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같은 문제들을 망치 놓고 기다린다

세월이 주는 여유

by 류지

지난 일 년 동안 집을 세놓았다가 돌아오니 생각지 못한 이런저런 문제를 매일 발견한다. 담배 알러지가 있는데 세입자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알러지 반응이 있어서 집에 있으면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고 앞 뜰의 나무들도 관리가 안돼 다 야생상태로 회귀하고 있으며 마룻바닥을 계속 물청소 했는지 곳곳에 틈이 뜨거나 벌어진 곳이 생겼다. 세탁실에 물이 새고 문틀 밑은 부서져 떨어져 나가 있고 방충망은 찢어져 있다. 1930년에 지어진 집이라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세입자에게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오랜 기간 세 들어 살았어서 이해는 하지만 힘들게 장만한 집이 망가진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일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면 부담감이 크다. 혈혈단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감당해야 해서 남들에겐 작은 일이 내겐 감당하기 힘든 큰 일로 다가온다. 앞뜰에 줄곧 나타나는 두더지처럼 머리가 나오자마자 때려잡아야 하는데 늘 장기출장이 잡혀있어 집에 있는 기간이 짧으니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은 모든 게 다 느리다. 무언가 고치려고 하면 줄잡아 2주는 걸린다고 봐야 하고 시기가 안 좋으면 한두 달도 각오해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미국인들은 일하는데 대체로 꼼꼼하지 않아서 크고 작은 실수를 많이 하는데 그에 따른 피해를 일반 시민들이 빈번하게 입는다. 담당자의 실수로 인한 잘못된 청구서나 벌금 같은 게 가끔 날아오고 한국처럼 전화하면 바로바로 해결되는 그런 고객상담센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으며 생기는 부담감과 당혹감이 한해 한해 줄어들어감을 확실히 느낀다. 어떤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니고 언제나 비슷한 삶의 루틴을 유지하고 있는데 조금씩 조금씩 무뎌져 간다고 해야 할까. 일이 터지면 여전히 놀라고 당혹스럽고 깊은 우울감에 빠지지만 그런 감정의 기간이 조금씩 짧아져서 오래지 않아 해결에 착수하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며 천천히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한국에선 겪어 본 적 없고 겪을 필요도 없었던 끊임없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데 나도 모르게 노하우가 생겼는 지도 모르겠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극심히 불안해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어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 게 그닥 나쁘지 않다. 사실 신체적인 노화를 빼면 모든 면에서 나이 먹는 게 좋다. 끝없이 고개를 내미는 문제점들을 처치할 망치를 옆에 내려놓고 여유 있을 때마다 망치로 한방씩 때리며 처리해 나간다. 하루하루 유연해지는 나를 관찰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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