도 없고, 돈이나 벌어서 여행이나 다니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아시아로 돌아가 다음 워홀 국가로 무사히 이동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목표의 전부다.


다른 이야기지만,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음 주에 휴일을 많이 받아서 국경을 넘는 여행 계획이 있어서 그런지, 역시 유학이 다시 고민되기 시작한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어학을 준비하고, 다시 학부생이 되어 졸업을 하면 40세 전후가 되겠지만 어차피 나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니. 다만 30세가 넘어가면 뭔가 정착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과거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는 (직업적으로)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10대에 했던 고민을 20대 내내 하더니 30대에도 하고 있다. 어이구, 징그럽다 징그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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