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로 보는 일상
시골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토요일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산책을 한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건데 지난해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 한동안 참여 못하다가 다시 시작하니 이전의 생활로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다. 지난 토요일에 다 함께 산책을 하다가 리더인 J가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편집샵 안에 커피숍도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난 그다지 쇼핑을 즐기지 않아 심드렁했으나 친구 B가 너무 가고 싶어 하고 동네 할머니들 두 명도 합류하여 다섯이서 쇼핑도 하고 브런치도 같이 했다. 70-80대 할머니들의 수다 첫 주제는 역시 가족이었다.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바쁘다고 상대를 안 해줘서 섭섭하고 사위가 냉담해서 상처 입고 아들은 찾아오지 않고 며느리랑 사이가 안 좋고... 노년의 쓸쓸함을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달래고 싶어 하지만 자식들 중 어느 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나라든 노년의 기대감은 비슷하구나 싶었다.
다섯 중 넷이 싱글 여성이어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성으로 넘어갔다. 과거엔 미인이었을 것 같은 외모의 할머니가 어느 상점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고 농담을 계속하길래 할머니도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었단다. 남자들은 왜 그 모양이라고 투덜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J는 우리와 오래 함께 산책했던 프랑스 할머니가 당일 유타주에서 결혼을 한다고 했고 다른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결혼을 하는지 물었다. 한 할머니가, "남자가 결혼하고 싶어 했겠지. 여자는 결혼생각 전혀 없었을 건데."라고 말하자 다른 모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J말로는 남자친구가 자신의 유산을 여자친구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결혼을 원했다고 했다. 누군가가,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결혼할 이유가 없지."라고 말했고, 또다시 모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사소한 주제로 수다를 떨다가 산책그룹의 관심사에 맞게 동네 '작은 무료 도서관'들을 따라 산책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국 주택가엔 서로 책을 교환하기 위해 놓아두는 작은 보관함들이 우체통처럼 여기저기 놓여있는데 그걸 작은 무료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우리 동네엔 다른 지역들보다 그 수가 꽤 많은 편이고 책이 자주 교체되는 걸 보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독서열기가 꽤 뜨거운 것 같다. 리더 J가 이왕 산책하는 김에 그 작은 도서관들을 따라 걸으며 책도 교환하자고 했고 다들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당장 해보자고 했다. 아마 다음 토요일엔 오전 산책에 이어 오후에도 산책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사이에 또 브런치를 함께 하며 수다를 떨겠지.
늘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주제로 수다를 떠는데도 매 번 흥미롭다. 빠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도 끝은 모두의 납득으로 끝난다. 그다음에 만나면 할머니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가 늘 시작과 끝을 반복해서 끝이 없이 끝이 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웬만해선 지겹지 않은 게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