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우리 엄마는 오랫동안 알츠아이머로 투병하다가 아흔에 돌아가셨다. 내가 한국을 떠나자마자 발병했으니 17년의 투병이었다. 가장 먼저 막내인 나를 잊었기 때문에 엄마가 기억하는 내 마지막 모습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파트 현관에서 작별하던 모습일 것이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멀쩡한 모습은 그때 나를 보내며 눈물을 닦는 모습이다. 엄마가 나를 보며 우는 모습은 평생 처음이라 많이 당황해서 서둘러 차를 타고 떠났었다.
엄마는 다소 차갑고 냉정하고 아주 도덕적이고 논리나 수학과는 거리가 좀 멀지만 예술적인 민감함이 있는 분이셨다.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문화예술엔 별로 관심 없는 아버지의 취향에 맞추며 살고 늘 아등바등 일하느라 좋아하는 걸 거의 즐기지 못하셨다. 치매가 심해지고 어린아이의 인지 수준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예쁘게 치장하고 일하러 가는 자신의 모습을 크레파스로 그리곤 했다. 아버지와 한 침실을 쓰는 걸 아주 불편해하셨고 내가 한국에 가면 어린아이가 낯선 손님을 대하듯 경계하기도 했다.
그렇게 도도하고 냉정하던 엄마가 아기가 되어 인형을 안고 놀고 돌아가시기 전엔 백일 된 아기처럼 다리를 접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방긋거리는 걸 봤을 때 엄마가 자신의 모습을 인지할 수 있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웃기만 하는 게 나았다.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엄마는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엄마의 유전자를 받았고 엄마의 말년을 알고 있는 난 이미 나의 치매를 준비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눈 뒤쪽의 둔한 통증 때문에 벌써 뇌 검사를 두 번이나 받아서 내 뇌가 정상적인 노화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걸 안다. 빼먹지 않고 건강검진을 받고 재정적인 준비도 하고 있으며 노년을 보낼 지역과 시설도 알아보고 있다. 존엄사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숙고해 왔고 다행히 사회적 인식이 존엄사에 대해 긍정적이라 내가 더 늙었을 땐 다양한 죽음의 선택지가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 건강한 하루하루가 후회 없는 마지막을 향해 가도록,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