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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Dec 13. 2022

해석한 만큼의 생

  친척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제일 먼저 그 형제가 눈에 밟혀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눈이 펑펑 오는 어느 날 누군가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다시 가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싶을 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적절한 단어를 찾다가 침묵만 찾게 되고 형식적인 단어들이 혀끝에서 맴돌 뿐이다. 하지만 몸을 잘 챙기라든가,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라든가 하는 그 문장들은 가슴이 아플 만큼 진심이다.


모순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이 나는 순간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엄마의 죽음을 맞이하고 모든 이들의 죽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딱 그만큼 더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벌써 2년 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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