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프랑스 아를에서.
01.07.2016 Arles, France
'취향저격'이라는 유행어는 바로 내게 아를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아를을 걷는 내내 생각했다. 서양 고대사, 중세사, 르네상스 시대를 좋아하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역사 전공자인 나, 그림 그리는 것도 고흐도 좋아하는 나, 꽃을 좋아하는 나, 오래된 건물과 낡은 동네를 좋아하는 나. 이런 나를 위한 곳, 아를이었다.
오랑쥬에서의 괜한 불쾌함과 중간에 나의 착각으로 엉뚱한 동네에 도착하긴 해서 '삽질'을 하긴 했지만 아를은 반나절의 기억을 모두 날려줄 정도로 평화롭고 영혼이 충만해지는 곳이었다.
끊임없이 걸으며 방전된 나의 영혼은 '충전'되었다. 지난 4개월 동안의 독일 생활, 뒤셀도르프에 정착하여 보낸 3개월. 불만족과 무의미로 나의 시간들이 가득 차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고, 그 시간 동안 나의 정신력과 마음은 방전되었다.
무얼 위해 독일에 왔는가ㅡ 수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고 내 자신이 점점 내면적으로 부패해가는 걸 감지했다.
그저 다 싫어서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여유가 넘치고 삶의 질이 높지만 번잡한 세상에서 조금 동떨어저 외로움마저 느끼는 지루한 호주로 돌아갈 것인가,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 여러 나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여유가 없고 삶의 질이 호주에 비해 많이 낮은 독일로 돌아올 것인가. 이번 1년 동안 내게 내려진 나의 숙제였고, 지난 4개월 내내 나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운 고민 거리였다. 40대까지는 유럽에서 보내고 50대부터는 호주에서 보내는 그런 인생은 보낼 수 없는 걸까.
아를의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마 나는 유럽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하리라. 호주에 가게 된다면 영주권을 위한 공부와 생활을 하게 될 테고 유럽으로 오면 내가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다. 이렇게 가끔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삶의 질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삭막한 공기와 뻑뻑한 물이 있는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를에서의 시간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곳에 숙박을 잡을 걸ㅡ이라 생각했고 다음에 꼭 장기로 일정를 잡고 다시 방문해야지ㅡ라며 머리 속으로는 이미 재방문 일정이 그려지고 있었다.
밤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도착한 아를 역. 다음 열차는 9시 40분 쯤에 있다. 하지만 15분 지연되고 있다던 알림은 20분으로 늘고 40분으로 늘더니 결국 알 수 없는 단어가 뜨고 역무원 아저씨는 아를로 향하던 기차가 사고가 생겨 수습하는 데에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리는 말을 한다. 누가 선로를 지나가던 중 자동차가 멈췄나보다. 기다리는 사람은 나, 중국인(아마 홍콩 출신들) 여자 11명, 유럽인 남자 1명, 프랑스어권 여자 1명.
밤 10시 반이 넘어가며 각자 어떻게 아비뇽으로 돌아갈 것인지 궁리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돈이 얼마나 들든 택시를 타고 가겠다며 역무원에게 택시를 부탁했고, 유럽인 남자는 친구의 친구가 이 근처 산다며 픽업을 요청했다. 프랑스어권의 여자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11시가 넘어 유럽인 남자는 친구의 친구의 차를 타고 떠났고 얼마 후에 돈은 상관 없다는 중국인들의 택시가 도착했다. 그들이 떠나자 역무원 아저씨가 돈이 부담 되어 이도 저도 못하는 나머지들에게 소근 소근 말한다. '이따가 너희들(나+중국인 5명) 택시가 올 거야. 비용은 회사(프랑스 철도 회사)에서 부담할 거니까 타고 돌아가. 저 사람들은 본인들이 내겠다고 한 거니까.'
약 40분 동안 중형 택시를 타고 아비뇽에 도착한 시각은 날짜가 바뀌어 0시 30분이었다.
비록 돌아오는 길이 험난하긴 했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곳을 아를로 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를은 혼탁한 머리 속이 정화시켜주었고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던 내 마음 속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행이 모두 끝난 후 내가 마음 속에서 으뜸으로 꼽은 곳은 아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