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일, 프랑스 앙티브에서.
03.07.2016 Antibes, France
'앙티브에 다녀왔다'는 말에 나의 대학 시절 교양 과목 선생님은 "피카소!"라고 외쳤다. 앙티브를 사랑한 화가가 어디 피카소뿐이겠는가.
아를에 갔을 때엔 이번 여행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도시는 고흐가 사랑한 아를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앙티브에 갔을 때에도, 그리고 여행이 끝난 지금도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곳을 '앙티브'라고 답한다.
오전 일찍 나섰음에도 하루 종일 꼬이고 꼬인 일정, 오후 4시라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시작한 이 날의 여행. 생폴 드 방스에 가려다가 에즈-모나코에 가려다가 온갖 장애를 만나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향한 앙티브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림과 사진으로 봤던 곳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게다가 30도가 넘는 너무나도 더운 날씨는 반바지는 입을 일이 별로 없는 20도를 웃도는 정도의 기온만 유지하는 독일에서 온, 긴 바지밖에 없던 내겐 가혹한 날씨였다.
앙티브는 번화가를 성벽이 두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엔 동네는 보이지도 않고 성벽만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인가 하며 툴툴 거리며 더위와 함께 불쾌지수가 최고로 올랐을 때, 우연히 들어간 성벽의 문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는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마법인가? 라며 놀랐다.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해변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아아!! 어찌나 신이 나던지.
물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바다를 참 좋아하는 엄마와 바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EJ언니. 성벽 아래에서 오리발을 끼고 잠수를 하는 아저씨를 보고 이건 언니에게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꼭 남프랑스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마 앙티브의 바다를 보고 나서였을 것이다. 아비뇽은 엄마가 여기 와봤으면 좋겠다~ 정도였지만, 이런 바다를 나 혼자 보는 것은, 이건 불효다.
이 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성벽을 걸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걸어보기로 했다. 그림으로 본 곳들을 보고 싶었다.
사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본 것들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은 많은 화가들이 그곳에서 영감을 느꼈던 것처럼 나도 뭔가 먼지만큼이라도 자극이나 영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부분이 모르는 이야기지만, 이 독일에서의 1년을 위해 나는 의외로 많은 것들을 어설프게 준비해 왔다. 일본에서의 취업 실패로 눈 앞이 막막했을 때 한 줄기의 빛처럼 눈 앞에 나타난 것이 독일에서의 워홀이었고, 독일에서의 워홀을 목표로, 어쩌면 핑계로 4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해 13학기, 6년 반 만에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슨 깡과 똘기인지, 이것도 하겠어 저것도 하겠어! 라며 온갖 이유와 구실을 붙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독일 생활을 그림과 사진, 그리고 내가 쓴 글로 책을 내고 싶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일을 계획했고, 한국에서 지낸 2년 동안 매주 수묵화를 배우러 화실에 다녔고, 학교에서 2학기 동안 사진 수업을 듣고 이후에도 꾸준히 사진을 찍고 있다. 마지막 학기엔 다른 학우들에겐 필수인, 그러나 최고의 화석인 나는 전혀 듣지 않아도 상관없는 글쓰기 수업도 수강했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독일에서의 생활의 연습이라고 생각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그리지 못했지만 사진만큼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찍었다. 한쪽 팔을 두 동강을 내면서까지 돌아다녔을 정도.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마음을 두었던 독일 생활은 생각만큼 흘러가 주지 않았다. 차가움과 건조함. 이것들은 내 목을 조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림은커녕 사진조차도 찍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풀타임으로 시작한 일에 치어 개인 시간이 부족해지고, 여러 번 가게에 상담했지만 매번 '네가 풀타임으로 일하겠다고 해서 채용한 건데 시간을 줄이겠다고 하면 곤란하다'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작은 쉼표 조차도 주지 않았던 생활과 높디높았던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스트레스. 이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사무실의 담당자분께 회사 내의 다른 가게로 옮기든 뭐든 일단 이 가게를 그만둬야겠다는 상담 메일을 던져놓고 될 대로 되라지!! 라며 버스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 여행이 끝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풍우 같은 시간들이겠지- 등등, 온갖 잡생각으로 마음이 혼잡한 상태로 성벽을 한참을 걸었다.
많은 화가들이 앙티브를 그린 이 곳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붓과 연필을 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여행 중임에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붓을 들고 싶어 졌다. 짐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림 도구를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취미로 일 년에 한 번 연필을 잡을까 말까 한 나조차도 이곳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해 왔던 사람들은 얼마나 그 마음이 끓어오를까.
누군가가 내 심장을 깃털로 간지럼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갑고 건조한 독일 생활로 얼어있던 내 마음은 앙티브에서 조금씩 녹아 물렁해지고 있었다.
이런 앙티브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돌아오는 길은 내심 아쉬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오면 이곳에서 꼭 1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결혼식 등의 비용을 아예 없애고 이쪽으로 양가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 가족 여행 오는 건 어떨까 등등 행복한 상상을 하며 니스의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이곳에서 잠시 느낀 감정,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림은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마음이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다시 건조한 생활에 심장이 딱딱해지면 마음의 서랍에서 앙티브라는 깃털을 꺼내 살살 흔들어야지.
사실 내가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과 그리고 나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시작만 하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쓰는 다른 이들처럼 명문대를 나오거나 대기업을 다닌 것도 아니다.
애매한 학벌, 인문학 전공자, 그마저도 대학 졸업하는 데에 11년이 걸렸고, 한국 나이로 서른두 살이나 먹었음에도 제대로 취업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 같이 뭣도 없는 사람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타인에게 영향받아 내가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즐기고, 타인이 나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엔 매우 기쁘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각자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세상은 조금씩 건강하게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비효과를 믿어 왔고, 여전히 믿고 있다. 나의 작은 날갯짓으로 미래의 세상은 좀 더 모두가 즐거운 매일을 보내는 세상이 될 거라고.
근데 그러기엔 최근 2년 동안 인풋이 너무 없어서 아웃풋 역시 전혀 없는 상태다. 글도 엉망진창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되었고,아머리를 써서 고민을 해서 쓰는 글이 아닌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타이핑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내용의 깊이도 사라졌다.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책을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다. 역시 무겁더라도 한 권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