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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05. 2023

갑자기 찾아오는 낭만

  책에 푹 빠져있으면 순간 전혀 다른 세계로 온 것만 같은 때가 있다. 같은 공기, 같은 공간인데도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거다. 책 뿐 아니라 음악, 글쓰기 같은 것도 그렇다. 주로 예술이 그렇다. 이 세상은 예술과 나 뿐인 것 같은 그런 느낌. 


  나는 연한 연두색을 좋아한다. 무심한 손 끝이 닿으면 바로 찢어질 것 같은 얇은 어린 잎에 띄는 그런 색이 연한 연두색이다. 딱 3월에 돋는 새싹들이 그런 색이다. 4월이 되어 햇볕이 강해지면 연한 연두색은 바로 연두색을 거쳐 초록색이 된다. 낭만은 짧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다.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누려야 현실에서 잠깐 여행을 떠나 올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온 말일까? 봄이면 싹을 틔우는 어린 나무들을 마주하며 낭만을 맛볼 수 있으니까. 오늘 문득 창 밖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봄비에 젖어 더 짙어진 고동색 나무 기둥과 거기서 연하게 돋아나는 작은 은행잎이 참 예쁘다는 생각. 일상에 찾아오는 갑자기 낭만적인 순간들을 잘 누려야겠다고 또 다짐을 했다. 



  작년 가을. 잎이 모두 떨어져 죽은건가,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나의 블루베리 나무. 낙엽이라고 일러주신 부장님 덕에 안심을 하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3월이 되기 무섭게 이렇게 연두색 잎을 틔워 나에게 내가 겨우내 잘 살아있었노라고 나의 화분이 대답을 했다. 귀엽고 기특한 그 모습에 나는 낭만을 맛보았다. 매일 화분을 들여다보며 마음에 이는 따뜻한 낭만을 만끽한다. 


  세상은 언제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매일같이 제공되는 24시간에 나는 자주 그 소중함을 잊는다.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아도 어쩌면 내게 허락된 새벽은 오늘이 마지막이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연한 연두색을, 화분의 대답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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