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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May 27. 2016

뒤셀도르프 기록

2016년 5월 26일, 휴일.

독일에 온 지 만 3개월을 채웠다. 꾸역 꾸역 채웠다는 느낌 뿐이다.


최근엔 뒤셀도르프 행사로 일하는 가게의 임시휴업과 더불어 휴일을 좀 받아 쉬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공휴일이고 날씨도 좋아 어디든 갈 수 있는 날이었지만, 다가오는 5일 연속 근무와 5일 후의 휴일도 휴일이 아니고, 앞으로 열흘 동안은 쉬지 못한다는 압박이 하루 종일 나를 방 안에 붙들어 놓는다. 이젠 호주에서 살 때의 외식 버릇도 주머니 사정의 압박으로 줄어들고 있고, '나가면 돈'이라는 마인드가 생겨버렸다. 돈은 쓰자고, 쓰기 위해 버는 거고, 저축으로 즐기지 못하느니 한 끼라도 맛있는 걸 먹는 데에 돈을 쓰겠다던 나는 평생 안 하던 절약을 하고 있다. 대단하다 독일.


점점 안티 독일이 되어가는 것 같아 나를 응원해주던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지냈다면 어땠을까-도 싶지만, 이미 일본인들 사회에 안착해버려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독일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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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직전의 호주 생활과 많은 것들을, 아니 모든 면에서 비교하게 되고 동시에 거의 모든 면에서 불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불편함과 불만들은 어디서 살든 본인이 평생 살던 곳이 아닌 곳이라면 발생하는 것이지만,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의 부재인 것 같다. 3개월 동안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 말 상대도 없고 심지어 쉬는 날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 사람도 없다. 해외 생활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첫 해외 생활도 아니고 3개국 째이니 외로움은 이미 나의 소울메이트와 같은 것이라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는 않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내게 주는 것은 외로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크다. 일본에서도 호주에서도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일본, 호주에서처럼 일하는 곳에서 친구가 생긴다면 좋으련만, 지난 두 달 동안의 나의 온갖 피부질환을 일으키고 있는 과도한 스트레스의 원인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한 것이니, 친구는 무슨, 가끔 쉬는 날이 겹칠 때마다 뭐 하냐며 같이 어디 가자 할 때마다 피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왜 내 소중한 휴일을 이 사람과 함께 보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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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선을 긋고 시작하는 사람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다. 그래서인지 차갑고 정 없기로 알려진 일본 동경 생활이 어찌나 잘 맞던지. 동시에 오사카 등의 관서 출신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사람이 제일 잘 맞는다. 애초부터 거리가 있고 선을 침범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를 좁혀가고 선에 문을 그려 열어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사람 사귐이다. 나는 사람 사귀는 것에 시간이 걸리며, 느닷없이 나의 선을 넘어 오는 사람을 경계한다. 사람은 각자 성향도 성격도 다르니 내가 '잘못된'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선도 거리도 지켜줬으면 좋겠다. 과도한 친근감은 내겐 역효과를 일으켜 거리감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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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달 동안,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독일에서 꺼지라고 밀어내는 기분이 내내 들었다. 베를린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빗겨 가는 타이밍들, 나를 엿먹이는 사람들, 각종 피부 질환, 급기야 전철과 승강장 사이에 다리 한 쪽이 완전히 빠져버리는 사고까지 발생. 즐거움을, 독일을 느끼기는 커녕 매주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6월에 귀국할까, 7월에 여동생이 이탈리아로 출장 오니 그때 같이 귀국할까 등등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그럼에도 결국 이곳을 예정보다 빨리 떠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음 워킹홀리데이 목적지인 대만의 초기 정착금 조차도 없는 상태라 돈은 모아야 하고, 한국으로 일찍 돌아간다 한들 '서른 둘의 취업 경험 없는 완전 무경력의 미혼 여자'를 누가 아르바이트로라도 고용하려고 하는가. 좀 더 어렸을 때, 20대 후반이었을 때에도 교육하는 사람이 나이가 더 어려 불편해 한다며 까이기 일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수직 사회에 반감이 있다며 본인들은 수평 사회를 꿈꾼다고 말로만 참 잘 말하지만, 사실 누구도 수평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수평이 되어도 한국에선 '나이'만큼은 수평이 될 수 없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네버. 한국은 내게 돌아가기 싫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비자 받아놓은 거 아깝지 않게 최대한 기간을 채우는 게 내겐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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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워킹 홀리데이를... 오래 준비했다. 오래 준비했다는 것 치고 어학은 준비를 안 하고 그냥 가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가야지~하는 마음을 담아둔 것을 준비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오래 준비했는데- 그 사이에 수도 없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이 있었다. "독일은 절대 워킹홀리데이로 오면 안 되는 나라"라는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사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말에 상당한 반감이 있었는데, 와서 꼴랑 3개월 지내보니 그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독일 유학을 생각한 건 대학교 2학년 때이니 이미 12년 전. 12년 동안이나 독일에 꿈(중간에 일본 체류 4년은 제외)을 품고 있었던 나 조차도 이렇게 냉소적으로 변하다니. 정말 대단한 나라다 독일. 왜 독일을 워킹홀리데이로 가면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지 언젠가는 이야기 하겠지만, 어지간해서는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 축구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독일에서 즐거운 생활을 보낼 수도 있다. 워킹 홀리데이는 추천하지 않지만 유학은 적극 추천한다. 이곳은 학생 천국이다. '학생' 천국. "학생" 천국. 독일을 거점으로 유럽 여행? 하하, 한국에서 가져오는 정착금이 1000만원 쯤 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의 오랜 꿈이자, 독일에 온 가장 큰 목표이자 목적은 '고성 투어'와 독일을 거점으로 한 유럽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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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을 하면서.. 노예가 어떻게 노예가 되어가는 지 알 것만 같다. 반항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 할 때마다 밟아버리고 상처주고, 명령, 지시하는 것에만 따르게 강압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노예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법도 잊게 되고 마음은 불만이 쌓여도 지시에 네!라고 대답하게 된다. 아 이런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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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종종 유럽에 유색인종 난민이 많아졌다며 불평하는 아시아인(이어봤자 한국인 일본인이지만)들이 보이는데 이해할 수 없다. 백인이 아닌 건 마찬가지고 그들 눈에 포착되는 유색인종이 난민인지 선조가 이곳으로 넘어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인지, 유학생인지 워홀러인지 알 수 없음에도 난민들이 늘어나 치안이 위험하다느니.. 이야기를 한다. 얼굴에 난민이라고 써붙인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난민이 늘어났다고 실제로 치안이 크게 위험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본인 마음 안에 존재하는 유색인종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적대감이 피부 색이 짙은 사람들에게 모두 위험한 존재라고 지 맘대로 낙인을 찍는 것 아닌가. 그런 말 하는 거 보면 좀 웃긴다. 한국에서 동남아 사람들 무시하고 흑인들은 무섭다며 피하던 버릇을 여기서도 시전 중인 건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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