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번째 좌표는 무용인을 만나보았습니다. 예술인이면서 교육자이자 치료사 또한 글을 통해 무용을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예술인이라는 직업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을 쌓다가 예술경영이나 예술행정 분야로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예술을 통해 교육이나 사회복지 영역으로 지평을 확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가지만, 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잃지 않고 삶의 여정을 다채롭게 가고 있는 분입니다. 그가 서 있는 좌표에서 바라보는 무용 혹은 예술의 지평은 어떤 모습일까요?
'춤을 추고, 춤을 쓰고, 춤을 나누는
다양한 춤의 그릇이 되는 무용인'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김미영입니다. 어떤 연차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졸업 후 춤을 춘 것으로부터 계산한다면 20년도 훌쩍 넘었네요.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춤을 추고, 춤을 쓰고, 춤을 나누는 일을 합니다. 춤을 매체로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 부분을 소개해드리면 좋을까 고민했는데요. 각각 다른 일 같지만 저에게는 다 춤에 대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금은 무대에 서는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저는 늘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것이 저를 표현하는 방법이고 숨쉬는 방법입니다. 말 보다는 움직임에 더 예민한 것은 제가 춤추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움직임은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이것이 제가 춤을 추는 이유입니다. 무용기자로 무용평론가로 춤을 쓰는 일도 저의 일입니다. 재작년까지 무용월간지 몸에서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다양한 무용가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제가 춤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인데요. 진실성이 담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또 안무가 스스로도 놓친 그들 작품에 담긴 의미들을 풀어낼 때 보람을 느낍니다. 때때로 글을 쓰는 일들이 확장될 때도 있는데요. 기획서나 제안서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무용월간지 '몸' 바로가기) 그리고 무용치료사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춤을 나누는 일도 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인데요. 특별히 사람을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신과 병동, 장애인, 가출청소년, 소년원 등 특수집단부터 일반 직장인, 초중고대학생, 학교폭력 가피해자, 다문화, 장애인 형제자매 등 정말 다양한 대상들을 만나왔습니다. 이들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은 정말 춤을 나누는 작업이에요. 마음을 다해 춤을 나눌 때 깜깜했던 그들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았던 빛이 스며나오는 경험을 합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춤을 추게 된 계기는 영화(라붐) 속 주인공(소피 마르소)의 춤추는 모습(바로가기)이 그저 아름다워서였는데요. 그 모습에 반해서 춘 춤이 이후 무용치료사가 되고 나서야 저에게 진정한 춤의 의미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저에게 춤은 늘 사람과 진실하게 만나도록 하는 매개체인데요. 춤을 추던, 쓰던, 나누던 저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아기가 생기고 내 아기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생각하면서 너무나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에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어요. 이로 인해 춤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춤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생각에서 춤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춤을 나누는 방법으로 글과 치료를 택하면서 조금씩 필요한 요소들을 채워나가게 되었습니다.
4. 최근 3년 동안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보람있었거나 의미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은 대구시립무용단의 40주년 기념포럼의 객원연출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저의 경계를 더 확장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한 단체의 40년을 되짚어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체험하는 중인데 이렇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제가 느끼는 보람입니다. MBC뽀뽀뽀에서 무용자문을 맡아 유투브로 자문영상이 나가고 있는데요. 영상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아이들과 활용할 수 있는 춤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에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춤에 대한 정보인데요. 제가 가진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리고 최근 제가 관심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파킨슨 환자들, 치매 환자들, 장애인들과의 무용이에요. 특히 파킨슨 환자들과 춤을 추면서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때 너무 짜릿하죠. 파킨슨 환자들의 주요특징 중 하나가 얼굴근육이 경직되어 표정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이들이 웃어줄 때 세상 어떤 미소보다 아름답고 보람됩니다. 무용평론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요. 부족하나마 저의 글을 통해 무용가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고 또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서인데요. 최근에도 한 분이 작품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제 글로 힘을 얻어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거나 작품 속에 숨어있는 장치들을 찾아가다 보면 안무가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흥분되요. 박사과정을 마친 것도 개인적으로 뿌듯한 일입니다. 치유적 기능을 하는 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작업을 했는데 훌륭한 논문이 나와서라기 보다는 해내었다는 안도감이 있었죠.
5. 당신은 다른 부족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현재 많은 사람들이 힐링 문화에 대한 요구가 많다보니 저의 무용치료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특히 노인분야에 대한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확실히 시대가 변하고 있구나를 실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이런 변화는 눈에 띄는데 처우개선은 아직도 미미합니다. 아직까지 많은 부분 재능기부형태로 요구되는 것은 정말 슬픈일이죠.
6.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7. (서로 다른 부족의 '일의 방법'과 '생각의 관점'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기-승-전-결'은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부족민들과 달리 저는 먼저 대상자(혹은 대상)을 염두하고 작업이 시작되죠. 치료작업이라면 대상자이겠고 글을 쓴다면 무용가 혹은 무용작품이라는 과제가 저에게 주어지는 거죠. 이후 분석을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되어보는 거죠.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왜, 어떻게 등의 현재 결과(왜 그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혹은 왜 그런 증상이 생겨났는지)가 생겨나게 된 경위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저의 창의적인 생각을 곁들여 작업의 과정(무용치료라면 치료과정, 평론이라면 글쓰기)을 거쳐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일의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생각의 관점이라면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됩니다. 대상자에 대한 호기심이 저의 시동을 걸게 되죠. 그 호기심이 확장되면서 저의 열심과 만나면 어느순간 결말을 맺게 됩니다. 호기심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상자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면 좋은 결말을 가져오는데 치료작업에서는 대체로 거의 모든 대상자들을 좋아하게 되는데(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다보니)반해 작품은 꼭 그렇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급격하게 열정이 사그라들면 때때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는 거죠.
7-1)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을 너무나 좋아해요. 우리의 몸에 담긴 마음의 소리가 움직임을 통해 표출되죠. 춤을 출 때도. 나눌 때도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진실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춤은 너무 싫어요. 진실한 춤은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춤의 가치입니다.
8.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가요?
저에게는 더 큰 그림을 그려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숲을 보는 역할이 저에게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정책이라던지, 행정이라던지 이런 말들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실 일이 진행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죠. 알면서도 안되는 것은 질문처럼 저에게 부족한 부분인 것 같아요. 함께 협력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겠죠.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음... 밝고 명랑함. 긍정적이고 친화적인 성격이라고 누군가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잘 잊어버리는 것이 저 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제가 가진 내적인 힘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 정신없는 일과 속에서 오늘, 지금에 집중하다보니 지나간 일은 금새 잊거든요. 그러니 누구를 오래 미워하기도, 어떤 일에 오래 분노하기도 어려워요. 이런 게 오히려 저를 강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같아요.
10.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있(싶)나요?
무용치료적 비평가, 무용치료사, 심리치료를 가능케 하는 무용치료예술가를 하고 싶어요. ㅎㅎㅎ 어떤 사람들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입니다. 심리학적 접근으로 무용비평을 하고 심리학적 접근으로 무용작품도 하고 무용치료사로도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구체화해서 한 그릇에 담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11. 다른 부족에 속해있는 다른 역할을 하는 행정人기획人예술人 중 어떤 좌표에 있는 사람들과 당신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으신가요? (세대, 역할, 조직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늘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떤 부족이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정말 무용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