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좌표는 성북문화재단 도서관기획팀으로 가보았습니다. 2020년 기준 전국 시군구 지자체에서 설립한 공공도서관은 서울 116개를 비롯해 전국 529개나 됩니다. 최근 지역 공공도서관들이 경영적으로 지역문화재단에 속속 편입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직군이 섞여 있는 문화재단 조직에서 갈등의 양상도 보입니다. 성북문화재단의 경우 2022년 기준 15개 도서관이 있고, 전체 214명 중에 도서관 인력이 105명이며 이 중에서 사서 직군이 71명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들이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이서 본 사서 직군은 한가하게(?) 책을 보는 것이 아닌, 종합병원의 간호사 직군만큼 고객과 가깝고, 일손이 부족할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장은 고객이 티켓을 끊고 특정 시간에 방문하지만, 도서관은 목적성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항시 개방된 곳입니다. 고객의 욕구와 폭도 무척 다양합니다. 직업적으로 연구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작년에 만났던 수많은 인터뷰이 중에서도 무척 인상적인 분이셨습니다.
사람과 정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을 잇는
성북도서관팀의 리더 김주영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주영이라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사회 활동을 시작한 지는 벌써 27년이나 되었네요.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북구립도서관 : 일상의 공론장>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약 6개월간 번역일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전공(문헌정보학)을 살려 도서관 운영, (도서관 관련) 정책 수립 및 주요 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한 13년 동안은 교수와 학생을 만나기보다는 교수 활동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즉 정보와 사람을 ‘잇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로 근무했던 것 같습니다.그리고 공공도서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요구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 즉 사람과 정보, 더 나아가 지역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단체, 사람과 지역을 적극적으로 ‘잇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일들을 반추해 보면 저의 직업 정체성은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잇는’것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도서관에 발을 디디게 된 시작은 대학 진학을 고민할 때 고3 담임선생님께서 우리가 영화 장면으로 익숙한 그 장면처럼 대학 정보지 위에 ‘긴 자’를 대시고 “이 ‘자’의 아래에 있는 대학들에서 전공을 골라와라”라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대학 합격과 장학금이 절실했고 그 기준으로 ‘문헌정보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늘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까지는 내가 지원하지만, 대학에 입학해서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대학 진학 이후에도 경제적 독립에 대한 절실함이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절실함이 결국 제가 도서관 현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졸업할 당시에는 교수 추천이 취업 시 매우 큰 영향을 끼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절실함은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으로 외부의 인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제가 대학도서관 취업 시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교수 추천서를 작성해주셔서 그 당시 저희 전공에서는 성공적 취업이라 인정받는 ‘대학도서관’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도서관종(*)은 바뀌었지만 도서관 현장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종 : 도서관법에서는 국립도서관, 지역 대표도서관,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전문도서관으로 구분)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절실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뭔가 공허함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대학원에 진학해‘도서관 서비스 품질’을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고, 뭔가 그 당시에는 정체되어 있던 대학도서관보다는 공공도서관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2008년 기회가 닿아 공공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다양한 측면에서 주민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는데, 그 시간들을 통해 제가 주민들의 삶 아니 이웃의 삶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얼마나 몰랐는지 확인하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독서회, 도서관 기반 네트워크 등에 참여한 구성원들도 ‘나로부터 타인 그리고 우리로 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 그리고 이 성찰의 순간들이 도서관 현장에 저를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은 일상의 공간인 도서관의 힘이기도 하고요.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도서관 이용자들은 책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리고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하고 계십니다. 이용하시는 분들은 나이, 인종, 성, 종교, 국적, 언어 너무나 다양하고요. 최근에는 취향까지 너무나 다양합니다.
