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관광보다는 생각하고 깨닫는 여행이 좋다

by 류지

내가 비행기를 처음 탄 건 서른이 다 되어서였다. 여행 자율화 1세대라 대학동기들은 방학마다 또는 휴학을 하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게 일상이 되었음에도 난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로 학기 중엔 학점관리와 취직준비로 여행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 자유로운 영혼은 불쑥불쑥 즉흥적인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함께할 친구를 바로 찾기 힘들어 혼자 여행을 해야 했고 언제부터인가 혼자 하는 여행이 더 편하고 즐거워졌다.


사람들은 대다수 휴가나 방학 때 여행 기간을 정하고 대부분 관광이나 호캉스로 그 기간을 채운다. 내 경우는 항상 일로 어딘가를 간 김에 얼마간 휴가를 내어 여행을 하곤 해서 처음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관광지로 여행을 가도 여행가 추천 명소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면 잘 가지 않고 대신에 중심가를 기점으로 목적지 없이 혼자 지도를 보며 골목골목 돌아다닌다. 신기하거나 흥미 있는 걸 보면 그 흥미가 식을 때까지 머물며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래 걷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디 여행해 봤냐고 물으면서 유명한 명소를 언급하면 그 지역은 가 봤으나 그 명소는 지나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낭여행은 인도에 있을 때 한 달 동안 동료들과 함께 했었는데 다섯 명이 그룹으로 여행을 했음에도 각자의 여행 취향이 달라서인지 본 것도 느낀 것도 다 달랐다. 난 잠이 많지 않아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는 편이어서 새벽에 동료들이 다 잠든 동안에 숙소 주변을 산책하길 즐겼고, 한 달 동안 인도 북부 이곳저곳에서 매일 아침 산책을 했으니 동료들이 보지 못한 것을 아주 많이 봤다. 특히 장례식과 관련된 풍습을 많이 접했는데 가족을 잃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건 한국이나 인도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은 로드트립이라서 가끔 하루에 8시간 정도 운전만 하는 여행을 떠난다. 라스베가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자주 갔던 것도 우리 집에서 라스베가스까지 운전하면 8시간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직진하면 그보다 덜 걸리겠지만 중간중간 작은 소도시들에 들러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라스베가스에서 하룻밤 묵고 그다음 날 새벽에 바로 그랜드캐년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돌아오는 시간은 10시간 정도 걸린다. 왕복 도로는 늘 한산하고 밤엔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아서 마치 낯선 외계 행성에 혼자 남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로드트립을 좋아하는 이유는 운전하는 동안 오롯이 생각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경치를 흘끗거리며 음악이나 다운받은 오디오북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이것저것 제한 없이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평소에 가졌던 갖가지 의문점들의 해답을 스스로 얻은 경우가 많고 홀가분하게 다시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가 채워져 있다.


여행은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처음 보는 것들 가운데에 서 있는 나를 관찰하며 내면에 숨어 있던 가능성과 취약점을 발견하게 하고, 새로 발견한 또 다른 내가 가질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한다. 그래서 역사나 주제를 따라가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행보다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으로 평소와 다르게 지내는 여행이 좋다.


내년쯤 시간이 되면 로마를 여행하고 싶다. 요즘은 소매치기도 별로 없다고 하니 걸어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미술관도 매일 가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상쾌하면 금상첨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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