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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Feb 23. 2018

우리 가족이 홋카이도에 오는 이유

계절편

제3의 고향, 홋카이도



우리 가족은 홋카이도를 서울, 고베에 이어 제 3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8년 전 일본 고베로 온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홋카이도를 찾았다. 그것도 대부분 일년에 두 번씩. 우리가 홋카이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셀 수 없지 많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기후.  홋카이도는 일본에 속하지만 혼슈와 달리 우기가 없어 여름이 시원하고 건조한 편이라 지내기에 쾌적하다. 반면 겨울이 춥긴 하지만 대신 많은 눈이 내려 아름다운 설국으로 변신한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기후의 다양성의 폭이 큰 편이다. (물론 근대 이후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를 점령한 탓이지만) 남쪽으로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고 북쪽 홋카이도는 냉랭한 아한대 기후라 같은 시기라도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날씨를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혼슈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은퇴 후 여름엔 시원한 홋카이도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오키나와에서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후라노 평원을 바라보며 캠핑 중

우리가족이 홋카이도에 오는 이유, 그 중에서도 여름에 이 곳을 찾는 이유는 혼슈의 덥고 습한, 불쾌지수 높은 날씨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정확히는 이런 종류의 날씨가 몰고 오는 가장 두려운 적, 바로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모기는 혈액형이 O형이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을 가장 열렬히 선호한다. 안타깝게도 바로 우리 가족 모두에 해당한다. 고베의 산중턱에 있는 우리집 주변은 여름 내내 모기들의 천국이 된다. 온갖 종류의 모기스프레이, 패치 등을 사용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특히 둘째 민재의 경우가 가장 심각해, 밖에 나가자마자 10초를 지나지 않아 금방 모기들에 뜯겨 서너군데에서 피가 줄줄 흐를 정도이다. 여름 내내 이런 사태가 지속되니 우리 가족에게 모기는 약간의 불편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위협하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6년 전 홋카이도의 여름을 경험하고 나니 이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여름이라도 습하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10도 안팎으로 떨어지니 모기들 먹고살기 힘들고 덕분에 우리는 모기 걱정 없이 신나게 밖으로 놀러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의 홋카이도


겨울의 홋카이도는 사실 여름보다 더 매력적인 곳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월인데 싱그러운 꽃과 나무로 가득한 창 밖을 바라보면서도 겨울의 홋카이도를 떠올리니 가슴이 뛴다. 10월 말이면 기운이 뚝 떨어지며 겨울이 찾아들고 1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해 1,2월이면 지난 여름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가득하던 홋카이도의 대부분의 땅은 두꺼운 눈으로 덮인다. 눈담요를 입은 산과 들, 눈꽃이 핀 나무들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매번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이지만 눈밭을 뒹굴며 아이들과 놀다보면 추위따위는 잊게 된다.

홋카이도의 겨울을 만끽하는 곰순이

아이들 어른은 물론이고 우리집 곰순이마저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눈밭을 신나게 뛰어다니곤 해 우리를 웃게 한다. 때로는 차가운 눈밭에 퍼질러 앉아 끝없이 펼쳐진 눈의 평원을 지그시 바라보곤 하는데 그 설원 배경의 금빛 털의 곰순이의 모습은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작품이 된다.


홋카이도의 봄


그렇다고 홋카이도가 여름과 겨울만 좋으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5월부터 시작하는 홋카이도의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고 혹독한 홋카이도의 겨울을 이겨낸 푸른 생명들을 목격하는 것은 생명의 경외감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두꺼운 낙엽을 뚫고 올라온 푸른 잎새와 여린 꽃송이들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겨울이 긴 대신 봄 여름동안 일조량이 많아 식물의 생장속도도 빠른 홋카이도는 5월부터 바야흐로 꽃의 축제가 시작된다.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꽃들이 아름다운 능선과 산자락을 배경으로 벌판 가득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산책 다니면서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꽃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 하루라도 산책을 빼먹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른 평지가 많은 홋카이도에는 각지에 크고 작은 꽃농장과 정원들이 즐비하다. 그러다보니 이런 꽃농장을 테마로 찾아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히다카 여름. Wild Carrot이 흐드러진 언덕

이런 기후와 풍토가 좋아서 홋카이도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고 당연히 개인적으로 취미로 정원과 꽃을 가꾸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삿포로 이외에는 아파트는 거의 없고 대부분 독채의 거주형태를 가진 홋카이도는 국도를 가다보면 색색의 아름다운 꽃정원에 둘러싸인 그림같은 주택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홋카이도의 가을


홋카이도의 가을은 풍성한 먹거리의 계절이다. 물론 농사짓는 곳이라면야 어디든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홋카이도가 특별한 이유는  봄과 여름에 걸친 높은 일조량 덕분에 수확하는 과일과 야채들이 놀랍도록 맛있다는 점이다. 일본 전역에서 가장 맛있다는 평을 받는 쌀은 바로 홋카이도의 유메피리카라는 종이다. 야채출하량 전국 1위에 빛나는 홋카이도. 그 중에서도 감자 옥수수 등의 작물이 기가 막히게 맛있고 토마토, 호박, 당근 등 대부분의 야채도 당도가 높아서 드레싱이 따로 필요없다. 날씨와 풍토가 잘 맞아서 특별히 맛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재배한 작물들을  바로 수확해서 그 날 밥상에 올리게 되니 그 맛은 며칠을 유통과정에서 시달리는 야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6월 경부터 지역별 농가에서 생산하는 야채와 과일을 직거래 조합을 통해 살 수 있는데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이 홋카이도의 농산물 먹는 재미가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원래 야채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홋카이도에 다니면서 식성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지내는 집에서 자전거 타고 10분 거리에 이곳 농민들과 직거래하는 가게가 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었던 날, 그 가게에서 아침에 수확한 당근과 파프리카를 사와서 점심에 아이들과 먹었는데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에 넣더니 순식간에 놀라움 가득한 표정으로 변하던 드라마틱한 순간이 기억난다. 이를 계기로 거의 모든 종류의 야채들을 즐겨먹는 식습관으로 바뀌었으니 홋카이도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홋카이도의 꽃정원. 스케일이 다르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 8월 중순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 아침저녁에는 서늘해져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입어야 한다. 나뭇잎들이 옷을 갈아입는 시기도 가장 빨라 9월이 되면 산 곳곳에서 울긋불긋한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홋카이도 땅 면적의 92%를 차지하는 산림이 보여주는 가을 단풍의 스케일을 상상해보시라. 게다가 홋카이도는 한국과 일본 본토와는 기후대가 달라 아한대산림을 구성하는 나무의 단풍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4계절의 개성이 각각 뚜렷하면서도 훌륭한 홋카이도이니, 봄이면 봄이라서 홋카이도에 오고싶고, 겨울이면 또 겨울이니 홋카이도가 그리운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주변 친구들은 우리를 고베보다는 홋카이도에 주로 거주하는 가족으로 취급하고,  만나면 ‘이번엔 언제 홋카이도에 가?’라고 물어본다. 일본 친구들도 홋카이도에 여행을 갈 때에는 우리에게 여행 컨설팅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은 왜 고베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하며 그냥 여기서 살자고 얘기한다. 누가 아는가. 이러다가 불현듯 홋카이도 이주 프로젝트 시작하게 될지. 내가 있어서 행복한 곳에 살 수만 있다면 살도록 노력하자는게 우리 가족의 모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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