□ IFLA/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1994(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문)
“The services of the public library are provided on the basis of equality of access for all, regardless of age, race, sex, religion, nationality, language or social status.” (공공 도서관의 서비스는 나이, 인종, 성, 종교, 국적, 언어, 신분 등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평등하게 제공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문’을 기억하며 ‘누구나’ 이용 가능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만들고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변화를 잘 읽어내야 하기도 하고,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균형 잡힌 관점에서 정확한 정보를 이용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례로 작년 성북구립도서관은 ‘아동 성추행’ 한예찬 책에 대한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주민들은 도서관은 믿을 수 있는 정보기관 그리고 사회적 약자까지도 포함하여 생각한다는 인식들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도서관에게 사서들에게 바란다는 말씀도 하셨었고요.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내 손으로 뽑는 <한 책 운영위>
일을 진행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起) 현황 분석을 하고, 그 내용들은 (承) 전문가와 관련자들과 함께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 논의 테이블을 통해 일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가 더욱 선명해지고 또 놓친 부분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轉) 내용들을 모두 모아 직원들과 구체화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結) 직원 내부평가와 외부평가 그리고 함께 논의했던 분들과의 평가를 통해 다음 단계를 모색합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있는 이 현장에서 “왜 일을 추진하는가”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을 늘 가지고 일을 추진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자주 묻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이라는 질문에 대한 일의 서사가 있을 때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덧붙여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은 계획서들이 모호하고, 계획서의 추진 방향과는 다른 실행들이 이루지는 현장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7.(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 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성과평가가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할 수 있으나, 공공기관들 특히 출연기관(재단)들은 일하기도 너무나 바쁜 와중에 늘 자기 증명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요구가 있어 자기 증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일을 하고, 어떤 성과들을 이루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서 2020년부터 성과평가 체계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진행함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도서관 현장의 각기 다른 요구사항들을 담아 풀어내는 일이었고,이러한 내용들을 자체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풀기 위해서 조직(상급자)에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은 어떤 효과를 얻는지를 구체화하고 브리핑해드리면서 힘을 받았고, 추진 내용들이 외부에서 인정되고 회자되자 내부 장벽들이 허물어졌던 것 같습니다.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2019 '우리 함께' 감사 콘서트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은 성북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함께 했던 분(단체)들과 단절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했던 주민들과 단체들 이분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2021년 가을에 ‘우리, 함께’라는 주제로 이분들을 모시고 감사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간 함께했던 순간들을 콘서트에서 함께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1시간 30분의 콘서트는 환호와 울음바다였습니다. 콘서트가 끝난 후 많은 분이 눈물을 흘리시며 그리웠다는 이야기. 이제 우리는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도서관이 이렇게 다시 연결해 줘서 감사하다는 이야기 등을 로비에서 나누시는 순간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포용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체로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있습니다). 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자라나고,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 데, 어떻게 내 관점으로만 보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치유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치유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해외도서관 탐방>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중정
영향을 주었던 책, 음악, 영화, 공연 등은 너무나 많아 바로 떠오르지가 않네요. 읽고 보고 듣는 것을 통해 매 순간 영향받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작가분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는 신경림 시인, 김사인 시인, 돌아가신 황현산 문학평론가입니다. 신경림 시인과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문인사 기획전’이라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인터뷰하고 기록하고 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이 삶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고, 김사인 시인과는 선생님과 행사 진행과 관련하면서 사소한 것들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해외도서관 탐방>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곳은 해외도서관 탐방을 하면서 관련자분들 인터뷰할 때였던 것 같아요.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나요?
공공도서관 현장은 주민들과 밀접하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공도서관이 사용하는 도서관리프로그램(LAS)과 UI는 요즘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도서관 현장의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불필요하거나 과한 행정업무로 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공도서관이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LAS와 UI와 관련하여 프로그래머와 관련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눌 예정이며, 이와 더불어 도서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업무와 처리절차를 분석하고 기술적으로 업무 간소화 방안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최근에 이와 관련 도서관 업무와 업무절차를 분석하고 있으며, 이 의제를 함께 논의할 그룹을 구성하였고 논의의 확장을 위해 함께 이야기 나눠주실 프로그래머와 전문가를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