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추억이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몇 년 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 정도의 강렬한 감정은 30대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는 주가 달라 결국 함께할 수는 없었고 지금은 연락조차 끊어졌다. 순간적으로 솟아나서 바로 사그라드는 열정이 아닌 자진해서 나를 헌신하고픈 그런 강한 이끌림은 우리 인생에서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헤어질 때는 몇 달을 힘들어했으나 그런 감정을 다시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젠 불과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가 그립지 않은 게 신기하다. 지금껏 가끔 생각나고 함께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하는 20대 때의 남자친구보다도 내 감정은 더 강렬했고 절실했음에도 이 사람은 거의 생각나지도 않고 별로 그립지 않다. 아마 사는 곳이 달라 그와 함께한 일들이 몇 가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함께 할 기회가 적었고 기억나는 건 같이 유명한 레스토랑 몇 군데를 갔던 것뿐인데 미슐랭 별이 몇 개니 하는 그런 좋은 레스토랑들이었으나 음식도 딱히 기억나지 않고 무엇보다 그와의 기억이 너무나 흐릿하다.
모든 추억이 다 뚜렷한 건 20대의 한 자락을 함께한 남자친구뿐인 것 같다. 재밌는 건 난 그 애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냥 아주 외로울 때 그 애가 날 좋아해 줬고 그래서 일 년가량 사귀었다. 90년대였으니 이벤트니 뭐니 하는 꽁냥꽁냥한 순간이 있을 리가 없고 그냥 그 애와 함께 대학로 풀밭에서 거리 공연을 봤던 것, 종로 피맛골에서 고갈비에 막걸리로 3차를 했던 것, 잠실 우리 집 앞에서 밤새 놀다가 우리 언니한테 걸려서 쩔쩔매던 것 등, 그 애와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 그 애가 그 당시 백수였어서 학생이던 내가 과외 알바로 받은 돈으로 데이트해서 고급 레스토랑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그냥 그 애와 함께하는 것들이 편했던 것 같다.
평생 두세 번도 갖기 힘든 감정을 쉰이 넘어 가졌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사람이 될 것 같았는데 그와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어 그를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젠 그를 사랑한 내 감정만 기억나고 그 사람이 어땠는지 왜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조차 흐릿해졌다. 무언가를 함께 보고 함께 하고 공감하고 같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따뜻한 추억 속에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인가.
"너와 함께한 게 없어서 너를 잊었으니 너도 나를 잊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