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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an 06. 2023

불행으로 풍요로워진다는 것

 

 이 글은 몇 년 전에 보민이를 통해 알게 된 글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인스타그램 문구일 뿐인데 왜 그렇게도 좋았을까, 이 글은 그랬다. 읽자 마자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금세 무성한 나무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봐도 여전히 좋다. 인생은 참으로 오늘을 갖고 판단할 수 없는 여행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이런 말을 내가 누군가에게 듣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안하고 살았다. 우연한 기회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외로이 헤쳐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 와 아주 잘 하고 있군요, 하고 귓속말을 해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몇 년에 한 권 꼴로 내 마음에 자리를 잡는 그런 책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책장이 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그런 책들. 이 글은 재작년엔가, 내 마음에 들어온 <모순>이라는 책을 읽고 누군가가 쓴 독후감같은 글이다.


  주변에서 너는 참 열심히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겠다는 것도 많다. 이것 저것 하겠다고 찔러보고 이내 시들해져서 안하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올 해는 영어공부, 그림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 뭘 하긴 한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계획도 많이 세운다. 올 해 계획, 상반기 계획, 이번 달 계획, 이번 주 계획, 오늘 하루 계획. 실제로 내가 다 세우고 있는 계획들이다. 뭔가를 안하면 큰일이 날 사람처럼, 뭐라도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나는 늘 무언가를 한다.


  작년 9월이 그 절정이었던 듯 싶다. 하루를 꽉 채우다 못 해 200%를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날들이었다. 주 7일 새벽 수영을 하고, 평일에는 일이 끝나면 그림을 배우러 갔다. 주말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속을 잡아 하루에 3개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다 10월쯤 몸이 시들시들 아파왔다. 너무 무리를 한 탓인듯 했다. 나는 꼭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인데 밖으로 나도느라 그러질 못해서 마음이 공허하기도 했다. 그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열심히 살려고 하는거지 ?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원래도 에너지가 많은 스타일이긴 했는데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열심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게 된건 엄마 때문이었다. 예고도 없이 이 세상을 훌쩍 떠나버린 엄마를 보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긴 했던 것이다. 나의 삶 가운데 지금 뿐이라는, 오로지 이 순간 뿐이라는 신념이 크게 박혀버렸다. 나는 그게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누군가는 겪지 않을 일인데 싶기도 하다. 누구나 죽긴 죽지만 50살이 넘어서 죽는 일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가끔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평생에 내 편이 될 존재를 잃은 나 자신을 가엾이 여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주어진 삶을 아등바등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나를 대견히 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저 짧은 독후감이 그렇게도 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불행으로 풍요로워진다는, <모순>에는 그런 글귀가 있다. 어쨌거나 나의 인생의 부피도 엄마의 죽음으로 커지게 되었으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가슴으로 알겠다. 하지만 내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일까, 그 일을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도 그런 사람이었다. 늘상 무언가를 하는 사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정직한 사람. 엄마가 쓰던 물건, 옷가지, 신발을 다 태워도 도처에 엄마가 널려있다. 버릴 수 조차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엄마가 쓴 글, 엄마가 사 놓은 책을 읽은 내 머릿속 같은 것. 나는 남겨진 자로써 가끔은 인생이 버거울 때도 있으나, 대체로 멋진 여행 같은 것이라 느끼며 산다.  부지런히 인생의 부피를 키우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도 많다. 그것이 불행에서 온 것이라 해도.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인생은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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