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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14. 2023

사랑이 크면 빈자리도 크니까

나는 벌써 너의 빈자리가 두려워

  대학교 4년 내내 붙어다니던 친구와 졸업과 동시에 멀어지게 되었다. 그 아이와 멀어져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나였지만 나는 한동안 그 아이의 빈자리에 헛헛해 했었다. 괜시리 그 헛헛함을 견디기 쓸쓸해질 때면 엄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엄마, 내가 괜한 행동을 한 게 아닐까?' 엄마는 말 했다. '괜찮아. 다 지나가는거야. 그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로 채워질거야.'


  그 자리는 금세 다른 친구로 채워졌다.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할 만큼의 강렬한 사람이 내게 나타났다. 우리가 동성이 아닌 이성으로 만났다면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보자 마자 사랑을 고백했을만큼 나는 그 아이의 말과 행동 눈빛, 그 아이가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엄마는 말 했다. '봐. 너의 인생에 그 친구가 가고 이 친구가 찾아왔지. 빈자리는 늘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거야.'


  엄마의 말은 어느정도 맞았고 어느정도 틀렸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남은 가족들과 따뜻한 말을 주고 받을 때, 친구와 숨이 넘어가도록 웃긴 이야기를 할 때. 엄마의 빈자리와 그로 인한 상실감은 충만하고 아름답게 치유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 같은 것은 늦은 밤 내가 혼자일 때를 노린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데, 그럴 때 마다 여전히 3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텅 비어버린 엄마의 자리를 더듬으며 슬퍼한다.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아주 다양한 것들로 채워 나갔다. 내가 작정하고 채우려고 하기도 했고, 살다보니 자동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각종 취미, 운동, 친구, 독서, 창작 활동, 공부, 가족 등등. 엄마는 워낙 컸기에 빈자리에는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중에서도 나의 친구 소윤이가 차지하는 부피가 커진 것을 느낀다. 때때로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며 '내가 이렇게 의지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을 만큼. 그 친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언젠가 이 친구의 빈자리마저 감당해야 한다면, 그 빈자리는 또 무엇으로 채워야할까? 하는 걱정이 앞설 만큼.


  엄마가 떠나고 얻은 것 중 가장 절실히 와닿는 세상의 이치는 유한성이다. 언젠가 그 친구가 혹은 내가 서로의 유한성으로 인해 그 빈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워야 할 때가 온다면 우리는 삶의 이치가 그렇듯, 내가 엄마를 보내고 그랬듯, 그렇게 다른 무언가로 그 자리를 채우며 살아 갈 것이다. 살면 다 살아지니 못 할 것은 없다지만 나는 그 날이 무서울 만큼 다시 또 내 마음 속 누군가를 위한 큰 자리를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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