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일, 아비뇽에서.
02.07.2016 Avignon, France
아비뇽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었고, 그리 시간을 들여 돌아다녀 볼만한 곳도 아닌 것 같아, 이번 여행에서는 그저 숙소가 있는 거점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높은 성벽에 둘러 쌓인 거대하고 오래된 도시는 반나절은 커녕 며칠을 두고 천천히 향을 느껴야 하는 곳이었다.
'아비뇽'이라 하면 기억 나는 것은 중학교 시절 역사 수업에서 들었던 교황이 어쩌구 저쩌구의 '아비뇽 유수'정도 뿐.(역사 전공자라 하기 부끄럽다)
약 70년 동안 교황이 머물렀던 곳이지만, 고작 70년 밖에 안 있었는데 이렇게 큰 교황청을 만들었단 말이야? 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하긴 그 시대의 교황은 기독교가 퍼져있는 모든 지역의 최고 수장 아닌가.
아비뇽의 다리와 교황청이 묶여서 할인된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나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둘 다 들어가지는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지역은 후에 다시 찾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아쉬움을 남겨두는 편이 다시 이곳에 오기 수월할 것이다.
우리 집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5명 식구가 모두 무교였으나, 몇 해 전 엄마가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세례도 받았다. 무엇이 엄마가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만든 것인지 엄마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어하는 엄마의 쉽지 않은 결정을 응원하고 있다.
엄마가 아비뇽의 교황청에도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프랑스 남부를 돌면서 여러 모로 엄마가 꼭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해서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세계의 여기 저기로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은 게 딸의 마음이지만, 내 상황이 이모양이다보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엄마는 내가 엄마 대신 많은 곳들을 다니고 많이 보고 경험했으면 한다고 하지만, 이건 노래 가사의 '짜장면은 싫다고 하는 엄마'아닌가.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얼마 전에 부모님에게 유럽으로 효도 관광을 시켜드렸다. 오래 전에 여행했을 때 부모님께도 그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꽤 오랜 시간 돈을 모아 준비한 여행이란다. 나도 엄마에게 남프랑스를 보여주고 싶다. 해외 사는 딸과 항공사 다니는 아들을 두었으니, 많이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비뇽의 교황청 앞에는 꽤 넓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즉흥 연주를 하기도 하고, 어딘가의 나라의 도인이 기예를 보여주기도 했다.
언틋 보기에 수 백 년 전의 교황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아비뇽은 그저 그렇게 넘겨버리기에는 아쉬운 '남다른' 긴 역사와 이곳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엄마와 함께 와서 교황청도 가고, 이 도시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녀야지. 많이 공부 해서 엄마에게 전문 가이드 못지 않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
오전에 참가했던 라벤더 투어의 가이드가 추천해 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라벤더와 레몬, 그리고 4가지 과일 맛. 레몬도 4가지 과일도 내 입맛에 꼭 맞았지만 라벤더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이가 시린(...) 나도 이 시림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