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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Dec 06. 2022

눈 오는 날은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면 안되는구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개운했다. 어제 산 귀여운 겨울 실내화를 신을 생각에 어제 밤 부터 마음이 들뜬 상태였다. 7시가 넘어도 집안으로 동이 트는 기운이 들어오지 않길래 새침하게 흐린 날씨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눈이 휘날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눈발을 보며 올 해의 첫눈이구나 하고 좋아라 했다. 눈 오는 날 운전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도 처음 해보는 것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고 약간의 긴장, 설레는 마음.


  눈 오는 날엔 브레이크 밟으면 안된다고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출발한 지 10분만에 작은 다리 위에서 사고를 냈다. 내가 앞 차를 박고, 뒷 차가 내 차를 박았다. 뒤에서 박은 건 뒷 차 과실이라지만, 길 과실은 없나요 ? 길이 너무 미끄러웠다. 너무나..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 땅에 발을 디디는데도 미끄덩 하고 넘어질 뻔 했다. 앞 차 뒤 꽁무니를 향해 돌진하다가 쾅 하고 박아버린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서 아찔하다. 분명 나는 브레이크를 밟는데 차가 말도 안되게 그냥 앞으로 쭉쭉 밀려갔다. 그리고 앞 차는 많이.. 내 차는 더 많이 망가졌다. 뒷 부분은 경미하다.


  줄줄이 전화통을 붙잡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으나 오늘 아침 갑작스런 눈 소식에 곳곳에서 사고가 났는지 콜센터가 마비되었다. 눈은 펑펑 날리고 차는 박살이 났고 머리 박고 무릎 박아서 몸은 욱신거리고 뭐 그런 상황이었다. 앞 차의 차주분은 중년의 여성분이었는데 나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봐주시고 친절하게 해주시긴 했으나 한방 병원에 며칠이나 계실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일단 나는 죄송하다고 했다. 어찌됐건 뒤에서 들이 받아버렸으니...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가 되고 렉카가 와서 사고가 대충 수습이 되는 듯 했으나 오산이었다. 세 대의 차가 모두 현대해상에 가입된 차였는데, 맨 앞차 보험 담당자가 제일 먼저 왔다. 와서 보더니 어차피 다 같은 현대해상인데 본인이 한 번에 처리 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본인이 견인도 해 갈건데, 지금 곳곳에 사고가 많이 나서 시간이 많이 걸리니 먼저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셨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어차피 다 같은 보험회산데 똑같겠지 뭐 하고 차 키를 꼽아 놓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무릎에 쑤셔오기 시작했다. 버스에 기대서 창 밖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오늘 출근은 무리겠구나..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내 차 담당 보험회사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한 번에 사고 처리 하는게 나한테 불리할 수 있고, 차도 직접 가져와서 블랙박스를 같이 보고 수리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늦지 않았으니 전화 해서 따로 처리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고 차를 가져와서 진행을 하기로 했다. 차가 조금 밀리지만 내 차를 가지고 학교로 와주시겠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학교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내 차와 한 번 더 마주했다. 견인차에 끌려가는 내 차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괜찮은 이유들을 몇 가지 적어보자면, 1. 크게 안다친 것. 며칠 전 길에서 임산부가 탄 차가 크게 사고가 난 것을 보았는데, 본의 아니게 임산부가 너무 아파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나는 119 구급차에 실려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앞, 뒤 운전자들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아 천만 다행이다. 2. 앞차가 국산차인 것. 전에 친구가 강남에서 캐딜락을 긁었다가 수리비로 1500만원을 물어주고 수리비가 급등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외제차가 아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그래도 한 시름 놨다.


  병가를 내고 옆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아 약을 타 왔다. 어찌저찌 집에 도착에 누워 있자니 수리비 생각에 마음이 싸르르. 무릎도 아프고. 앞차를 들이받으며 눈 앞이 빙빙 돌았던 순간이 오늘 아침이 맞나, 약간 아득하다. 내일 출근은 또 뭘 타고 어떻게 하나, 안그래도 시골이라 택시도 안잡히고 버스는 더 없는데. 랜트를 하려고 해도 이제 운전대 잡는 것이 약간 무섭다. 내일 어떻게 출근하지..?


  역시나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은 아빠. 그 다음 동생. 아빠가 전화를 10통을 해도 안받다가 느지막이 전화가 왔는데 아빠 목소리 듣자 마자 눈물이 왈칵. 돈 걱정 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아픈 데 치료나 받으란다. 내일 아빠가 와서 내 상태를 보고 가기로 했다. 오늘의 일기 끝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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